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기억 못해도 심장은 기억한다. 먼저 기억하는 것은 정신이지만, 끝까지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몸이다.

앞의 여학생이 《다윈상‘The Darwin Awards> 이라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봤다. 국내에도 출간되어 나 역시 흥미롭게 읽은적이 있는 그 책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죽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인류의 진화에 기여한 사람들의 실화를 모아놓은 책이었다. 바닷가에서 욕조를 보트처럼 띄워놓고 물놀이를 즐기다가 물이 들어온다고 물 빼는 바닥의 마개를 뽑아서 익사한 사람, 건물 옥상에서번지점프를 즐기기 위해 발을 묶고 아래로 뛰어내리다가 장력을염두에 두지 않은 밧줄의 긴 길이 때문에 바닥에 부딪쳐 사망한 사람까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실수로 마지막을 맞은 죽음의 사연들이 그 책에 빼곡했다.

〈존 말코비치 되기> 1999, <어댑테이션 2002에 이어 또 하나의 걸작 시나리오를 써낸 찰리 카우프먼이 2005년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따냈다. 오래된 연인들이 갈등 끝에 서로에 대한기억을 모두 삭제하지만, 또다시 서로에게 끌리면서 재차 사랑에 빠지게되는 역설적인 사랑 이야기.

사랑을 말하면 사랑을 하게 된다
<러브 액츄얼리>, 런던

 "살아가는 일이 우울해질 때 난 히스로 공항으로 간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반갑게 포옹하는 풍경들을 넘치도록 쓸어 담으며 시작한다.

그 조용한 골목길의 줄리엣 집 2층은 낮인데도 밝혀놓은 장식용
 꼬마전구들이 사랑스럽게 빛났다. 그 집이 있는 곳은 줄리아 로버츠와 휴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노팅힐>1999의 배경이 되었던 노팅힐 근처였다. <러브 액츄얼리>의 감독인 리처드 커티스는 <노팅힐>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다. 커티스는 자신이 직접 살아온 장소들을 <노팅힐이나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 속에 심어놓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애틋해도 결국 모든 크리스마스는 지난 크리스마스‘가 되어버리고, 추억은 사랑의 과거 시제로 화석화된다.

런던을 관통하는 템스 강의 남쪽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템스 강에서 가장 예쁜 다리로 정평이 나 있는 앨버트 다리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때마침 비가 그치고 선명히 무지개가 펼쳐졌다. 

옷을 사는 대신 음반 매장에 들어가 영화 속에서 캐런이 듣는 조니 미첼의 시디 보스 사이즈 나우 Both Sides Now)를 샀다. 담배를 수십 년간 피운 것 같은 목소리라고 남편 해리가 말하자, 캐런은 "조니미첼을 사랑해요. 진실한 사랑은 평생 가죠. 무미건조한 내게 감성을 불어넣은 스승이에요" 라고 대꾸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면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이 모든 곳에 존재하는이유는 어디에서든 사랑을 애타게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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