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이 있으니 오히려 갈 생각을 못하는 거죠. 그게 이유에요."

"평생에, 그것도 운이 좋을 때,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벌써부터 믿어지는 걸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누구나 평생에 단한 번 만나는 게 아닐까요?"

그녀는 캄파리를 한 잔 더 하고 싶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처음엔 썩 좋아하지 않았던 이 음료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더러 그런 것들이 있었다, 처음엔 썩 좋아하지 않았다가 언제부턴가 즐길 정도로까지 익숙해져서 종국에는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평소 이 시간에 아무것도 안 허요?"
"아무것도요. 잘 자는 거? 당신은요?"
"특별히 없어요."
그것도 특별한 거예요."

"얘기를 듣는 할머니의 얼굴을 직접 봤어야 하는데.…. 내 생각할머니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아요. 그럴 여력도, 젊음도 없다고 할까. 하여튼 불행과는 또 달라요."
남자는 물었다. "그럼 뭔데요?"

식료품상은 대답했다. "글쎄,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더 이상 붙일 이름이 없소. 더 이상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고,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겠소?"
사라는 대꾸했다. "어쩌면요."
식료품상은 말했다. "어쩌면 고단함, 고단함이라고 할까."

"왜 나한테 바람피우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거야?"
"글쎄? 가끔은 당신한테 진실을 얘기하고 싶은가 보지."
그녀는 그가 빙긋 웃는 걸 보았다. 그는 말했다.
"하긴 진실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말이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에 좀 익숙해진 건 사실이야. 그렇지 않아?"
그는 담뱃불을 껐다. 그대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자크는 대답했다. "난 익숙해지지가 않아, 그나마 루디가 있고 바다가 있으니 견디지만."

사라는 말했다. "여기는 다른 곳이든, 어디선가 휴가는 보내야하니까. 안 그래?"
"아마도, 하지만." 그는 머뭇거렸다. "난 그런 사고방식을 썩 좋아하지는 않아."

"난 떠나고 싶어. 여행이 하고 싶다고. 여행이 하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야. 2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여행만 해 봤으면."

"내가 지성을 발휘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됐으니까."
"오만이야. 게다가 지성 따위 난 아무래도 좋아."
"말은 늘 그렇게 하지. 하지만 난 점점 내가 지성을 쓸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 그건 정말 최악의 오만이다."

 "안녕." 남자는 인사했다.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짐칸 상자로 허리를굽혀 수경을 천천히 꺼냈다. 그의 얼굴이 흔들거리는 사라의 발끝을 스쳤고, 그는 그 발끝에 키스했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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