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은 니체가 자신의 철학의 입문서로 직접 추천한 저서이다. 그렇다고 니체를 처음 접하면서 “선악의 저편”을 읽는 것이 좋으냐는 다른 문제인 거 같다. 관련 학자들은 “이 사람을 보라”를 입문서로 많이 추천한다고 한다. 니체라면 자신의 저서를 원전 그대로 아무 렌즈를 끼지 않고 읽는 것을 추천했을 것이다. 실제로 니체 원전을 바로 읽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포리즘의 형식은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 무게감 웅장함. 그리고 심적 울림은 이차 저작이 따라올 수 없는 특유의 가치이다. 하지만 철학을 구조화하여 머리에 집어넣기를 원한다면 이차저작도 추천할만하다. 원전은 심적 울림의 폭발성만큼 오독의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원전을 토대로 한 이차저작은 예방의 차원에서 가치가 있다.이 책은 고병권 씨가 쓴 “선악의 저편” 강독서이다. “선악의 저편”을 같이 해석해나가는 느낌 정도로 이해하면 편할 거 같다. 전체적인 구조와 순서를 “선악의 저편” 그대로 따르고 있고 원전의 내용도 대부분 들어가 있어 상당히 만족하면서 보았다. 흔히 니체의 이차저작을 보려 할 때 염려하는 것이 이게 니체의 생각인지 저자의 생각인지 헷갈리거나 의도적으로 저자의 생각을 함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다행히 니체의 말은 주석으로 표시를 해두고 저자의 말은 “내 생각”이라는 말을 붙여줘서 좋았던 거 같다. 사실 책을 배송받았을 때 책 상태가 별로라 실망했는데 내용이 워낙 좋아 그 실망을 상쇄했던 거 같다.“선악의 저편”에 나오는 플라톤주의에 대한 비판에 관하여 많이 다듬을 수 있었다. “진리가 여자라면”이라는 그 유명한 문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니체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진리를 여성으로 대하여야 한다. 플라톤주의자처럼 독단적으로 너무 진지하게 진리를 대한다면 진리는 플라톤주의자를 부담스러워하고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자신의 스타일을 갖고 유쾌하게 진리를 대하라고 한다. 이 내용은 자주 들어봤던 내용이었으나 내가 사뭇 충격을 받은 것은 그러니 절대 진리를 위해 순교하지 말라는 니체의 말이었다. 나는 사실 진리를 위해 순교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내 인생을 그렇게 합리화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진리를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진리가 무엇이길래? 아니 애초에 왜 진리이어야 하나? 라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고통을 대하는 고귀한 자의 태도, 고통은 사람을 더 고귀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은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리게 했다. 삶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삶을 더 충만하게 느끼기 위해 고통이 필요했던 도스토옙스키가 자연스럽게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니체를 먼저 알고 그 영향을 받아 도스토옙스키에 심취했기에 도스토옙스키 속에서 니체를 발견하거나 니체 속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많이 드는 거 같다.“선악의 저편”이라는 제목 때문에 우리가 무슨 선악의 저편이라는 저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거 같다. 과격한 해석일지도 모르겠으나 니체가 말하는 선악의 저편은 우리에게로 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 선악의 저편에 선악을 넘어선 나를 내가 기다린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선악을 넘어선다는 것과 도덕을 부셔야 한다는 말 때문에 니체를 도덕 상대주의자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니체는 오히려 도덕의 위계를 말했다. 여기서 위계란 단순히 줄 세우기가 아니라 도덕을 역사 문화 등으로 유형화하여 위계를 세운다는 것이고 그것을 가장 크게 유형화하면 주인 도덕 노예도덕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니체는 나만의 가치, 나만의 도덕을 만드는 입법자가 되라고 요구하니 도덕 상대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니체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듯 비도덕주의자가 더 어울리는 거 같다.이 책을 읽고 많은 감상이 들었지만 하나 기억에 남는 개념은 “내가 나를 기다린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초인은 결국 “나”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잘한다. 내가 왜 이리 오지 않느냐 불평은 하지 않으려 한다. 기다림이 길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멀리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만큼 이 세상의 평범과 멀리 있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가장 늦게 도착하는 빛은 가장 멀리 있는 별에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