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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ㅣ 밀레니엄 북스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정진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2월
평점 :
타인의 무관심이 무서운 세상이다. 그러나 관심을 더 무서워하는 이들이 있다. 신체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본 적이 있다. 나와 다른 신체를 가졌다고 해서 그들에게 두려운 시선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그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사람은 평생 동안 장님이지요. (비극 제2부 제5막)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나도 그들처럼 장애를 갖고 있었음을. 단지 신체의 이상이 없을 뿐 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회적 편견에 때 묻은 막이, 태생이 선물해준 순수한 눈을 가리어 편견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장애를 갖고 있는 난쟁이들의 세상에 서있다. 진실 된 모습을 바라보지 못 하고 사회가 만들어낸 그물 속에 갇히어 허둥대는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다. 하물며,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매일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눈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장애를 앓고 있는 난쟁이들이다. 이렇게 우리는 난쟁이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갇혀 미로에 놓인 탈출구를 갈망한다.
파우스트, 그는 어떠하였는가? 위 대목은 몹시 늙은 파우스트에게 근심의 정령이 입김을 쐬어 그를 맹인으로 만들지만, 심안(心眼)이 더욱 밝아지고 견실한 노력의 반복으로 인류의 행복을 꾀함에, 미래에 낙원이 실현될 때야말로, 이러한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멈춰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비극 제2부 제5막)”라고 최고의 순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숨을 거둔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던 말처럼 지상에서 인간의 욕망을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하여 맛 본 그가, 내기에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는 악마를 방치한 채 천사들과 함께 천상으로 영혼이 올라감으로써 그는 난쟁이의 허울을 벗어 던진 것일까? 정신적 장애로 절뚝거리는 마음을 벗어던지고 초월의 세계로 간 것일까? 파우스트 역시 나약한 사람이었기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보여주는 세상의 유혹에 고귀하게 여겨지던 영혼은 절룩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심안(心眼)은 어둠 속에서 한 가닥 한 가닥의 빛을 모아 밝혀갔으며, 절룩거리는 영혼에 노력의 보호막이 드리워져 그는 난쟁이의 몸을 일으킨 것이다. 꼽추의 등이 기이하고 신비한 힘으로 바로 세워진 것과 같은 고귀한 잔영으로 남겨져서 말이다.
아직도 세상은 난쟁이들이 모여 있는 장애로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필연적인 生에 갇힌 고정된 상자는 아니다. 우리의 노력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한 가닥의 빛줄기를 발할 때, 파우스트가 구제되었듯이 우리는 난쟁이의 몸을 딛고 일어서 신선한 향기가 베어나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난쟁이의 몸속에 갇히어 장애로 절룩거리는 영혼을 꺼내어, 은연중에 가야만할 그 곳을 향하여 걸어가게 되리다. 파우스트, 그가 보낸 한 줄기 빛에 기대어 우리의 빛을 모아 난쟁이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밝힐 태양을 만들 수 있으리다. 사람은 평생 동안 노력과 함께 할 때, 이 세상에 장애를 가진 난쟁이는 사라지리다. 사람은 평생 동안 장님일 뿐인 것이 아니라, 사람은 평생 동안 노력하는 장님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