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파리는 포위되어 있고, 굶주리고 허덕이고 있었다. 지붕 위의 참새들도 아주 드물어졌고, 하수도에는 쥐들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아무것이나 먹어댔다.

어떤 날에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이야기를 하기도했지만, 그들은 비슷한 취미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놀랄 만큼 서로 뜻이 맞았다.

소바주 씨는 손가락으로 산꼭대기를 가리키면서 중얼거렸다. "프러시아 인들이 저 위에 있겠지요!" 이 황량한 지역 앞에서 어떤 불안이 두 친구를 마비시켰다.

‘프러시아 인들!‘ 그들은 한 번도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없기만, 몇 달 건부터 파리 주변에서 프랑스를 파괴하고, 약탈하고, 학살하고, 굶주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을가긴 그들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그 미지의 승리한 국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오심에다 일종의 미신적인 공포를 추가하였다.

낚시찌의 깃털이 연방 물 속에 잠기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모리소는 갑자기 화가 났다. 그것은 그렇게 서로 싸우고 있는 그 미친 사람들에 대하여 평화스러운 사람이 갖는 분노였다.

그들은 시야가 좁은 온순한 가람들이 갖는 건전한 양식으로 큰 
정치적인 문제들을 풀어 가면서, 사람들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승마
가난한 사람들이 남편의 각은 봉급으로 간신히 살아가고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두 아이가 태어났고, 처음의 궁색스러움은 가려져 있으면서도 수치스러운, 그런 보잘것 없는 빈곤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기체를 보존하고자 하는 귀족 출신가정의 곤궁이었다.

또 4년 동안, 가난에 시달리는 이 부부는 일요일마다 상리제를 산보하거나 또는 동로에게서 얻은 우대권 덕른에 겨울에 한두 간극장에 가는 것밖에 다른 오락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봄에, 상사로부터 츠가업무를 위탁받아 그는 3백 프랑의 특별수당을 받았다.

이 돈을 가져다 주면서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아리에트, 식구들이 무언가,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즐거워할 놀이계획을 짜 봅시다."

 그녀는 기관차처럼 달리는 말의 가슴팍에부딪쳐, 세 번이나 머리 위에서 곤두박질을 한 후, 공중에 치마를 휘날리면서 열 발짝도 더 되는 먼 곳에 나둥그러졌다.

제기랄, 이렇게 서투르면 집에나 있을 것이지. 말을 몰 줄모르면 길에 나와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될 거 아냐."

미친 여자
여보게, 하고 마티유 당돌랭이 말했다. 오디새(鳥)는 전쟁중에 있었던 참으로 끔찍한 한 일화를 내게 상기시킨다네.

그 당시에 이웃으로 미친 듯한 여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불행의 충격으로 정신 착란을 일으킨 여자였지. 예전에,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그녀는 단 한 달 동안에 아버지와 남편과갓난아기를 잃어버렸던 것이지.


죽음이 한번 집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죽음은 그 문을 알고있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라도 곧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거든.

15년 동안이나 그녀는 그렇게 갇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났네. 그리고 12월 초순에 프러시아 군이 코르메이유로 쳐들어왔네.

미뉴에트
큰 불행도 그다지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습니다 - 장 브리델이 말했다.
 그는 회의주의자로 인정받고 있는 노총각이었다.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전쟁을 목격했었지요. 연민 없이 시체들을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자연이나 인간들의 강한 잔인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공포와 분개의 부르짖음을 지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어떤 가슴을 에는 듯한 사소한 것을 보았을때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그 전율이나 고통스러운 느낌을 조금도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재빠른 인상에서 내게 남겨진 감동을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중에서 하나만을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오직 내 상상만이 내 감동의 쓰라린 결과를 감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나이 오십입니다. 그때는 젊었었고,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염세적인 철학이 배어들어 약간 침울하고 약간 몽상적이었던 나는 떠들썩한 카페나 고함을 질러대는 친구들,
어리석은 여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찍일어났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즐거움의 하나는 아침 여덟 시경에 혼자서 뤽상부르의 묘판苗板을 산책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뉴에트란 춤의 여왕이지요. 그리고 여왕들의 춤이고요.
아시겠어요? 왕들이 없어진 이후부터 미뉴에트도 없어졌지


나는 이상한 감동으로 마음이 혼란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우울함으로 감동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마치 애처로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어떤 모습을, 한 세기나 뒤진 구식 망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웃고 싶기도 했고 울고싶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멈추었습니다. 그들은 춤추는 태도를 끝마쳤습니다. 잠시 그들은 마주 보면서 의외의 태도로 얼굴을 찌푸리고 이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흐느끼면서서로 껴안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추억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파라다니며 나를 몹시 괴롭혔으며, 마치 하나의 상처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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