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일인칭단수!
여덟편을 짧은 시간에 읽어내고 드는 생각은 이건 소설이라기보다는 하루키의 수필같다는 느낌?!
이 소설에 대한 기본 정보없이 읽었는데, 읽는 내내 그 동안 읽어 온 그의 많은 소설들이 언듯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의 모습이 많이 담겼기때문일거란 생각이 든다.
같이 일했던, 잘 알지못하던 여성과의 하룻밤, 그녀가 지은 단카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는 돌베개에.
18세가 된 내게, 어린시절 같이 연탄곡을 연주했던 여학생으로부터의 뜬금없는 연주회 초대,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노인이 던진 기묘한 질문을 그린 크림.
내가 만난 여자 중 가장 못생긴 여자 F*, 그녀와 듣던 슈만의 사육제carnaval.
이 외에도 5편의 단편이 하나의 경험을 담고있고, 어떤 글은 지나치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그 또한 하루키가 쓸 법한, 하루키니까 쓸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다음 작품은 장편소설로 만날 수 있길!

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 그녀가 말했다. 벽에 적힌 글자를 낭독하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중심이 여러 개, 아니,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않는 원." 노인이 이맛살을 한층 더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원을, 자네는 떠올릴 수 있겠나?"
아직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예의상 한번 생각해보았다. 중심이 여러 개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 그런 것을 그려보기란 불가능했다.

노인이 말했다. "알겠나, 자네는 혼자 힘으로 상상해야 돼. 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라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그렇게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게 하나라도 있는가." 그러고는 행을 바꾸듯 간결하게 헛기침을한 번 했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프랑스어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하는 거야.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비슬비슬 늘어져 있으면 못써, 지금이 중요한 시기거든. 머리와 마음이 다져지고 빚어져가는 시기니까."

당신은 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믿는 게 좋다.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

항의하는 편지 몇 통이 편집부 앞으로 날아왔다. 세상 사람들에게 유머감각이 결여된 건지, 아니면 내 유머감각이 워낙에 비뚤어진 건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작은 부위 한 군데가 마비된 듯한 감각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정말로 뉴욕일까?
틀림없이 뉴욕의 다운타운이었다. 나는 그곳의 작은 중고 레코드가게에 있다. 환상의 세계로 잘못 들어선 게 아니다. 극사실주의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 버드가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완만한 것이기도 해. 자네 머릿속에 떠오르는아름다운 프레이즈와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한없이 잡아 늘일 수도 있지.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만큼 길게 -혹은 영원에 다다를 만큼 길게, 시간이란 관념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어.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실제로 맞는 진짜 죽음은 철저하게 무거워. 그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갑자기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완전히 무통가 되어버려. 그리고 내 경우, 그 존재는 나 자신이었어."

그렇다, 버드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내 꿈에 찾아온 것이다. 한참 옛날에, 내가 그에게 보사노바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제공한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 갖고 있던 악기로 코르코바도>를 연주해주었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믿는 게 좋다.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

한때 소녀였던 이들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소년 시절 품었던 꿈 같은 것이 이제 효력을 잃었음을 새삼 인정해야 해서일 것이다. 꿈이 죽는다는 것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떤 때는 그 감각을 얻었고, 어떤 때는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
(안타깝게도 종이 만족스럽게 울린 적은 없다). 또 어떤 때는 손에 쥐고도 어느 갈림길에서 허무하게 놓쳐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그 재현의 감각은 내게 항상 이른바 ‘동경의 수준기水準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런 감각을 쉽사리 얻지 못할 때는 과거에 느꼈던 그 기억을 내 안에 조용히 소환했다.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하지만 정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은 음악을 포함하면서도 음악을 넘어선, 더욱 커다란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정경은 순식간에 내 마음속 인화지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아로새겨진 것은 한 시대 한 장소 한 순간의, 오직 그곳에만있는 정신의 풍경이었다.

팝송이 가장 깊숙이, 착실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미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팝송은 그래봐야 그저 팝송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 뒤를 이어 써갈 힘이 없다. 이런 기분 속에서살아 있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구 내가 잠든사이 가만히 목을 졸라 죽여줄 사람은 없는가?

☆카스테레오 라디오에서는 역시 비틀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또렷이 기억한다. 〈헬로, 굿바이〉라는 곡이었다. ‘너는 굿바이라 말하고, 나는 헬로라 말하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음악은 그 시절의 우리를 마치 벽지처럼 구석구석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는 괴롭지만, 결국 그녀는 내 첫속에 있는 특별한 종을 울려주지는 못했다. 아무리 귀기울여도,

종소리는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만 내가도쿄에서 만났던 한 여자는 그 종을 확실히 울려주었다. 그것은논리나 이론을 따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 혹은 영혼의 훨씬 깊은 곳에서 멋대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뿐,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환멸이니, 마음의 어둠이니, 그런 걸 혼자 떠안는 타입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거든. 확실히 말해, 속이 얕은 애라고 생각했어. 어릴 때부터 난 그애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그애도 나에대해 마찬가지였을 거야. 마음이 잘 안 맞는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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