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 주에 내 친구는 하숙집을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비웠다. 나는그가 사건을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인상이 험한 남자여럿이 찾아와 배질 선장의 거처를 물었고, 나는 홈즈가 자신의 가공할 만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예전에 수없이 그랬듯 변장을 하고 가명을 쓰면서 일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대체로 그런 광기 속에 홈즈만의 방식이 숨어 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어떤 사람은 그 방식 속에 광기가 있다고 할지도 모르죠."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왓슨, 자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 자네가 여태까지 모든 걸 훌륭히 설명했다고 말해야겠네. 자넨 내 보잘것없는 성공에서 큰 역할을했어. 그런데도 습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왔지. 

자네는직접 빛을 내지 못할지 몰라도 빛을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일세. 천재성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천재를 자극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사람들이 있지. 고백하건대, 왓슨, 나는 자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네."

짓눌린 잔디를 내려다보는 홈즈의 진지한 표정과 눈빛을 보니 그가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홈즈는 냄새를 쫓는 개처럼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어떤 사실이라도 불확실한 의혹에 시달리는 것보단 낫죠."

"이 사건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습니다. 원래 상상력이 없으면 공포도 느낄 수 없죠."

그가 말했다. "이봐, 왓슨, 나는 여러 미덕 중에 겸손을 높이 사는 사람들에게 동의하지 않네. 논리가라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그걸 과대평가하는 것만큼이나진실을 멀리하는 행위지. 그러니까 우리 형이 나보다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그가 말했다. "나 자신을 좀 더 믿어야 했습니다. 어떤 사실이 기나긴추리 과정을 거친 결과와 맞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려야 했어요."

식탁의 저녁 식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허기를 채우고 파이프에 불을 붙인 그는 반쯤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온전히 철학적인 태도를 취할준비가 되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으레 취하는 태도였다.

"사실을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속이려고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가 타고난 열정과 지혜를 법을 수호하는데 쏟아붓는 대신 법과 맞서는 쪽을 택했다면 얼마니 끔찍한 범죄자가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홈즈의 존재는 극적인 순간에 더욱 돋보였다. 홈즈가 이 엄청난 소식을 듣고 흥분하거나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 터였다. 그것은 타고난 성격이 무신경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과도한 자극을 받다보니 성격이 무뎌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둔해졌을지는 몰라도 인지 능력은 지나칠 정도로 활발했다. 조금 전 들은 말에 나는 공포를 느꼈지만 홈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포화 상태의 용액에서 결정이 형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화학자처럼 침착하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친구는 깜짝 놀랐다. 그는 차갑고 창백한 얼굴 아래 활활 타오르는영혼이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요?"

"탐정에게는 모든 지식이 유용한 법이죠."

"선반에서 내 인명 색인 좀 내려 주게."
그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시가 연기를 구름처럼 내뿜으며 느릿느릿 책장을 넘겼다.

그가 말했다. "내 목록 중에서 M 항목은 제법 괜찮지. 모리어티만으로도 눈에 띄는데, 독살범 모건에 으스스한 기억의 메리듀, 체어링 크로스 역 대합실에서 내 왼쪽 어금니를 부러뜨린 매슈스까지 있으니까."

"세상은 명백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누구나 그걸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자네가 권총을 가져가는 게 좋겠어. 강철 부지깽이를 엿처럼 휘어 놓는 사람과 상대하는 데는 ‘엘리 2호‘가 제격이지. 그리고 칫솔만 챙기면 될 거야."

"과거와 현재는 내 조사 범위에 속하지만, 한 인간이 미래에 어떻게 할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군."

나는 내가 주변 사람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셜록 홈즈와함께 있으면 언제나 나 자신이 어리석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자네는 보긴 하지만 관찰하진 않아.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예를 들어 보세. 자네는 복도에서 이 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수도없이 봤겠지."
"물론이지."
"몇 번이나 봤지?"
"수백 번은 넘을걸."

그렇다면 계단이 몇 개인지 알고 있나?"
"몇 개냐고? 모르겠는데."
"그렇다니까! 자넨 관찰을 하지 않아, 눈으로 보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라네."

홈즈가 말을 이었다. "이 모든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여러분 앞에 제공된 유일한 진짜 단서의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요행히 그 단서의 의미를 알아차렸고, 그 이후부터 발생한 모든 일은 세가 세운 최초의 가설이 옳다.
는 것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논리적인 절차를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요."

셜록 홈즈는 피살자의 시계태엽을 감아 봄으로써 피살자가 태엽을 감은 지 두 시간이 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피살자가 잠자리에 든 지 두 시간이 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것이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5푹푹 찌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베이커 스트리트는 찜통 같았고, 길건너편의 노란 벽돌에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아플 정도였다. 저것이겨울날의 안개 속에 그토록 음침한 빛이 서렸던 바로 그 벽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블라인드는 반만 쳐져 있었고, 홈즈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아침 우편으로 받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인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추위보다는 더위를 더 잘 참을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덕분에 32℃ 정도의 더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왓슨, 우리가 캐루더스 대령을 교도소에 보내고 난 뒤 내가 얼마나 지루해하고 있는지는 자네도 알잖아. 내 정신은 헛도는 엔진 같아. 머리는 일하라고 있는 건데 할 일이 없으니 터져 버릴 지경이라고, 일상이따분하고 신문을 읽어도 아무 재미가 없어. 범죄 세계에서도 대담무쌍한 사건이나 가슴 설레는 로맨스가 아예 사라져 버린 모양이야. 그런데도 내게 새로운 사건을 맡을지 말지 묻는 건가?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더라도 말이야."

8월 2일 밤 9시 정각, 역사상 가장 끔찍한 8월이었다. 타락한 세상에이미 신의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텁지근하게고여 있는 대기 속에 무시무시한 정적과 희미한 기대감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인류학 박물관이든 선생님과 같은 두개골 모형을 가져다 놓으면훌륭한 장식이 될 겁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두개골은 정말 탐이 나는군요."

셜록 홈즈는 이 특이한 손님을 자리에 앉게 했다. "자신의 생각에 푹빠지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분이군요. 저도 그렇긴 합니다만."

"이런! 이번 사건은 생각보다 더 위험하겠어. 영리한 사람이 범죄자가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왓슨,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관찰할 때일세. 우린 적국에 쳐들어온 스파이나 다름없으니까."

"난 자네 집 침실 창문이 거울 앞에 섰을 때 오른쪽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이렇게 명백한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할 걸세."
"어떻게..."

"왓슨, 난 자넬 잘 알아. 자네는 전직 군인답게 깔끔한 사람이지. 매일아침 면도를 하는데, 이런 계절에는 햇빛을 조명 삼아 면도를 할 거야.
그런데 얼굴 왼쪽으로 갈수록 면도 상태가 부실해지더니 왼쪽 턱 아래는 통 깔끔하지가 않아. 얼굴 왼쪽이 오른쪽보다 햇빛을 덜 본 게 틀림없어. 양쪽이 똑같이 빛을 받았다면 자네 같은 사람이 이렇게 면도할리가 없지. 난 지금 관찰과 추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아주 사소한걸 이야기했을 뿐이야.

"별난 것과 불가사의한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범죄가 가장 불가사의한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사건에는 추리를 이끌어 낼 만한 새롭거나 특이한 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번 사건도 시체가 평범하게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다면, 다시 말해 사건을 주목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기이하고 충격적인 장치가 없었다.
면 무척 해결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사건의 기이한 세부 사항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답니다. 특이한 요소는 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사건을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지요.

☆"자넨 내 규칙을 적용하지 않을 작정이군. 내가 여러 번 말하지 않았니? 불가능한 것들을 제거했을 때 남아 있는 건 아무리 더무니없이 보여도 진실인 법이라고."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 봐야 자네도 내 의견을 따르게 될 걸세. 그렇지 않다면 산더미같은 증거를 들이밀 테니까. 그러면 결국 자네의 이성도 무릎을 꿇고내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겠지."

"왓슨, 내가 보기에 지금까지 다룬 사건 중 이보다 더 기묘한 사건은없었던 것 같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다섯개의 오렌지씨앗

"당신은 세계 최초로 추리를 정밀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내 친구는 진심 어린 나의 칭찬을 듣자 기뻐하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홈즈가 다른 건 몰라도 수사 방식에 쏟아지는 찬사에 대해서만큼은 소니가 예쁘다는 칭찬을 들을 때처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관찰을 하고 인과 관계를 재빨리 분석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은 대체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이더군. 더 큰 범죄일수록 단순한경향이 있지. 그럴수록 동기가 더 명백하게 드러나니까."

"아니, 홈즈 씨 아니세요! 세상에! 어떻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거기 가만히 계시는 대신 앞으로 나와 내 턱이라도 한 방 먹였다.
면 당장 알았을 겁니다. 아, 홈즈 씨는 정말 재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권투 실력이면 틀림없이 성공했을 텐데요."
"들었지, 왓슨, 다른 모든 일이 잘 안 풀려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하나가 남아 있는 셈일세."

"부족한 자료로 섣부른 가설을 세우는 일은 우리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기묘해 보이는 일일수록 막상 파고들면 별로 까다롭지 않네.
정말 알쏭달쏭한 건 평범하고 특징이 없어 보이는 범죄일세. 평범한얼굴이 가장 알아보기 힘든 것처럼 말이지." 홈즈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부류 중 하나가 친구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자야. 그런 여자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가끔은아주 큰 도움이 되기도 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부추기기도 하지."

나는 셜록 홈즈와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 왔지만 한 번도 그가 자기 친척이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다소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는데, 자기 이야기를 극도로 삼가는 탓에 나는 이따금씩 그를 속세와 동떨어진 인물, 지적으로 뛰어나긴 하시만 동정심이 결여되어 심장 없이 두뇌만 있는 존재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나 새 친구 사귀기를꺼려하는 것 역시 삭막한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지만, 가족에 대해 일체의 인급을 삼가는 데 비하면 그것은 차라리 약과였다. 결국 나는 그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무척 놀랍게도 그가 형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탐정의 기술이 안락의자에 앉아 추론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걸로 끝난다면 형은 사상 최고의 범죄 전문가가 됐을 거라네. 하지만 형에게는 그럴 야망도, 열정도 없지. 심지어 자신의 해답을 확인하러 나가는것조차 귀찮아 할 거야. 자신이 옳다는 걸 애써 입증하느니 차라리 틀린 것으로 치고 말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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