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늙은이야.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음악이 있지 ……… 오늘 들은 것처럼 다른 음악도 있고… 하지만 난 천재의 작품은 알아볼 수 있어. 천재를 사칭하는 자가 백 명은 되지. 전통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파괴자들이 수두룩해. 그런데 백한번째에 창조자가 있어. 대담하게 미래로 발을 내딛는 사람이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었다.

"그래, 나는 천재를 알아볼 수 있어, 설령 내 마음에 들지는않더라도 알아보기는 해. 그로엔이 누구든 그는 분명 천재일그건 미래의 음악이었네 ·

"거인! 자네와 그로엔은 아마 속으로 웃고 있겠지? 모두가 몰록 신상 같은 그것을 거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왜소한 인간이 진정한 거인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어. 돌의 시대와 철의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인간, 문명이 붕괴되고 멸망한 뒤 다시 새로운 빙하시대를 이겨내서 우리가 꿈도 못 꾸는 새로운 문명으로 우뚝선 인간이 바로 거인이라는 걸 말일세

"나이가 들면서 확신하게 됐어. 인간만큼 가련하고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고, 그러면서 그다지도 완전히 놀라운 존재는 없다는 것을 …."

"궁금하군." 그가 말했다. "<거인> 같은 작품을 만들게 한 것이 말이야. 무엇이 그것을 만들었을까? 그 양분이 뭐였을까? 유전은 도구를 주고….. 환경은 그것을 연마해 완성시키고 …….…욕정은 그걸 일깨웠겠지 .......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
거인의 양식이.

피, 파이, 포펌,
영국인의 피 냄새가 나는구나
그가 살았건 죽었건
그놈 뼈를 갈아 내 빵을 만들 거야.

천재란 잔인한 거인이지! 인간의 피와 살을 먹고사는 괴물, 난 그로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는 분명 자기 피와살…… 어쩌면 다른 이의 피와 살까지 자신 안의 거인을 위해바쳤을 걸세..... 

정말 이상했다. 뭐가 이렇게 다 이상할까? 왜 전보다 별별 것들이 더 이상할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할까?

버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유모가 고마웠다.
유모는 뭐든지 알았다. 그녀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버넌의 우주를 다시 가만히 세워주었다. 그녀는 절대 웃지 않았다. 

☆버넌은 그저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그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였다. 모르는 게 없고 주머니에 동전을 넣고 다니는어른이 되는 과정.

짐승은 넓은 거실에 살았다. 다리가 네 개고 갈색 몸통은 반들반들했다. 또 한 줄로 길게 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는데더 어렸을 때 버넌은 그게 이빨이라고 생각했다. 크고 매끈하고누런 이빨, 처음 짐승을 봤을 때 버넌은 홀딱 빠지는 동시에 겁먹었다.

짐승은 건드리면 이상한 소리를 냈다. 화가 난 듯 으르렁대거나 날카롭게 울었는데, 세상 어떤 소리보다 버넌을 아프게, 몸속까지 아프게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떨리고울렁거리고 눈이 따갑고 화끈거렸다. 하지만 묘한 끌림 때문에그 옆을 떠날 수 없었다.

이제는 많이 자라서 잘 알게 됐다. 그 짐승의 이름은 그랜드피아노이고, 짐승의 이빨을 두드리는 것은 ‘피아노 연주!‘ 이며, 만찬이 끝나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그것을 해준다는 것을, 

버넌은 홀린 듯이 조금씩 다가갔다. 마침내 고모가 돌아봤을때 버넌은 눈물을 흘리면서 작은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연주를 멈추고 물었다.
"왜 그러니, 버넌?"
"난 그게 싫어요." 버넌이 훌쩍였다. "싫다고요. 그 소리를 들으면 여기가 아파요." 그러고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았다.

"음악이 싫다면서 왜 그냥 나가버리지 않을까요?" 니나가 말했다.
"나갈 수가 없어요." 버넌이 울며 말했다.

"아, 그럴 수도 있죠!" 니나가 모호하게 말했다. "음악성이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니까요."
마이러는 니나가 데어 가 사람답게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음악성은 연주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판가름나는 게아닌가싶었다. 버넌은 음악성이 없는 게 확실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언제나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해야 했다. 사실대로 말할수는 없었다. 그래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테니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단다. 한번 뒤처진 말은 승리의기회를 잡기 힘든 법이지 ….… 그게 아무리 애초의 실수라고 한들, 상황을 호전시키지는 못해. 넌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 아무튼 프랜시스와 있는 동안은 즐겁게 지내라. 그런 사람은 많지않으니까."

"눈앞에 있는 건 뒤에 있는 것만큼 무섭지 않아. 그걸 기억해. 뒤에 있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 무서운 거거든. 그러니까뒤돌아서 그걸 마주봐. 그러면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될 거야."

☆☆☆프랜시스는 독한 말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을 때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냉소했다.

오히려 이런 신경질적인 폭발에 뼈저린 고통과 불행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자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란 얼마든지 자기 자신을 소름끼치는 혼란 속에 처박을 수 있는 존재야!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전부 자기 자신 때문이야. 대단한 가족이지! 자신은 물론 우리와 관계한 모든 사람에게 불행을 안겨주니까."

"왜냐하면 데어 가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지도 못하고 성공하지도 못하니까. 잘 살아가질 못해."

버넌은 특이한 현상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극이 반복될 때마다 엄마는 더 커지고 아빠는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힐난고독설이 난무하는 감정의 폭풍이 지나가면 마이러는 몸도 마음도 고무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원기와 냉정을 되찾으며 비극에서 빠져나왔고, 그런 뒤에는 세상을 향한 선의로 넘쳐났다.

월터 데어는 반대였다. 아내의 맹공격을 겁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반응했고,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그가 방어 무기로 사용하는 얼핏 정중해 보이는 냉소는 어김없이 아내를 극도의 분노 상태로 몰아갔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조용한그의 절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녀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앞으로도 절대 달라지지 않아. 네가 각오해야 해, 마이러. 넌 돈 후안 같은 사람과 결혼했고, 노력했고, 너그럽게 바라보려고도 했었잖아. 넌 그를 좋아해, 키스하고 화해해. 그게 내가 해줄 말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주고받기."

"결혼은 성가신 일이야." 시드니가 생각에 깊이 잠겨서 말했다. "우리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과분하지. 그건 의심할 여지가없어."

애처로운 마이러. 그녀는 전반적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가 마이러와 결혼한 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애버츠 퓨어슨츠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이러는 그를 사랑해서결혼했다. 모든 문제가 거기서 비롯됐다.

월터 데어는 마음 한구석으로는 자신이 돌아오지 않는 편이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최선일 것 같았다. 그가 없어도버넌에게는 엄마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을 하니 묘하게도 배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가 아들을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하지만 버넌은 집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열렬하고 진정한 애착도 없었다.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가 오히려 가장좋았다. 엄마의 감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툭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던 어린 시절의 과묵함은 여전했다. 한두 사람과 이야기할 때가 아니면 그과묵함은 평생 계속될 것 같았다. 버넌에게 학교 친구들은 여러 가지‘를 함께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고 버넌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오직 한 사람을 원했다. 그 한 사람은 버넌의 인생에 일찌감치 들어왔다.

첫 방학을 맞아 돌아왔을 때, 버넌은 조지핀을 발견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미워해." 시배스천이 말했다.
하지만 상관없어. 우리가 없으면 그들도 곤란해질 테니까. 우리 아빠는 정말 부자거든.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어."
시배스천에게는 묘하게 오만한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월터 데어는 전사할 경우를 대비해서 편지를 남겼다. 그러나 수신인은 마이러가 아니었고, 그녀는 이 편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녀는 슬픔에 잠겼지만 행복해했다. 남편은죽어서 그녀 차지가 됐고, 그의 생전에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이러는 상황을 원하는 대로 만드는 능력을 발휘해서 자신의 결혼생활이 아주 행복했던 것처럼 그럴듯한 이야기를 엮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아빠는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버넌은 알았다. 아빠가 불쌍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빠에게 느끼는 감정은 애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슴이저릿한 외로움 비슷한 것이었다. 아빠는 죽었다.……… 니나 고모도 죽었다. 물론 엄마는 살아 있지만, 그건 달랐다.

버넌은 엄마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러지못했다. 마이러는 늘 아들을 끌어안으며 이제는 우리가 하나가되어야 한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버넌은 엄마가 듣고 싶어하는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목을 껴안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