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적의 공습으로 사망한 부호, 고든 클로드.

공습 당시 그는 그의 어린 아내와 하인부부, 하녀1명과 아내의 처남과 같이 있었는데, 지하실로 대피한 5명 중 유일하게 그의 아내만 살아남았고, 혼자 동떨어져 2층 침실에 있던 처남 역시 죽음을 모면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젊은 미망인, 로절린 클로드는 고든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고, 그녀의 오빠와 함께 교외의 저택에 자리잡는다. 고든이 사망 전 금전적으로 도와주던, 그의 친척들은 그녀가 상속받은 재산에 자연스레 불만을 가지게되고, 그녀의 과거를 들춰내 그녀를 몰아내려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의 찬척들 중 고든의 동생, 라이오넬의 아내인 캐서린 클로드가 실종된 로절린의 전남편을 찾아달라며 포와로를 찾아온다. 그녀의 의뢰에 처음엔 거절하지만 이전에 들었던 고든의 사망기사, 그리고 며칠 후 접하게 된 이녹 이든의 사망으로 사건에 관심을 갖게된다. /1948

"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아는 바가 있어요. 재미있는 얘기지.
아까도 말했듯이 난 그녀의 첫 남편인 언더헤이와 안면이 있거든요. 훌륭한 친구였지 한때는 나이지리아의 지방행정관을 지내기도 했는데, 자기 일에 대해

서는 아주 열심인 일류급 인물이었답니다. 그 친구가 그 여자와 결혼한 것은케이프타운에서였어요. 그녀는 그 당시 유랑 극단과 함께 거기에 와 있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을 당해서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요. 그녀는 그 가련한 친구 언더헤이가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과 그곳의 광대한미개척 원(原)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걸 듣고는, ‘정말 멋지군요. 하며 부러움을 표시하고는 자신이 얼마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를 넋두리해낸 게요. 그녀는 그와 결혼하는 바람에 소원대로 됐지요.

그 친구는 그녀를 몹시 사랑했답니다, 불쌍한 사람 같으니. 그런데 시작부터 일이 뒤틀린 게요. 그녀는 밀림을 싫어했고 원주민들도 두려워했으며, 또지루해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녀가 꿈꾸던 생활은 지방이나 돌아다니며 극장 사람들을 만나고, 전문적인 사업 이야기나 나누는 정도였으니까요. 따라서오지(奧地)에서 고독감을 느껴야 한다는 건 그녀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었답니다. 물론 내가 직접 그녀를 만난 것은 아니고, 난 이 모든 얘기를언더헤이에게서 들은 거요. 그런 사실이 그 사람을 아주 곤란하게 만들었나봐요. 그래도 그는 그 일을 원만하게 처리해서 그녀를 집으로 보내면서 이혼을 해주겠다고 한 거요.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바로 그런 일이 있은 직후였지요. 그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 아무한테나 애기를 털어놓고 싶어 했다오

그는 자기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고 하더군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하지만 난 천애고아나 다름없어요. 내게 신경 써 줄 친척이나 친지는 아무도 없어.
만일 내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면 로절린은 미망인이 될 것이고 또 그건 그녀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죠‘ ‘그러면 자네는?" 하고 내가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마 1천 마일쯤 떨어진 어떤 곳에서 이녹 이든이라는사람이 나타나서 새로 삶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잘 알진 못하지만 안면은 있다오. 고든 클로드의 형인 제레미 클로드가 아

니오? 이것 참, 정말 재수 없군 내가 조금만 그걸 생각했어도 .."
"저 사람은 사무변호사예요." 젊은 멜론 씨가 말했다.

이 일은 1944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리고 포와로가 방문을 받은 것은 1946년 늦은 봄이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피하려 들 필요는 없지."

그는 이제야 클로드라는 이름이 왜 낯설지가 않았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 공습이 있었던 날 클럽에서 들은 얘기가 떠오른 것이다.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은 얘기를 계속 떠들어대던 포터 소령의 지루한 목소리가 뇌리에 감돌았다. 그는 신문이 바스락거리던 소리와 포터 소령이 갑자기 턱을 떨어뜨리며깜짝 놀라던 표정이 기억났다.

☆동양에서의 그 타는 듯한 긴 여름엔 정말 웜즐리 베일과 초라하지만 시원하고 상쾌한 집,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정말로 그리웠었다. 린은 어머니를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귀찮게 여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집을 멀리 떠나 있으니어머니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성가셨던 일은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향수병을더해 주는 것으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때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지! 어머니의 달콤한 불평 소리에서 어머니가 늘 하는 상투적인 잔소리하나라도 들을 수 있다면 뭐든지 다 드리고 싶을 정도였었어. 오, 다시 집에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절대, 절대로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이제 그녀는 군복무를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되어 화이트 하우스에 돌아와있었다. 여기에 돌아온 지 3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미 이상할 정도의 불만족스런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주 한결같은 모습들이었다. 집이며 어머니며 롤리며, 그리고 농장과 친족들 모두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달라져서는 안 되면서도 달라져 버린 것은 그녀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비밀을 지켰다. 그러나 롤리는 외삼촌의 인자한 관심을 눈치챈 듯도 싶었다. 그는 자신과 조니가 돈을 대줄 만한 가치가 있는 젊은이들임을 외삼촌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랬다. 그들은 모두 고든 클로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친척들이 식객이거나 게으름뱅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녀는 퍼로 뱅크에서 살고 있겠네요? 린이 알고 싶다는 듯 물었다.
"그래, 당연하지. 요양소에서 나와서 갈 곳이라고 별다른 데 있겠니? 의사들말로는 그녀는 런던 교외에서 지내야 한다더구나. 그래서 자기 오빠와 함께퍼로 뱅크에서 지내고 있단다."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인데요?" 린이 물었다.
"무서운 청년이지!"

☆"정말 이상하기만 하단다. 고든은 늘 신중했었는데. 내 말은 여자 쪽에서 시도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란 얘기다. 예를 들어 그 마지막 비서만해도 그렇잖니. 정말 매우 뻔뻔스런 여자였지. 내가 볼 때는 매우 유능한 여자였지만 네 외삼촌이 그녀를 해고시켜 버려야 했을 정도가 아니었니."
린이 무심코 말했다.
☆☆"워털루야 늘 있게 마련이지요."(워털루는 벨기에 중부의 마을로 1815년 나폴레옹이 패전한 곳 ‘대 패배, 참패‘란 뜻으로도 쓰임.)

프랜시스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이 윗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제레미클로드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몸짓은 유별난 것으로 자신이 내적 동요를 느낄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프랜시스는 그의 그런 몸짓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아들인 앤터니가 어렸을적 중병에 걸렸을 때 한 번, 판결문을 생각하는 재판관을 기다릴 때 한 번, 제2차 대전 발발 시 라디오로 전쟁포고문을 듣기 위해 기다릴 때 한 번, 그리고앤터니가 군대에 가기 바로 전날이 고작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해심에 매우 감사해 했고 또 갑자기 늙어버린 듯한 모습을보며 매우 측은하게 여겼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속에는 뭔가가 응어리져 갔는데, 그 때문에 누구나 지닌 평범하고 보편적인 친절함이 다메말라버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그전보다도 더 정력적이고 더 유능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그녀의 엄격한 상식주의를 약간 염려하기도 했다.
제레미 클로드의 손이 다시 윗입술로 향했다. 불안하게 더듬거리는 모습이었다. 

"당신 정말 우습군요! 법률가인 당신 얼굴 뒤에는 꽤 놀라운 단편소설 같은생각이 있었군요 당신은 당신이 늑대들, 아니면 조키 클럽 등과 같은 곳의 임원들로부터 우리 아버지를 구해 주신 대가로 내가 당신과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방에 어떤 분위기(차가운 공기), 어떤 생각의 음영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프랜시스가 말했다.
"당신은 그런 사실을 내게 전혀 말해 주지 않았어요. 난 그녀가 아주 갖게되는 걸로 생각했지 뭐예요, 그래서 그녀가 죽을 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물려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거예요."

롤리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붉은 벽돌 빛의 피부에다 생각이 깊어 보이는 파란 눈과 매우 고운 머릿결을 지닌, 덩치가 크고 소박한 젊은이였다. 그는 몸에 밴 것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원만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재치 있게 즉답하는 재간을 부리듯 그는 신중함을 일종의 처세술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 요즘에는 모든 게 돈으로 통하는 것 같아." 그가 말했다.

"오, 고마워요. 제가 너무 꼴사납게 보이는군요. 하지만 전 정말 매우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 불행한 사람아 그래요. 이런, 손이 끈적끈적하군요. 하지만 당신의 깨끗한 손수건은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하여간 정말 고맙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린 죽음 속에 있는 생명, 그리고 생명 속에 있는 죽음이에요. 그래서 저는 죽은 제 친구들의 영체(體)를 본다 해도 놀라지 않을

" 그리고 경찰은 단순히 그 사람이 자기들을 화나게 한다는 이유로 그에게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그건 데이비드가 잘못이에요. 그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경찰은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마치몬트 양. 그에 대한 편견은 배심원들의 마음속에 있었이요. 그들은 검시관의제안에 따르기를 거부했지요. 그들이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경찰이 그를 체포해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들도 그가 유죄라고 보기에는 너무증거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걸 알려 드려야겠군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죠. 그게 내가 하는 일입니다. 그저 얘기를 나누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살인사건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시잖아요?"

포와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난 그저, 뭐라고 하면 될까, 뒷얘기나 주워 담고 있는 겁니다."

"오, 그렇게 보지 마세요, 포와로 씨. 너무 곤란해요. 그건 데이비드에 대한문제가 아니에요. 저에 대한 의문이었다고요! 전 변했어요. 34년 동안 나가있다가 이제 돌아와 보니 떠날 때의 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고요. 그건 곳곳에서 보게 되는 비극적인 현상이에요. 사람들은 다들 변해서 집에 돌아왔지요.
그래서 스스로를 재조정해야만 되는 거죠. 선생님이라면 멀리 나가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겠어요?"

☆☆"아가씨는 잘못 알고 있군요." 포와로가 말했다.
"인생의 비극은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겁니다."

"아가씨는 멀리 떠나고 싶었던 겁니다. 해외로 나가서 세상을 구경해 보고싶었던 거지요. 아마 롤리 클로드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지금도 아가씨는, 여전히 벗어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요! 오, 봐요. 아가씨, 그처럼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답니다!"
"제가 해외에 나가 있을 때는 집이 그리웠어요." 린이 변명하듯 외쳤다.

"그렇지, 그래요. 아가씨는 자신이 있지 않은 곳에 있고 싶어 하는 성격이니까. 아마 아가씨는 늘 그럴 게요. 아가씨는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집에 들어오는 린 마치몬트의 모습을 그려 보지만 그건 실현되지가 않지요. 왜냐하면아가씨가 생각하는 린 마치몬트는 진짜 린 마치몬트가 아니니까. 그 모습은아가씨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린 마치몬트에 불과한 거지요."

"동기, 바로 그게 우리를 미궁에 빠뜨린 것이었소, 만일 A가 C를 죽일 동기를 가지고 있고 B가 D를 죽일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렇다면 말이오,
A가 D를 죽이고 B가 C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을 법하지 않소, 총경?"
스펜스가 신음소리를 냈다.
"가만 계십시오, 포와로 씨, 여유를 가지시라고요. 전 당신이 AL B니 C니하는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이건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거나 다름없어요.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매우 닮았지. 모든 감정인간의 감정들, 셰익스피어가 드러내려 한 감정들 시기심, 증오, 시시각각 변하는 열정적 행동들이 여기에 있으니 말이오. 게다가 여기에는 또한 성공을꿈꾸는 낙관주의도 가세되어 있어요. ‘인간사에는 조수가 있게 마련, 만조(滿湖)를 타면 행운으로 가고……. 누군가가 그 말에 따라 행동한 겁니다, 총경.
기회를 붙잡아서 그걸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려 한 것 그리고 그건 완벽하게수행된 것이었소 말하자면 바로 당신의 코앞에서!?

"내가 보기엔 하나는 자살이고 또 하나는 우연사이고 또 하나는 타살이었소" 포와로가 말했다.

☆"무엇이 범죄를 유발시키는가?" 에르큘 포와로는 수사적인 어조로 물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자극을 필요로 하는가? 어떤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하는가? 누구나 다 범죄를, 어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저음에 나 자신이 물있던 겁니다만, 실생활로부터, 일상의 생존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온상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갑자기그런 보호를 빼앗겼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시련이 닥쳐올 때까지는 인간의 성격을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생애에 있어 그 시련은 일찍찾아오지요. 인간은 매우 빨리 자립해야 되고, 위험한 난관에 대처해 나가야 되고 또 그것들을 헤쳐나가는 수단을 취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게 나가는 길이든 아니면 우회하는 길이든, 어떤 쪽으로든간에 인간은 대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일찍 배우게 된다는 얘깁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테니슨(A. Tennyson, 영국, 1809~1892)의 장편시 이녹 아든(Enoch Arden)‘을 이용했다.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부인은 재혼을 한다. 그러나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아든은 자기 아내가 친구인 필립과 결혼해서 사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든은 자기만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자살하고 만다.
테니슨의 시는 위와 같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녹 아든의 의미가 꽤 다르게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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