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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손가락의 개수가 내 나이를 뛰어넘던 시절 나는 동화책을 읽으며 사랑을 얻는 공주님이 되기도 하고 승리를 쟁취한 멋진 영웅이 되어보기도 했다. 상상을 타고 흘러 내려가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능성의 평원에 내가 하고싶은 것들과 꿈을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수험생 생활을 얼마 앞두지 않은 지금 어린시절 제약없이 펼쳐두었던 상상은 허망한 망상이 되어버렸고 무엇이든 그릴 수 있었던 가능성의 평원은 사각의 교실처럼 깎이고 침식되어 수학공식과 영어단어만이 서로 비좁은 자리를 넘볼새라 높게 높게 버티고 있다. 시간표 숙제 단어시험 모의고사 성적표. 이제 나의 생활을 둘러싸고 나의 모든 가능성을 결정짓는것은 이런 것들이다.
'지겨워.' 습관처럼 하루에도 수십번을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나는 그 틀 안에서만 안심하고 숨을 쉴 수 있게 되어버렸다. 언제나 엷은 이끼같이 온몸을 휘두르고 있는 답답함을 느끼지만 나에게는 이제 목을 약간 간지럽히는 먼지섞인 공기와 같을뿐이다. 투명한 쇠창살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이 공기같이 익숙해진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도 특별히 벗어나고싶은 바램없이 막연한 동경으로만 창살 밖을 바라보는 것은 오랫동안 새장 안에 갇혀 있어서 나는법을 잊어버린 새와 같은 심정일까?
'안전한' 새장 안에서 때가 되면 먹이를 먹고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본능이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창공을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그런 새..
나는 이 안전한 창살 안에서 '몇년 베테랑'이라고 믿음직스럽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한 걸음이라도 빗겨 나가면 낙오된다는 사실을 명심한채. 가끔 내가 가는 길이 혼란스러울때면 학교근처의 길 어디에서나 교통표지판처럼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면 된다. 서울대 몇명 합격이라는 교리같은 그 어구를 우러러 보고있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눈빛을 보면 내가 가야할, 아니 우리 모두가 가야할 '바른길'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능력있다고 인정받는 선생님들은 말한다. '난 베테랑이야.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돼. 친구들의 머릴 밟고 올라서도록해.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중간고사 마지막 날 저녁 두눈이 퉁퉁 붓도록 운건 내 성적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다. 둘도 없는 친구까지도 밟고 올라서야할 '적'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의 추한 눈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에서였다. 물끄러미 바라본 거울 속엔 공주님이 되고 영웅이 되었던 어릴적의 나는 없고 꿈을 잃은.. '바른길'을 향해서라면 철저하게 이기적일 수 있게된 철장안의 내가 비춰졌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책상을 여닫고 서슴없이 분뇨에도 뛰어드는 토토가 만약 고바야시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열여덟살이 되었을때 나처럼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서글퍼졌을까? 만약 내가 어린시절 토토처럼 행동했을때 그런 나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단지 '원래대로 해두거라'라고만 말씀하신 고바야시선생님같은 분이 나타났더라면 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혐오스럽게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을까?
토토의 행동에는 나도 어린시절에 겪었던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자신에게 있어 가장 매력적인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고바야시선생님의 교육방법은 어린이의 그 무수한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고 그대로 펼칠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만약 다른 어른들이었다면 아이들이 매료되어 선택한 방법과 결과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꿈많은 선택을 '올바른길'이란 이름으로 똑같이 가르쳤을 것이다. 결국 아이들을 오늘날의 우리들처럼 오로지 하나의 길로만 몰아놓고 모두를 경쟁자로 여기게 하겠지..
가끔 5,6교시 쉬는 시간에 졸음에 밀리고 피곤에 지친 반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 버릴때 침묵에 휩싸인 묘지같은 교실에서 사치스런 고독을 느낀다. 지금의 나는 낙오될 '용기'도 없이 계속해서 바른길을 나아가야하겠지만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들은 바른길이 아닌 '나의길'을 향한 나아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