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열 살의 소녀다. 그녀는 산 속에 자리잡은 작은 ‘모임에속해 있다. 그녀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모임‘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형제자매는 없다. 소녀는 태어나 얼마 뒤에 부모를 따라 이곳에왔기 때문에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저마다하루 일과가 바빠서 가족이 얼굴을 마주하고 느긋하게 대화를 할 만한 기회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사이는 좋다. 낮이면 소녀는 그 지역초등학교에 다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로 농사일을 한다. 시간이나는 대로 아이들도 농사일을 거든다.

모임‘의 어른들은 바깥세계의 풍조를 싫어한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자본주의의 바다에 뜬 아름다운 고도(島)이며 성채라고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소녀는 자본주의(때로는 물질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어른들이 그말을 할 때마다 귀에 잡히는 경멸에 찬 어조를 보면 그건 아무래도자연이나 올바름에 어긋나는 비뚤어진 모습을 가진 것인 듯하다. 

자신의 몸이나 생각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외부세계와는 가능한한 관련을 맺어서는 안 된다고 소녀는 배운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서서히 오염될 것이라고,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그리고 당신은 그걸 걱정하는 거군요. 만일 권총이 등장한다면 그건 반드시 어딘가에서 발포되는 결과를 낳고 말 거라고."
체호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래."

"그래서 가능하다면 내게 권총을 건네주고 싶지 않은 거고."
"위험하기도 하고 불법이기도 해. 게다가 체호프는 믿을 수 있는작가야."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아니에요, 현실세계의 일이지."

운전석에는 기관사의 모습이 보였다. 차창에는 승객들의 얼굴도 보였다. 하지만 열차는 정차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역사(驛舍) 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후 열차의 뒷모습이 멀어져가자 주위는 여느 때 없이 괴괴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슬슬 고양이들이 올 시간이다. 그는 자신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고양이 마을 같은 게 아니다. 그는 그제야깨달았다. 그곳은 그가 상실되어야 할 장소였다. 그곳은 그 자신을위해 준비된, 이 세상에는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열차가 그를 다시원래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그 역에 정차하는 일은 이제 영원히 없는 것이다.

나에 대한 진실도 역시 똑같이 상실되겠지요. 진실의 도움 없이는 다.
는 아무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그것도 정말 아
버지 말이 맞아요."

덴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데 지쳤어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해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건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 알아들어요?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는 없어요. 아니, 그게 아버지 탓이라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역시 그런 피해자 중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도 아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을 거예요. 안 그래요?"
아버지는 침묵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