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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정말 귀엽고 재미있다. 겉표지부터 아기자기하게 귀엽다 싶더니만 속지 맨 앞 장부터 맨 뒷 장에 이르기까지 버릴 페이지가 한 장도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생소한 지명들은 맨 앞 페이지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어느 부분인지 알고 지나갔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의 모습이 궁금할 때는 물론 상상보다 좋은 건 없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잖은가. 그럴 때는 모든 캐릭터가 그려진 맨 뒷 페이지에서 확인을 하고 지나가느라 책을 모두 읽는 내내 페이지가 앞으로 넘어갔다가 뒤로 넘어가길 반복했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제목 그대로 사랑이 가득한 교토에서 벌어지는 호루모라는 경기를 통해 연결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쾌한 소설이다.
일단 호루모라는 경기가 궁금할 것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호루모는 귀어를 사용하여 귀신을 부려 싸우는 경기다. 교토 한복판에서 대학교 동아리마다 천마리의 귀신을 데리고 나와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굉장히 피튀기는 싸움이 될 것 같지만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귀신의 생김새도 전혀 무섭지 않다. 20cm의 크기에 전체 4등신이며 얼굴 한가운데는 입이 오리 주둥이 마냥 툭 튀어 나왔고 의상으로는 넝마를 걸치고 있는데 넝마 밑에 무기를 감추고 있다. 타격을 입을 때마다 툭 튀어 나온 주둥이가 조금씩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뭐 이런 동아리가 다 있나 싶지만 등장인물들이 호루모에 쏟고 있는 열정들은 나름 진지하다. 내재 된 스트레스를 호루모를 통해 건전하게 풀어 나가는 모습들이 한창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풋풋하게 다가와 괜시리 뿌듯해진다. 이게 바로 청춘이지.
제목에서 황당 무계한 느낌을 받는 바람에 호루모 경기 위주의 내용이 연이어 펼쳐지겠거니 생각했는데 경기보다는 성장하면서 받는 사랑의 아픔과 고뇌에 관한 내용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 되더라. 의아한 마음을 바탕에 깔고 책을 읽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호루모 경기 위주로 진행되는 스토리의 책이 또 있다고 한다. 내가 읽은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속편 격인 셈. 전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전작에 관한 호기심이 마구마구 생겨난다. 경기에 관한 내용을 살짝 맛보기만 봤는데도 손, 발이 오그라 드는 느낌인데 제대로 경기를 다룬 내용은 또 얼마나 우습고 재미있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을지 생각만해도 궁금한 마음이 불쑥 고개를 쳐든다. 경기에서 지면 큰 소리로 "호루모오오오오오오!!" 하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패배를 알리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큰 소리로 절규해야 하다니.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모짱이 등장하는 편이었다. 모짱은 겉모습은 두꺼비같이 생긴 남자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시를 사랑하는 예술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다. 쉽게 찾을 수 없는 뒷골목을 찾아 다니는 뒷골목 마니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발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이거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겉모습이 반듯하게 생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랑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모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던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겉모습이라는 단편적인 정보가 그 사람 전체를 말해주는 양 치부해 버린 적은 없었는지. 책더미 위에 놓여진 레몬 하나도 그냥 보고 흘려버리지 않는 감수성을 지닌 남자, 모짱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내 앞에 그가 있었더라면 반가운 말 한마디 쯤은 걸어줄 수 있을텐데.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텐데.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 모짱은 아픔 마저도 예술로써 승화 시킨다. 역시 멋지다.
나머지 이야기들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극을 생동감 넘치게 이끌어 나간다. 읽은 후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독서가 있는가 하면 너무 많은 것이 남아 있어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를 독서가 있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단연 후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사이에 둔 여자들의 우정이라든지 대학생들의 소개팅 등 너무도 일상적인 주제가 호루모의 난입으로 인해 판타지로 바뀌는 순간은 언제 봐도 재미있는 것 같다. 갑자기 한국에도 이런 괴상한 동아리가 있었으면 싶었다. 인사동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대학생들의 귀신 싸움같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승리를 위해 하얗게 불태우는 대학생들의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이야기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이래야 청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