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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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얼마 만에 읽어보는 기행문인가!
우리는 대 코로나의 시대에 해외여행은 커녕 집 밖으로 나서기도 저어한 환경에서 지내게 되었다. 때마침 두번의 그리스와 지중해 전역에 걸친 ‘문명’ 기행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 얼마 만에 읽어보는 기행문인가! 또 그 주제는 신화와 축제의 땅이라고 설명하는 그리스 전역에 대한 이야기라니… 만화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한 세대라면 (‘흥이 다 깨졌으니 책임져’), 혹은 조금 더 윗세대에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한 독자들이라면 그리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뛰게 된다. 또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패널을 꾸려 지적인 만남을 즐기던 프로그램에서도 단연코 그리스를 탐방하지 않았던가! 추천사의 말처럼, 대 코로나의 시대에 때마침 이런 친절한 그리스 문명 기행문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게 만들며 그리스와 지중해에 대한 로망을 충분히 추동한다.
두번의 ‘문명’ 기행
이 책에서 저자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교수)는 지중해, 그리스 일대를 탐방한 두번의 ‘문명’기행을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이 단순히 지역에 대한 ‘답사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노아 문명, 뮈케네 문명, 아테네 황금기와 카르타고 그리고 로마와 몰타지역을 순방하며 저자의 해박하고 친절한 (때로는 흥미를 자아내 독자로 하여금 다른 자료를 더 찾아보게끔 만드는) 신화와 역사,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의 ‘종(縱)횡(橫)무(無)진(盡)’이 즐겁다. 이미 여러차례 TV 대중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양 고전을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저자의 섬세한 배려가 책에 가득 배어 있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이다. 한 장소에서 벌어진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역사적 사실들, 뿐만 아니라 이와 얽힌 고대 사상가들과 이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찬찬히 읽어보면 내가 그 현장에 있는듯한 느낌을 절로 받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지도 자료와 기행 촬영 사진들은 이 느낌을 더욱 배가 시킨다. 그러한 장소들이 열아홉 꼭지로 책에 담겨져 있으니 독서의 즐거움이 상당하다.
또한 책의 말미에 <찾아보기>를 두어 생소한 지명과 인명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점도 저자와 출판사의 섬세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일회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구 정신세계의 원형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리스 고전기에 대한 내용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가볍게 찾아볼 수 있도록 준비된 문턱이 낮지만 알찬 책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친화적이다. 좋은 책이란 바로 이런 책이다.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고 팬데믹 시대와 오늘날의 대한민국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탐방에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있다. 저자는 4대 범 그리스 제전(Panhellenic festival)의 개최지를 탐방하는 여정을 통해 축제가 단순히 낭만을 즐기는 기쁨의 행사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모순들과 인간의 불가역적인 유한성을 인정하기에 나타날 수 행위라고 설명한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이 짧은 삶은 찬란하고, 그 찬란함의 정점에는 축제가 있었다. 축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죽음을 잊고 영원한 존재인 신들과 하나가 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불멸의 신들을 기리면서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임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역설의 순간이었다” (p.18). 포스트 팬데믹을 준비하는 시대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여러가지 삶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있을 때, 때로는 지구반대편에서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의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 찬찬히 복기해보는 일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또한 저자는 현대 인류 문명의 특징을 서구 문명의 표준에서 기인해온 역사를 지적하며 이를 이해하는 통찰로 그리스 로마 문명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의 말미에 나타난 저자의 요청처럼, 이 책은 읽음에만 머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그리스 로마 문명 기행에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다.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기대가 된다. 왜냐하면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을 읽었고 벌써부터 탐방해보고 싶은 장소들과 여정을 기획했고 그곳에 가서 그 신화와 축제의 이야기에 내 삶의 이야기를 잇대어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그러하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이 짧은 삶은 찬란하고, 그 찬란함의 정점에는 축제가 있었다. 축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죽음을 잊고 영원한 존재인 신들과 하나가 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불멸의 신들을 기리면서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임을 가슴 깊이 새기는 역설의 순간이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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