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해 달력 하나를 샀다. 그 달력은 올해 10월부터 12월까지를 담은 세 장이 더 붙어 있었다. 올해 10월이 되기 전에 이 달력을 구성했던 사람은 한 해의 4분의 1을 더 선사받는 느낌이었을까.

그 세 달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도, 새삼 찾아온 새해 첫달에한 마음을 다잡고 새출발할 수 있었을까. 1년이 15개월이라면 세월에 대한 허무함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그렇다면 그 세 달을 전부 떠나보낼 즈음에야 이 달력을 사게 된나는 어떨까. 시간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여행이 소중해진다. 바꿀 수 없는 시간에 미련을 두는 대신, 여행을 통해공간을 바꾸고 나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

모두가 바쁜 아침, 강변을 천천히 거니는 사람은 개를 들고 다니는할아버지밖에 없었다. 삶의 끝에 버티고 선 벽 안에 가지고서야 조금 여유를 갖게 되는 인간의 신세.

글루미 선데이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세체니 다리를걸어서 네 민 녔다. 으르렁대는 듯 탄식하는 듯 기도한 트경의 들사상 두 개가 입구를 기키고 있는 이 아름다운 다리는 극중에서항상 죽음의 모티브와 연결되어 있었다.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군 장교로 돌아오게 될 한스가 일로나에게 청혼했다가거절당하자 여기서 투신하고, 자신이 작곡한 노래 때문에 연이어 자살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망연자실하게 된 안드라스도 이곳에서강을 내려다보다가 ‘유혹‘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페이지를 찢어내지 못해 괴로워할 때 우편사람들은 책 전체를 불 속에 던지고 싶어 한다. 

☆차도와 보도가 철저히 분리된 세체니 다리는 걸어서 건널 때 자연스레 그 아래 강을 쳐다보게 만든다. 세상과 벽을 쌓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는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비록 일요일이 우울할지라도, 그것은 이틀이나 지난 뒤의 일일 것이다. 음악이 흘러가고 침묵이 남았다. 내가방금 들은 곡 글루미 선데이 는 분명 부다페스트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음악 뒤에 이어진 이 감미로운 침묵 역시 부다페스트의 선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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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들러 리스트, 크라쿠프

중세 도시의 위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크라쿠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사건의 여진 속에서 무심한 세월의 힘을 빌려 간신히 버터내고 있었다. 거리마다 무거운 역사가 문신처럼 압착되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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