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했다. 머릿속에선 차마 할 수 없는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냥 집으로 돌아와 애비게일, 집으로오란 말이야. 이런 건 그만둬 너희 아빤 우릴 버렸어. 널 버렸단 말이야. 넌 내 보상이라고, 널 그리워해야 하는 게 너희 아빠가 받을 벌이란 말이야, 도대체 왜 아빠를 선택한 거야?
이제 매들린은 애비게일하곤 어떻게 있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없었다. 꼭 헤어진 남자 친구와 평범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것 같은 기분, 두 사람은 무심한 사이라는 사실을 애써 의식해야 하는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애비게일이 방문객이 된 뒤부터 매들린은 자신이 자신을따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들린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마흔 살이다.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거다.
가정 분위기를 결정하는 건 엄마니까. 매들린이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신의 결점, 너무 빨리 화를 낸다는 것,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내릴 때가 많다는 것, 옷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는 것, 신발 사는데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 다른 사람을 짜증 나게 하고 불쾌하게만든 뒤에도 자신은 귀엽고 재밌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이제 마음속에서 앞으로 치고 나온 것이다.
결혼은 타협에 관한 거다. ‘여보, 진짜 그렇게 유치하고 고색창연한 걸 갖고 싶으면, 내가 진품으로 사줄게, 소삽한 싸구려 가짜 말고 페리는 아주 상냥하게 그런 말을 할 거다.
페리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셀레스트는 페리의 속마음을 들을 수있었다. 사실 페리는 ‘네가 조잡한 싸구려야 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셀레스트가 떠나면 폭력은 더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제 더는 페리가 셀레스트를 그런 식으로 취급할 수 없다. 그러니까 페리는 셀레스트를 다시 존중해야 하는 거다. 두 사람 관계는 원만해질 거다. 페리는 정중하지만 차가운 전남편이 될 테지. 페리의 주먹보다 그 차가움이 더 아프겠지. 그건 확실했다. 페리는 셀레스트가 떠나면 5분도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날 거다.
페리는 가스용접기처럼 확 화가났다가 금세 가라앉는다. (셀레스트는 다르다. 셀레스트는 페리보다 더 화를많이 낸다. 셀레스트는 원한을 품는 사람이다. 페리는 원한은 품지 않지만, 셀레스트는 품는다. 셀레스트는 끔찍하다. 셀레스트는 모든 걸 기억했다. 매 순간, 상대방이 한 말을 한 마디도 빠지지 않고 기억했다.)
모두 일기예보가 틀리길 손 모아 빕시다(내일 비가 올 확률이 90퍼센트라는군요. 하지만 모두 일기예보가 어떤진 아시죠?)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이 뱀에게 물린 것보다 훨씬 더아픈 법이거늘, 애비게일.." 매들린은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향해 말했다. (매들린은 배우들이 오디션 치르는 현장을 많이 봤기 때문에 리어 왕>에 나오는 대사를 많이 외우고 있었다.)
셀레스트는 언제나 이 모든 일이 괴롭힘을 당한 여덟 살 아이가 느낀 좌절과 분노와 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했다. 페리가 모욕을 받았다거나 창피하다고 느낄 때마다 셀레스트가 참아내야 하는 건 분노를 억제하고 있던 뚱뚱한 작은 소년이 휘두르는 폭력이었다. 꼬마가 아니라 180센티미터가 넘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말이다.
부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에겐 멀리 떠나달라는 부탁을 하기않는 법이니까. 셀레스트와 페리는 당연히 괴로워하겠지만, 패스는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모든 게 지나갈 거다.
그저 찻잔 속에 이는 폭풍으로 끝날 거다.
제인도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낙관적이 될 때가 많다는 걸 잘 알았다. 전화기 안에서 낯선 목소리가 "채프먼 부인?" 하고 부를 때마다 제인은 ‘어머, 나 자동차에 당첨된 거 아냐?‘ 하는 우스꽝스러운, 사실은 불가능한 생각을 하곤 했다. (경품 같은 건 응모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제인은 특별하고 별난 자기 성격이 정말 좋았다. 어처구니없는낙관론이 결국엔 언제나 그렇듯 아무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날때도 그랬다.
언젠가 셀레스트는 모든 관계는 ‘사랑의 계좌‘ 를 관리하는 것과같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배우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예금을 드는 행위다. 배우자에게 나쁜 말을 하는 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행위다. 모든 관계는 사랑의 계좌에 항상 잔고가 남아 있게 관리해야 한다. 아내 머리를 벽에 찧는 행위는 엄청난 돈을 인출하는거다. 아이와 함께 일찍 일어나 아침을 만들어주는 건 예금을 하는거다.
제인이 알고 있는 페리의 진실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건의미도 없고 너무 현학적인데다. 심지어는 너무 악의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을 기억할 땐 근사한 영화를 기억하는 게 훨씬 낫다.
제인은 장례식에서 우는 셀레스트를 보지 못했다. 셀레스트의 눈은 통통 붓고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앙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끔찍한 고통이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처럼, 어떤 일이 벌어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톰과 제인은 친구로 지낼 운명인 기다. 제인으로선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이진 않았다. 친구라면 평생 볼수도 있으니까. 연인보다는 친구를 훨씬 오래 볼 확률이 높다고 하니까.
☆제인과 톰은 공원 벤치로 갔다. "빅터 버그, 피리위 곶을 산책하기좋아했던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매일 우리 곁에 앉아 있다" 라는 문구가 적힌 명판이 붙은 벤치였다.
"강연을 할 땐 몇 명을 택해서 보는 거야." 언젠가 페리는 사람들 앞에 나아가 연설을 할 때 필요한 기술이라며 그렇게 말했었다.
"청중 가운데 나한테 호의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을 찾는 거야. 그럼 그 사람을 보면서 강연을 하면 돼. 그 사람하고 나, 단둘이 있는것처럼."
그럴 때마다 수지는 훌륭한 정신 치료사라면 으레 해야 하는 질문을 했다.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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