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었습니까?"
"제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던 곳에요."

고귀한 정신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다.

"런던의 범죄자들은 죄다 멍청한 놈들이야. 여기 창문 밖 좀 내다보게,
왓슨, 사람들이 어렴풋이 나타나서 희미하게 보이다가 또다시 구름 같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잖나. 도둑이나 살인자라면 호랑이가 정글속을 돌아다니듯 모습을 감춘 채 런던을 돌아다니기 딱 좋은 날이야.
모습이 드러나는 건 목표물에 달려드는 그 순간뿐이지."

"사소한 절도 사건은 제법 되지 않나."
홈즈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 거대하고 음울한 무대는 그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범죄를 위한 거야. 내가 범죄자가 되지 않은 게 런던에는 천만다행이지." 그가 말했다.

"왓슨, 자네라면 미치광이나 치매 환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바보 천치와 한 방에서 자는 게 싫겠니?"
"아니, 전혀."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그것 참 다행이군." 홈즈가 말했다. 그날 밤 그가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제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성함을 말씀하셨는데요. 그쪽이 독신자고 사무 변호사이며 프리메이슨 회원이고 천식이 있다는 분명한 사실 말고 다른 건 모르겠군요."

나는 내 친구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주리했는지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과, 법률 문서한 뭉치, 회중 시곗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우리의 의뢰인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범한 사람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이렇게 대담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자들은 셋뿐이야. 오버스타인과 라로티에르, 에두아르도 루카스지. 세 사람 다 만나 봐야겠어."
"고돌프 스트리트의 에두아르도 루카스 말인가?"
나는 조간신문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렇다네."
"못 만날 거야."
"왜지?"
"엊저녁에 집에서 살해당했으니까."

우리가 모험에 나설 때면 내 친구는 번번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를 까무러칠 듯이 놀라게 했다는 사실을 개닫자나는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왓슨?"
"암호문이야, 홈즈."
내 친구는 순간 무엇을 알아냈는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암호긴 한데 그리 어렵진 않네, 왓슨, 이건 이탈리아어일세."

"기괴망측한 사건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를 충분히 검토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사건을 해결할 열쇠가 될 때가 많다네."

"자네, 뻔뻔하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노력하는 수밖에."
"아주 좋아, 왓슨! 부지런한 꿀벌 이야기와 더 높이‘라는 구호를 합친것 같군, 노력하는 수밖에. 이게 우리의 좌우명일세."

내게 뱀같이 교활한 지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모티머가 불쾌한 수준까지 질문의 강도를 높여 오자 슬쩍 프랭클랜드의 두개골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물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 모티머는 마차를 타고오는 내내 골상학에 대해서만 떠들어 댔다. 나는 셜록 홈즈와 괜히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것이 아니었다.

"왓슨, 자넨 날 잘 알잖아. 난 결코 겁이 많은 인간이 아닐세. 더군다나곧 닥칠 위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용감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라네."

"인간의 이목구비는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일세. 자네의 이목구비는 충실한 하인 같지."

"얼마 전에 내가 자네에게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한 구절을 읽어 준걸 기억하겠지. 면밀하게 추론하는 자는 친구가 말하지 않은 생각까지읽는다고 한 구절 말이야. 자넨 그걸 저자의 놀라운 상상력 정도로 취급했어. 내가 줄곧 버릇처럼 자네 생각을 읽는다고 해도 못 믿겠다고했지."

"아니, 난 그런 말한 적 없네."
"입으로는 말 안 했지. 하지만 눈썹으론 분명 했다고."

"홈즈 씨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사악함을 꿰뚫어 보신다.
고 들었어요. 홈즈 씨라면 절 둘러싼 위험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알려주시겠죠."

우리가 마이링겐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 때는 5월 3일이었다. 우리는 나이가 지긋한 페터 스타일러가 운영하는 영국식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주인은 제법 똑똑한 사람이었고, 런던의 그로브너 호텔에서 3년 동안 일한 적이 있어서 영어 실력도 유창했다. 

4일 오후, 우리는 주인의 권유로 길을 나섰다. 산 너머에 있는 로젠라우이의 촌락에서 하룻밤 머물 셈이었다. 그런데 호텔 주인은 산 중턱에 있는 라이헨바흐 폭포 쪽으로 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폭포를 구경하려면 길을 좀 돌아서 가야 한다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팔짱을 낀 채 바위에 기대서서 휘몰아치는 폭포를 내려다보는 홈즈가 보였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홈즈의 모습이었다.

"교수가 사라진 순간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어. 내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모리어티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 그들의우두머리를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 복수하고 싶어 할 사람이 셋은 넘었으니까. 다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고, 그들 중 하나는날 잡을 게 틀림없었어. 

그런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내가 죽은 줄 알면 녀석들도 마음을 놓을 테지. 그러면 녀석들이 방심한 틈을 타 내가그들을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러고 나서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세상에 알릴 생각이었어. 인간의 두뇌는 얼마나 빨리 움직이던지 모리어티 교수가 라이헨바흐 폭포에 떨어지는 순간 이 모든 생각을떠올렸다네."

"파이프 담배는 가끔 아주 흥미롭지. 시계와 구두끈을 제외하면 이거보다 주인의 개성을 더 잘 드러내는 물건도 없어." 그가 말했다.

"우린 몇 년 동안 같은 방을 썼으니 같은 감방에서 생을 마감해도 괜찮겠군."

"이건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인데, 런던의 지저분한 뒷골목에서보다 이렇게 한가롭고 아름다운 시골에서 훨씬 더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는 법일세, 왓슨"

"어떤 단서로 모자의 주인을 찾을 생각인가?"
"추측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지."
"모자만으로?"
"물론이지."

"장담하건대 평범한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것도 없지."

셜록 홈즈는 운동 자체를 위해 운동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근력이 좋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본 바로는 홈즈는 분명 자신의 체급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권투 선수 중 한 명이다. 하지만그는 아무 목적 없는 운동을 시간 낭비로 보았고, 탐정이라는 직업에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몸을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다. 일을할 때만큼은 그는 지치지 않고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대체로 식사를 간단히 했으며, 일상생활도 엄격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했다. 가끔 코카인을 복용하는 것을 빼면 나쁜 습관 같은 것도 없었다. 그것도 사건이 거의 없고 신문마저 지루할 때 무미건조함을 타파하려는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내 친구의 손에 들어온 사건의 성격과는 별개로,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그의 능력과 예리하고 치밀한 추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로서는 그가 일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가장 어러운 수수께끼를 빠르고 명쾌하게 풀어 나가는 솜씨를 지켜보는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홈즈가 언제든 거침없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너무 익숙해진 터라그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웬만하면 영국을 떠나지 않는 게 좋아. 내가 없으면 런던 경찰국이 쓸쓸해할 테고, 범죄자들이 활개를 칠 테니까 말이야."

"안타깝지만 왓슨, 자네가 내린 결론은 대부분 결함투성이라네. 솔직히 말해 자네에게 자극을 받는다고 했던 건 자네의 오류에 주목하는과정에서 가끔 진실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어."

"개는 같이 사는 가족을 닮게 마련이지. 우울한 가정에서 활기찬 개를보거나, 화목한 가정에서 축 처진 강아지를 본 적이 있나? 사나운 주인옆에 사나운 개가 있고, 위험한 주인 옆에 위험한 개가 있는 법이지."

"마차를 타고 올 때 토비를 데려오게나."
"개 말인가?"
"맞아. 특이한 잡종견인데 후각이 놀랄 만큼 뛰어나지. 난 런던 경찰전체의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토비의 힘을 빌릴 걸세."

"사람 자체가 악질인지 주인이 시켜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무례하게도 내 앞에 개를 풀어놓지 뭔가. 그래도 개든 사람이든 내 지팡이를 싫어해서 별일은 없었다네. 그 사건 이후 나와 마부 사이가 악화되는 바람에 더는 조사할 수 없게 되었지."

나는 금고를 여는 일이 그의 특별한 취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숙녀들의 명예를 집어삼킨 용, 다시 말해 이 녹색과 금색을 띤 괴물과 맞서는 것이 홈즈에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은 사건에 방해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중요한것은 거꾸로 추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건아주 유용하고 쉬운데도 사람들은 별로 연습하지 않죠. 일상생활에서는 순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는 방식을 소홀히여기기 쉽습니다.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 쉰 명이 있다면 분석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 셈이죠."

"내 눈은 얼굴을 장식하는 수염이나 모자가 아니라 얼굴 자체를 살피도록 훈련되어 있네, 변장을 간파하는 능력이야말로 탐정이 갖추어야할 첫 번째 자질이지."

☆연구를 즐기는 학생에게는 해답이 없는 문제가 흥미로울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독자는 짜증스러워할 것이 분명하다.

"홈즈 씨, 당신은 마법사군요! 이게 거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다른 곳에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내가 외쳤다. "정말 놀라워요! 당신의 활약상은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사건의 진상을 공개해야 해요. 당신이 하지 않는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박사님." 홈즈가 대답했다.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하군! 저기 작은 구름 좀 보게. 꼭 거대한 홍학의분홍 깃털처럼 떠돌아다니지 않나? 짙은 구름이 낀 런던 하늘 위로 붉은 태양의 가장자리가 보이고 있어, 태양은 수많은 사람을 비추지만장담하건대 그들 중에 자네와 나처럼 기이한 사건에 얽혀 있는 사람도없을 걸세.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인간의 사소한 야망과 노력은 얼마나 하찮게 느껴지는지!"

"그러고 나서 당신은 목사관으로 가서 밖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집으로돌아갔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죠?"
"당신 뒤를 밟았으니까요."
"아무도 못 봤는데요."
"뒤를 밟고 있는데 당신이 보면 안 되죠."

"맹세컨대, 왓슨, 자넨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네. 아주 잘했어. 중요한걸 모두 놓치긴 했지만 요령은 터득했군, 색깔을 구별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만 보지 말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 집중해야 해."

"당신에게 비공식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 동안 미해결 살인 사건이 세 건이나 되어선 안 되죠, 레스트레이드, 하지만 몰세이 사건은 당신답지 않게… 그러니까 제법 잘 처리했다는 말입니다."

"이건 귀족이 보낸 편지 같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자네는 오늘 아침생선 장수와 세관 감시원에게 편지를 받았을 텐데."
"맞아. 내게 오는 편지는 개성이 다양하다는 게 매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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