돈 끼호떼 1 -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 투명해서 그 순수함이 부러워지는 유리(琉璃)는 쉽게 깨지는 위험을 보호막으로 세워 그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쉽게 깨질 수 있기에 더 투명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유리가 아닐까? 『돈 끼호떼Ⅰ』속 돈 끼호떼, 그를 유리라고 하겠다. 유리는 돈 끼호떼의 이상적인 세계이며 그를 순수한 상상 속에 발을 묶어둔 매체이다. 그가 유리를 깨트리지 않으려고 조심했을 수도 있으나 혹 깨져도 자신의 믿음으로 조각 난 유리를 새로이 더 투명한 생명을 줌을 거듭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제52장에서 돈 끼호떼는 고행 수사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어 잠들어 있는 그를 지켜보는 조카딸과 가정부는 건강이 좋아지면 또 다시 자기들만 남겨 둘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는데, 그녀들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해 버린다. 끝내 돈 끼호떼는 깨어져버려 현실이라는 조각이 되어버린 유리를, 자신의 끝없는 믿음과 용기로 떨쳐낼 수 없는 이상의 갈망이라는 마술로, 다시 맑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유리는 돈 끼호떼를 자신에게 봉한 채 또 방랑기사의 삶을 풀어 놓을 것이다. 항상 붙어 다니며 주인의 유리를 깨트리려던 산초 빤사를 비웃는 속삭임을 내뱉으며 말이다. 현실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현실이 밀어냄에 유리로써 얼굴 내민 이상도 동시에 밀어낼 것이라는 경고를 하며 말이다.

방랑기사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착각 속에 빠진 돈 끼호떼, 그가 수도 없이 되 뇌이던 이름은 잊을 수가 없다. 엘 또보소 지방의 둘시네아! 돈 끼호떼가 만들어낸 인물임에 산초 빤사에 의해 실존인물 임이 밝혀지며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둘 다 그녀를 만나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그녀를 생각함에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들, 그 중에서도 제25장 시에르라 모레나 산중에서 이 라 만차의 용감한 기사와 산초 빤사 간의 대화며 사랑을 위해 기사 아마디스의 고행을 흉내 내며 고행하던 그의 모습이며 잊히지 않는다. 특히 그가 둘시네아에게 쓴 편지를 읽을 땐 경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움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이게 만들었다. 하늘처럼 높으신 아씨께 죽는 날까지 당신의 사랑으로 불쌍한 몰골의 기사로 남고 싶음을 보인 그 편지를 마주쳤을 때 말이다. 반면, 이 편지에 놀라면서도 새끼 당나귀 3마리에 대한 증서를 명확한 서명과 함께 기재해 달라고 촉구하던 산초의 모습이 함께 강한 인상으로 남아졌다. 우스워 보이지만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지향할 줄 아는 불쌍한 몰골의 기사와 현실을 볼 줄 알지만 자신에게 올 물질적인 세계에만 급급한 산초, 과연 누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이에 세르반떼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순간 세르반떼스가 돈 끼호떼의 몸을 빌려 늙은 몸으로 젊은 둘시네아를 갈망하여 쉽게 허락될 수 없는 이상을 쫒는 뒷면에는 산초 빤사의 몸을 빌려 현실에 급급한 아이러니로 똘똘 뭉쳐진 모습이었다. 투명한 이상을 꼭 봉한 채 현실을 온 몸으로 밀어내는 유리(琉璃)의 환영과 함께 맞물려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이 환영은 제 38장 문(文)과 무(武)에 대해 돈 끼호떼가 벌인 담론에서 내 주위를 맴돌았다. 文은 방랑기사를 이야기한 작자의 힘을, 武은 이야기 속 돈 끼호떼와 같은 기사를 떠올리게 하였는데, 불쌍한 몰골의 기사는 武를 찬양했지만은, 결국은 이야기에 갇혀 현실을 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비록, 유리에 갇힌 우리들의 이상은 값어치 있는 것이지만 유리를 감싸는 현실을 바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에 돈 끼호떼가 건네 준 아이러니한 유리를 비춰보며 살아가라는 속삭임이 들렸던 듯하다. 이것이 내가 만난 『돈 끼호떼Ⅰ』가 준 삶의 선물-유리(琉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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