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센브 - 오랫동안 미망인으로 있기엔 너무나 젊고 사랑스러운 여인. 그녀는 정열과 사랑 사이에서 늘 방황한다. 야모스 - 잔소리 많은 아내 사티피와 위압적인 아버지 임호테프 사이에서 맏아들로서의 권리를 지켜 나가려 고뇌하는 인물. 소벡 잘생기고 허풍이 심한 임호테프의 둘째 아들. 아버지의재산에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몹시 원망한다.
임호테프 – 권력과 재산을 지닌 묘소지기 승려이면서 큰 집안의 주인인 자신의 위치를 지나치게 과시한다. 그가 나이 어린첩을 집에 데리고 오면서부터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시작한다. 사티피 - 키가 크고 혈기가 많으며 목소리가 큰 여자로, 남편을마구 몰아세우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난폭하게 군다. 카이트 - 일상생활에서 오직 한 가지 관심밖에는 가지고 있지않다. 즉, 자기 자식들에 대한 사랑.
헤네트 — 자기 연민이 강하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가족들 간의싸움을 부채질하고서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하녀. 에사 ㅡ 자기 아들 임호테프를 늘 바보라고 나무라며 죽음을 비웃는 노부인. 그녀는 살인자를 알면서도 무모한 시험을 해본다. 호리 - 임호테프의 서기이자 사업 관리인. 레니센브의 안전에대해서 지극한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인 줄은 나중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
이피 아버지인 임호테프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막내. 하지만 지나치게 오만하여 늘 말썽의 씨를 안고 있다. 노프레트 나이 든 임호테프의 아름답고 나이 어린 첩. 묘소지기 승려 집안 가족들 간에 쌓여 있었던 질투심에 불을 붙인다. 카메니 - 임호테프의 먼 친척이면서 그의 사업을 도와 주는 서기, 잘생긴 용모에다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다. 그가 사랑의노래를 부르자 레니센브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이집트 테베 지방의 나일 강 서안(西岸)이고, 때는 기원 전 2000년경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의설정은 아주 우연스레 옛이야기에 힌트를 얻어 만들어졌다. 물론 다른 때, 다른 장소에서도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나는 1920년부터 1921년에 걸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 탐험대가 룩소르 왕릉 건너편에 있는 돌무덤에서 발견한 제11왕조 시대의 편지 두세 통에 의거해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6개월이라는 시간의 차이를의식치 않게 하기 위해 이 책의 각 장(章) 머리에 등장하는 날짜는 실제 농사철의 날짜를 사용했다. 따라서, 홍수기는 7월말부터 11월말까지, 겨울은 11월말에서 3월말까지, 여름은 3월말부터 7월 말까지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소벡의 목소리는 높고 확실했다. 그는 자기 생각이라면 모두 옳다고 아주 간단히 믿어 버린다. 반면에, 야모스의 말투는 낮게 깔리는목소리에 웅얼거리기까지 해서 의심이 많고 자신 없어 하는 그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야모스는 매사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한 집안의 맏아들로서 아버지가 북쪽에 있는 땅을 둘러보러 집을 비우고 있는 동안 농장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행동이 느리고 조심성 많은 그는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만들어낸다. 체격이 단단하나 동작이 느린 그에게서는 소벡의 쾌활함이나 자신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창백하게 반짝이는 나일 강물 위로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다시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젊은 남편 케이가 죽었다……케이의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리고 딱 벌어진 어깨. 그는 명부의 세계에서 죽음의 신 오시리스와 함께 있다 –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 레니센브는 외톨이가 되었다.
이 순간 그녀는 자기가 8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이실감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8년을 잊고 싶었다 - 행복으로 충만했던 8년, 그런만큼 사별(死別)의 고통으로 가슴 찢어졌던 8년.
‘그래, 잊어버리자, 다시 옛날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거야. 묘소지기 승려 임호테프의 귀여운 딸, 그저 명랑하고 천진스런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야! 남편의 사랑 - 지금 이 고통 속에서 떠오르는 그이의 사랑은 얼마나 잔인하기까지 한 것인가! 지금도 그의 단단한 다갈색 어깨와 입가에 흐르던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 케이는향유를 바른 몸에 수의를 걸치고 저 머나먼 황천길로 떠나갔다.
나일 강의 조각배에 몸을 싣고 낚시를 했던 케이, 햇빛 속에서 밝게 웃는 그에게 그녀는 테티를 안은 채 활짝 웃어 보였었다.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니!" 레니센브는 생각했다. ‘잊어버려. 이미 끝난 일이야. 나는 내 집으로 돌아온 거야. 여기는 모든 게 옛날 그대로야.
고집센 목소리, 그녀는 야모스의 아내다. 키가 훤칠하고 정열적이며 말이 많은 여인. 얼굴은 딱딱하고 엄해 보이기도 하지만, 잘생긴 편이다. 그녀는 매사를 자기 독단으로 처리하고, 하인들에게 곧잘 화를 내며, 사사건건 실수를 찾아내어 독설과 고집으로 상대방을 꺾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사티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사이사이에 카이트의 조용하고고집스런 목소리도 섞여 나왔다. 카이트는 부잣집 맏며느리감처럼 수수한 인상을 주는 여자인데, 작은 오빠 소벡의 아내다.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는 여자들처럼 그녀는 자식들 이외의 일은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었다.
레니센브는 자리를 떴다. 헤네트에 대한 묵은 감정이 느글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상하도록 모두들 얼마나 헤네트를 싫어했던가. 그 여자의 울음섞인 목소리,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는자기 연민, 싸움을 붙여 놓고 그걸 즐기는 심통는 그 여자는그랬다.
그녀는 그런 것이 오히려 헤네트가 자신의 삶을 즐기는 유일한 방법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헤네트의 생활은 사실 권태롭고 따분한 일의 연속이 아닐 수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게아닌가.
그녀 말마따나 노예처럼 일했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고마와하지 않은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헤네트에겐 도대체 감사하고픈 마음이 생기지도 않으니까. 자기가 한일을 저렇게 생색을 내니 가끔 고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도 싹 달아나는 것이다.
헤네트, 그녀가 아무리 남좋은 일을 한다 해도, 그녀를 위해힘써 줄 사람은 없다. 얼굴은 못생긴 데다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여자였으니. 그녀는 이 집안 속사정에 훤했다. 발소리도 안 나게 가만가만 걷는 걸음, 밝은 귀, 잽싸고 날카로운 눈 그녀에게 비밀이란 없었다. 어미 새가 알을 품듯, 남의 비밀을 몰래 자기 속에 품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비밀을 말해 주고서 그들의 갖가지 반응을 엿보며 좋아한다.
레니센브는 실눈을 뜬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거기서는 그주위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었다. 주방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들, 에사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온통 뒤섞인 그 여자들의 목소리는 쉴새없이 조잘거리고, 웃고,투덜거리고, 나무라고, 깜짝깜짝 놀라고.....
레니센브는 막힘 없이 계속되는 이 수다스런 여자들의 목소리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여자들 – 시끄럽고 덜렁거리는 여자들! 집안을 꽉 채운 여자들! 조용히 정숙하게 있을 줄도 모르는 여자들! 언제나 소리만 지를 줄 알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지긋지긋한 여자들!
"파피루스에 글을 쓸 수 있다면 재미있을 거예요. 어째서 사람들은 글을 배우려고 들지 않는 걸까요?"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요. 별로 필요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분명 재미있긴할 거예요."
밭이나 보리, 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지 종이에 잉크로 쓴 ‘표시‘는 아니지요. 기록이며 편지가 불에 타고 서기들이 다 제 갈 길로 흩어져 버린다 해도 씨뿌리고 추수하는사람은 그대로 있고, 그들로 인해 이집트는 여전히 살아갈 수있는 것이랍니다."
레니센브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말을 걸었다. "예,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요. 실제로 보고만지고 먹는 것은 진실이며, ‘내 창고에는 240부셀의 보리가 쌓여 있다.‘라고 써놓는다 쳐도 실제로 갖고 있지 않는 한 아무소용도 없다는 뜻이겠죠? 쓰려고만 한다면 거짓말도 쓸 수 있으니까요."
"레니센브, 당신은 모르고 있는 겁니다. 재앙은 밖에서 기습해 올 적도 있지만 - 그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지요 —— 내부에서부터 차츰차츰 괴어 썩어가는 수도 있답니다. 매일 조금씩 벌레먹기 시작한 과일이 나중엔 온통 썩어 문드러져서 떨어지게 됩니다 —— 병에 시달리다가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 얘기는 잊어버리세요. 나는 농작물을 망쳐 버리곤하는 병충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레니센브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난 또 뭔가 불길.… 아니에요. 됐어요.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요."
"나는 진정으로 아버지를 존경하오.." "그래요. 아버님께서도 그걸 아시니까 그렇게 이용하시는 거예요! 당신은 자신이 지지 않아도 될 십자가를 메고 있는 거라고요. 소벡 서방님처럼 당신도 해야 할 말은 아버님께 분명하게 말씀드려, 다시는 당신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만드셔야 돼요. 소벡 서방님은 누구에게도 거침이 없잖아요."
그러나, 당신 제 말 잘 들어요. 당신은 너무 나약하고 물렁물렁해요. 당신네 집안은 핏줄에 붉은 피가 아니라 우유가 흐르고 있나 봐요. 당신은 아내나 자식들 걱정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는 적당한 위치에 서지도못할 위인이라고요." 야모스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결코 그렇게 하실 분이 아니세요. 우리가 아버님 소유의 양식을 먹고, 그 분 한 사람에게 매달려 있으며, 자신이 없으면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는 생각에 만족해 하고 계시는분이세요." 소벡은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보았다. "당신, 이제 보니 아버님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인데."
그러나 이보다 좀더 나은 격언이 있다는 걸 아느냐? ‘아내가주인이 되는 것을 삼가라.‘ 라는 것이지. 내가 너라면 이 격언을명심하겠다......" 야모스는 할머니를 쳐다보다가 몹시 얼굴을 붉히며 그 자리를 물러났다.
"어머, 아버지는 참 작으시구나. 난 좀더 크신 줄 알고 있었는데." 실망 같은 것이 한 줄기 그녀의 몸속을 지나갔다.
아버지는 실제로 작아진 것일까? 아니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좀더 위엄 있는모습이었다.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누구에게든 닥치는 대로 설교하고, 이따금 그녀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는 말을 하는, 특별한 개성을 지닌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녀 눈앞에 나타난 모습은 그저 작은 키에 알맞게살이 붙은 — 스스로는 상당한 인물처럼 행세 하고 있어도 남의눈에는 별 볼일 없는 한 노인에 불과했다. 아니면, 내 눈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방정맞은 생각을 하다니, 이게 웬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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