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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평점 :
산 정상에 올라 고함쳐본 일이 있는지, 간절한 외침이 터져 나오면 산뜻하고 가벼워지는 몸을 느끼는 순간 산이 보내는 응답에 전율을 느끼며 자연과 내가 대화하듯이 그 산울림처럼 이상적인 사랑이란 서로의 외침에 응답하고 전율을 보내며 함께 하는 것이 아닌지, 그렇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전해준 사랑의 감동을 산울림이라 부르려한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본 순간 로잘린을 잊고 다른 사랑을 향하는 순간 그는 ‘제가 지금 사랑하는 여자는 정은 정으로 보답할 줄 알고 사랑에는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여자예요. 로잘린은 그렇지 못했어요.(제2막 3장)’라고 신부에게 고하며 그들의 결혼을 허락해 주기를 바란다. 줄리엣은 로잘린과 달리 로미오의 마음에 반응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로미오의 외침이 산울림이 되어 로미오에게 전달되듯이 말이다.
하나의 산울림이기에 사물처럼 눈에 선명하지도 손으로 잡히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미묘한 감정이지만 공간의 울림 곧, 마음의 울림이 교감을 이루면 쉽게도 혹은 선명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결해주던 끈(사랑의 산울림)이 아니었는가 한다. 이러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산울림은, 두 사람에게는 부부로의 재탄생만이 아닌 죽음의 길을 열어주고 이승에 남은 자들에게는 슬픔과 동시에 화해를 통한 평화를 안겨주었으니, 이는 이들의 젊은 생기 혹은 패기와 정열이 담겨져 더 구슬프고도 아름답게 전해져왔다. ‘자연의 어머니인 대지는 자연의 무덤인 동시에 자연의 모태이기도 해.(제2막 3장)’라는 신부의 말처럼, 자연에서 태어난 산울림은 두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하나의 끈이면서 그들의 사랑의 시작과 결말을 함께한 것이다. 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갇힌 산울림, 그렇기에 더 간절한 떨림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받도록 도와왔는지 모른다. 그들의 생기발랄한 젊음 속에 피어난 사랑이 산울림에 봉인되어 죽음과 함께 자유로운 몸을 얻은 후, 산과 산만을 오가는 것이 아닌, 세상과 세상을 혹은 시간과 시간을 떠도는 산울림이 되어, 셰익스피어와 현대의 독자들 사이에 진한 울림으로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것만 같다. 결혼식을 재촉하는 로미오에게 천천히 하라며 급히 달리면 넘어지게 마련이라는 신부의 말과 같은 행복 뒤 그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셰익스피어의 고함 외, 여러 아이러니를 툭 던져놓고 가는 그의 모습은, 그들의 행복과 슬픔을 모두 가진 산울림의 paradox(역설;아이러니)로 녹아 들려왔다. 결혼식에 쓸 로즈메리가 장례식에 쓰인 것과 같이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를 비극이라고 말하려 하는 자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그들의 일생을 간직한 산울림의 paradox를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생기발랄한 젊은 두 남녀의 추억을 담아 시공간을 넘나들어 감동을 전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산울림, 그것은 ‘연인은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거미줄 위로도 떨어지지 않고 걸어 다닌다지. 그처럼 사랑의 기쁨은 가벼운 것이지.(제2막 6장)’라는 신부의 말처럼 그 많은 아픔과 기쁨을 안고도 사랑이라는 힘으로 가벼운 몸이 되어 지금까지 그 울림을 전해주는 산뜻한 몸짓이 아닌가 한다. 해묵은 증오의 결실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생을 빼앗아 가고 그들의 아침에 서글픈 평화를 안겨다 주던 추억쯤이야 사랑이라는 힘으로 가뿐히 웃어넘기겠다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보낸 산울림의 속셈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사랑의 메신저이며 죽음의 길인 산울림이 몬태규, 캐퓰릿, 영주 측의 사람들을 두 명씩 공평하게(?) 희생시켜 자신의 고귀한 가치를 돋보이게 한 것이다. 이에 사랑의 대화, 산울림을 다시 한 번 떠올리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