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렇게 생각해요. 표면적으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렇죠. 우리는 진실을 사랑해요. 내 생각에는 우리 둘 다 상황을 사실 그대로 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물론이죠. 예를 들면 넬 베리커가 그래요. 그녀는 상황을 자기 눈에 비치는 대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죠.

"관습에 얽매여서 본다는 뜻인가요?"
"그래요. 하지만 그건 양면적이죠. 예를 들어 조는 자신이 관습을 무시한다고 우쭐대지만 그것이 그녀를 그만큼 편협하고편파적으로 만들기도 하니까요."

"네, 뭐가 됐든 일단 ‘반대‘ 하고 본다는 점에서 그렇죠. 조는그래요, 반항아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죠. 어떤 대상이든 장점을찬찬히 살피지 않아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조에게는 내가 아주 형편없는 남자죠. 나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조는 실패한 사람에게 감탄해요. 부자인 나와 결혼하면 잃는 것 없이 득을 보게 될 텐데도요. 요즘엔 유대인이라고 해서 크게 꺼리지도 않잖아요."

드디어 탑의 공주>가 완성됐다. 버넌은 흥분했던 것만큼이나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가망 없는 졸작이었다. 불구덩이에 던져버리는 게 최선일 것 같았다.

"아니요. 당신은 참 어리석은 아이 같군요. 유머감각, 강인한기질,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귀중한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당신은 좁은 집에서 사는 것을 사랑이 큰가 작은가 하는 감정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려 해요. 하지만 이건 정신적인 문제예요. 당신은 버킹엄 궁전에 살건 사하라 사막에 살건 상관없을거예요. 그건 당신 머릿속이 음악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넬은 환경에 좌우되는 사람이에요. 당신과 결혼하면 친구들과도 멀어질 테고요."

"그래요. 난 당신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쓸데없이 자만하는걸 보면 화가 나요." 제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넬에게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희생해주길 바라면서정작 자신은 어떤 희생도 하지 않으려 하잖아요.
"어떤 희생 말이죠?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애버츠 퓨어슨츠를 파는 건 빼고요?"

탑의 공주>는 금세 잊혀졌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삼 주 후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에는 호평을 받았다‘고 할 만했다. 기존의 통념을 깰 수있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젊은 음악가들을 냉소적으로 비판한비평가들도 있었다. 또다른 비평가들은 미숙하긴 하지만 큰 가능성을 보인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극에 일관한 완벽한아름다움과 예술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열광했다. 

"만약 내가 이틀만 기다렸다면, 공연 첫날 노래하지 않았다.
면 목이 괜찮았을 거라는 거요? 네, 버넌은 몰라요. 당신이 약속해준다면 앞으로도 모를 거고요."

긴 침묵이 흘렀다. 불행한 얼굴의 두 사람은 텅 빈 벽난로를바라보았다. 바깥에서 택시들이 템스 강변을 획획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난 딱히 그렇지 않아요. 전쟁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사실 건강도 모든 일의 본질까지 바꾸진 못해요.

그들은 행복하게 웃으며 나갔다. 버넌은 모든 걸 잊었다. 후회도, 양심도, 제인까지도 …

 조는 흥분하며 받아쳤다.
"아니, 그렇지 않아! 네가 틀렸어. 이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세상이 보일 거야.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될 거야, 전에는몰랐던 것들, 잔혹함, 악, 전쟁의 황폐함을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함께 맞설 거야."

조의 얼굴이 상기되고 의기양양해졌다. 시배스천은 전쟁이조를 사로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전쟁은 인간을 사로잡았다.

☆인간은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견디게 해줄 환상과 허위의 벽을 필요로 하니까. 그녀는 그것이 가련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했다. 인간은 그것을 믿고 싶어하고, 그럴듯하게 자신을 속인다고.

"넌 동의하지 않는구나! 넌 전쟁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
"전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대단한 변화를 가져온 적도없어."
"그래, 하지만 이번 전쟁은 전혀 달라."
시배스천은 미소지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신상에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새롭게 느껴지는 법이야."

그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궁지에 빠진 남자를 구해줄 여자야늘 있지만, 산 정상에 있는 남자 곁에 있어줄 여자는 없어. 난거기서 혼자 지독하게 외로울 거야.

또 한 가지 넬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불평 않고 참는 가난한 자들의 영웅적인 정신력이었다.

이 말을 뱉는 순간 그는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왜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할까? 그는 잘해보려고 다짐하는데 어머니만 만나면 왜 매번 그렇게 불쾌해지는 걸까? 버넌은 넬을 끌어안았다.

"난 당신이 좋아하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한다.... 그런 문제가 아냐.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놓아버릴 수 없는 일…….… 날 놓아주지 않고 내가 떨칠 수도 없는 일...... 보고 싶지 않지만 보지 않을 수없는 얼굴 같은 거야…….…

아주 잠깐이지만 넬은 버넌에게서 몸을 뗐다. 그녀는 라이벌과 마주선 것 같았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버넌의음악이 내심 두려웠다. 그가 음악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지만 않았어도,

난 버넌을 많이 사랑했어요. 정말 사랑했죠. 버넌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무너져내렸어요. 정말 그랬어요.
하지만 버넌은 내가 슬픔에 빠져 지내는 걸 원치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죽은 사람은 남은 사람이 슬픔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당신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군요. 제인이 말했다. "죽은 사람은 남은 사람이 슬픔을 극복하고 힘을 내서 아무일 없다는 듯 살아가길 바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남은 사람이 자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게 떠들죠. 

☆하지만 난 그들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낙관하는지 모르겠어요. 난 그게 자기 편하자고 지어낸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데, 왜 죽은 자는 모두 같은 걸 원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죽은 사람 중에는 틀림없이 이기적인 사람도 많을 거예요. 죽었다 하더라도 그는 분명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을 거란 소리예요.
죽었다고 단번에 아름답고 이타적인 생각이 샘솟을 리 없죠. 

눈물이 흘렀다. 넬은 흐느꼈다. 너무해.. 너무해. 남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버넌은분명 날 원망하겠지만, 나는 몰랐어. 내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다시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난 정말 행복했는데!‘

가끔 버넌은 모두가 자신을 그냥 조지 그린으로 살게 내버려두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지 그린으로 살아가는 편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악몽같았어- 원래의 나로 돌아으기 해 속을 하려야 한다는 게 좋은 기억들이 그 기적들은 스내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지. 난 지금 늘 지독겁쟁이였던 것 같아 보고 소지 않은 것들은 한계가 인수지 않으려 했고 ,

하지만 넬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괴로움에 젖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결국 난 이런 사람인 거야….…

하지만 그녀는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사 년의 안락한 삶이 그녀의 의지를 묶고, 그녀의 목소리를가두고, 그녀의 몸을 마비시킨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짐승은 나무와 철사로 만들어진 단순한악기가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던 것 같아. 미래와 과거가 동시에 존재하고, 인간이 공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시간을여행할 수도 있다고 말하자면 어떤 것에서 다른 것으로 말하는 수학자가 있어. 

기억이란 정신의 습관에 불과하고, 방법만알면 지난 일뿐만 아니라 미래의 일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난 다 가능하다고 믿어.

우리는 부분적이지만 미래를 분명히 알고, 가까이 인식하고 있어. 난 그렇다고 믿어.

하지만 악덕과 타락과 무질서 속에서 종종 놀라운 것이 생겨나기도 하지. 예술에 대한 러시아의 사상은 전반적으로 독특난생처음 들어보는 유치한 헛소리도 있지만 거지의 누더기 사이로 보이는 빛나는 살결처럼 멋진 번뜩임이 엿보이거해:든....

‘이름 없는 짐승‘. 집단적 인간……… 혹시 공산주의 혁명기념탑에 그려진 그림 본 적 있나? 〈철의 거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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