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이번 휴가가 갑갑하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우리들은 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이렇게 모두 모여 서로 어울리고 사랑하는데 말이야. 대체 뭐가 더필요한 거지?"
"아마도 낯선 사람 아닐까? 이곳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신기할 정도로 단절돼 있잖아."

"그렇긴 해, 어쩌면 우정만큼 낯선 사람들과 우리를 단절시키는것도 없을 거야."

"넌 한 남자랑 사흘 이상을 만난 적이 없잖아. 그런 건 배워서 알수 있는 게 아니야."
"뭐가?"
"낯선 사람의 가치.."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을걸, 한 남자랑 사흘 이상을 지내 본 적이 없다면…."


"그게 너희 부부 두 쌍이 다 나한테 그러고 싶은 의욕을 북돋는본보기여야 말이지."
"난 오히려 우리 부부는 제법 고무적인 본보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어떤 부부도 그렇지 않아, 심지어 가장 이상적인 부부조차사랑을 장려하지 않는다고, 아니야. 너도 부부의 틀 안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거야."

다이아나는 미소 지으며 선언했다.
 "체험된 모든 사랑은 변질된사랑이다. 잘 알려진 얘기잖아."

"그거 알아? 가끔씩 너는 참 네 얘기를 안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
"내가 워낙에 아무 생각이 없거든. 가끔은 생각 자체가 뭔지 아예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누구나 조금씩은 있는 생각이고, 내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니잖아. 왜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야?"
"그 생각은 더 이상 안 하거든."

"혼자서만 눌러두기 힘든 말들이 있어. 난 네가 나에 대해 석연치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싫어."
"네가 그렇게 말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이해했어,
그러니까 그 얘기는 더 안 해도 돼."

나도 우리가 어느 선에선, 그러니까 잘못 표현하거나 거짓으로 말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선에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이전도, 이후도 아닌 딱 그 경계에서. 

하지만 그래도 난 기를 쓰고 침묵을 고수하는 사람들보다 그 경계에 부딪쳐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 경계를 허물고 표현해 보려애쓰는 사람들이 더 좋아. 그래, 어쨌든 나한텐 그 사람들이 더나아 보여. 너는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나한테 품고 있는 감정을말하지 않은 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어. 난 그게 싫어. 너한데 상처가 될 테니까. 확신해."

"어쩌면 말보단 다른 걸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말과 똑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를 똑같이 홀가분하게 해 주는 다른 거."

"날 이해해줘, 이미 벌어진 일이야. 난 주워 담지 못할 말을 해버렸고, 넌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아. 이제 그 모든 게 우리 사이에 가로놓였어. 네가 마치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이 군다면,
내 말은 엄청난 무게를 갖게 돼. 본래 의도했던 것보다 몇 천 배는 더. 착잡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모든 면에서 가장 겁 많은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큰 위험을 무릅쓴다는 거.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감히 절대 엄두를 낼 수 없는 것까지."

"공포심과 위험은 결국 같은 거니까."
"그럴지도, 위험을 무릅쓸 용기를 주는 게 바로 공포심일 수도 있지. 혼자서 두려움에 떠느니 차라리 뭐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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