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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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역사’는 수년 전부터 기대했던 도서였다. 더숲이란 출판사에서 ‘바빌론의 역사’ 후속작으로 비잔티움을 다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몹시 설렜다. 혹시 출간되지 않았나 검색해보고 아직 아니라고 실망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비잔티움은 그만큼 뭇사람들의 낭만을 건드리는 매력이 있다.



내가 로마를 처음 접한 것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통해서였다. 가치 있는 역사서이지만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로는 오류투성이에 특히 동로마제국 파트는 의도적인 평가절하까지 담겨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읽은 책이지만 어렴풋이 내게 나약한 동로마제국, 그저 명맥만 이은 제국이란 인상을 줬던 기억이 난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현대 역사가들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매체에서 다루는 비잔티움 제국도 긍정적인 묘사가 많아졌다. 하지만 크게 대중적 호응은 받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며 작가가 예시로 든 작품들이 에코의 ‘바우돌리노’였다. ‘바우돌리노’를 무척 재밌게 읽었기에 반가웠다. 대중적 호응은 못 받아도 나같이 빠지는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익히 알던 나약한 모습의 비잔티움제국은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의 모습이다. 실제로 제국은 후반기까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 영향력이 있었다. 제국이 건재할 때는 콘스탄티노플이 기독교 세계를 주도하여 세계 공의회 때도 교황이 그저 편지로 의견을 개진할 정도였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입장에서 본 신성로마제국의 출현도 퍽 흥미로웠다. 그동안은 단순히 교황과 프랑크왕국 둘 사이의 관계만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때까지 비잔티움 제국이 이탈리아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 교황청에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다. 교황이 카롤루스 대제를 끌어들인 것은 로마 내의 비잔티움 황제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비잔티움 제국과 프랑크 왕국 사이의 동맹이 논의되었다는 점도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는 놓치던 부분이었다.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잔티움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멸망할 때까지 그들은 로마제국이었다. 실제로 국체가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국의 영토가 그리스와 소아시아로 축소되면서 그리스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에서도 비잔티움 황제를 그리스 황제라고 칭하는 부분이 나온다. 신성로마제국의 출현 이후 서유럽인들은 비잔티움 제국을 그리스 제국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도 라틴어를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나타났고 황제도 그런 의견을 낼 정도였다. 그러자 당시 교황이 황제께서는 로마인의 황제를 칭하시면서 라틴어를 야만스럽다고 하냐면서 비꼬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제국 측에서는 로마 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고 응수했다는데 재미난 일화였다.





전체적으로 재밌고 유익한 역사서였다. 정치사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도 꼭 언급하고 넘어갔다. 비잔티움 제국사의 최신동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다. 로마사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비잔티움 제국은 삼국지의 제갈량 사후 파트처럼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 불만족스러웠는데 ‘비잔티움의 역사’를 통해 갈증을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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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7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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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읽는 것에 맛이 들렸다. 도스토옙스키의 단편들도 읽어보고 싶어서 주문을 했다. 첫 번째로 수록된 '약한 마음'은 솔직히 별로였다. 도스토옙스키의 특유의 장황한 느낌이 유독 강했고 그에 반해 빵빵 터지는 느낌은 약해서 그런가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첫 번째를 그렇게 스타트를 끊어서 그런가 오히려 다음 소설들을 읽기 수월했다. 표제목으로 선정한 '백야'를 먼저 언급해야겠다.

페테르부르크의 몽상가가 나스텐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사흘 정도의 이야기이다. 도스토옙스키도 이런 서정적인 글 쓸 수 있다!라고 생각이 들지? 하면서 츄라이하는 거 같았다. 소설 자체는 훌륭했으나 역시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좀 더 인간의 괴로운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야'의 전체적으로 황홀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그 황홀함이 이제 지나갔음에 애석한 느낌을 받았다. 페테르부르크의 몽상가가 나스텐카와의 사랑을 이루지만 행복은 정말 짧게 지나가고 나스텐카는 원래 약혼자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버린다. 조금 잔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그는 단 한순간이나마 너의 심장 곁에 머물기 위해 창조된 것은 아닐까.....?"라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을 함축적으로 요약한 문장이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 짧게 지나갔을 때의 그 애석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야'를 읽고 헛헛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백야'도 좋았지만 하나를 뽑는다면 '온순한 여인'을 뽑고 싶다. 사실 이 책을 거의 다 읽다가 스마일 라식을 하느라 일주일간 덮어뒀기 때문에 잊어버린 단편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온순한 여인'은 퍽 강렬한 인상을 줘서 그런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뭔가 비슷한 심리상태를 겪어봐서 그럴 것이다.

전당포 주인이 주인공인데 좀 악에 받쳐있는 느낌이 든다. 군에서 불명예 전역당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지만 장교 시절에도 그래 보이긴 했다.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아내는 남편을 증오하게 되어 죽이려 하고 그 과정에서도 침묵으로 대처했다. 결국 아내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내는 남편을 사랑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남편의 사랑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를 사랑할 수 없음에 절망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은 5분만 단 5분만 있으면 지나갈 감정이었다고 하지만 모르겠다. 운명이란 단 1초도 허용해 주지 않는다.

나도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고 침묵을 무기로 쓰며 상대방이 내 마음을 다 알아주기 바란 적이 많은 거 같다. 물론 소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성향을 일부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읽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솔직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라는 것이 참 안타까운 거 같다. 사람의 불행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솔직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행을 더욱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그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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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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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를 안 하고 주문한 책이다. 그동안 너무 비문학을 읽어서 그런가 독서에 대한 회의도 들어서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볼까 생각을 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톨스토이의 중단편을 모아둔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그래도 톨스토이니 기본은 하겠지 생각을 하고 주문을 했다. 첫인상은 겉표지가 손상되어서 별로였다. 처음 나오는 단편도 그저 그랬으나 중편으로 넘어가니 상당히 좋았다. 감명 깊게 읽은 것들이 꽤 되었다. 올해가 많이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읽은 책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톨스토이의 청년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한데 모아둔 것이기 때문에 주제의식이 퍽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문체는 일관되어 보인다. '캅카스의 포로'부터 흥미를 읽고 읽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같은 소설은 익히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사실 여기 수록되어 있는 중단편 중 최고를 하나 뽑아볼 생각이었다. '크로이처 소나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악마' 이 3개가 최종 후보군이었는데 끝내 선택하지는 못했다. 다 너무 매력적이다.

톨스토이의 심리묘사는 도스토옙스키와 다른 분야에서 탁월함을 발휘한다. 애욕과 관련된 부분의 심리를 참 잘 파고든다.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서 그른가 아주 실감 난다. 사실 계몽적인 농촌운동 면모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보다 애욕을 다룬 작품이 더 흥미진진했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실제로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틀어놓고 읽어보기도 했다. 상당히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주인공 '포즈드니셰프'가 모든 섹스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포즈드니셰프라는 인물로 위선을 풍자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가 섹스로부터 비롯된다는 진지한 열변은 톨스토이의 금욕 사상에서 조금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처럼 모든 작품에서 작가의 사상이 은은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절대 거북할 정도로 많이 첨가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래서 대문호라고 하는 거겠지

'악마' 또한 애욕에 관련된 소설인데, 톨스토이의 실제 경험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심리묘사가 정말 탁월했는데 결말이 좀 아쉬웠다. 아내 눈치를 봤다고 주석이 달려 있었는데 정말 그렇다면 참 애석할 따름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 심리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세 죽음'에서도 그렇고 죽음이 다가온 병자의 심리를 캐치하는 것에도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는 거 같다. 마지막 단편인 '알료사 고르쇼크'는 러시아 전형의 성스러운 바보를 형상화한 걸로 보인다. 이름 또한 알료사여서 도스토옙스키가 많이 생각났다. 물론 도스토옙스키식 성스러운 바보와는 많이 달랐다.

꽤나 추천하고 싶은 중단편선이다. 하나하나 흡입력 있는 작품들이다. 순수 재미로 본다면 톨스토이의 장편들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수위가 세다. 출판하는데 어려움이 있던 작품도 몇몇 있으니 예상해 보는 것도 재밌을듯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역시 톨스토이란 생각을 굳히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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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히스토리 - 제국의 신화와 현실
로드릭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홍우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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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알라딘 추천 마법사가 내게 추천한 책이다. 꽤 나의 취향을 저격한 거 같다. 솔직히 수박 겉핥기 식의 역사서일 거 같아서 사지 않으려 했으나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사게 되었다. 표지가 독수리? 같은데 러시아의 상징이 독수리인 이유가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 하나였다.

책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읽기도 쉬웠다. 키예프 루시부터 푸틴까지의 천년 역사를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구성했고 어색함 없이 이어갔다. 물론 영국 사람이 쓴 러시아 역사라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어렴풋이 러시아가 비잔틴 제국의 후예이자 제3로마를 자처한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 사람들이 비잔틴 제국을 특히 정교회 수호의 입장에서 꽤나 비중 있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이 비잔틴 제국의 유산이 러시아 역사에 미친 부분이 상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의 상징이 독수리인 이유도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근데 왜 나는 러시아 하면 불곰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러시아와 비잔틴 제국을 연결시킨 것이 저자의 새로우면서도 획기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서방에서는 흔히 '타타르의 멍에'를 러시아가 유럽과 달라진 이유로 꼽곤 한다. 몽골의 지배를 받았기에 그 특유의 전제적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어지는 저자의 반박이 타당했다. 러시아는 사실 몽골 지배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당시 시대상에서는 러시아가 특별하게 전제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어인의 지배를 수백 년 동안 받았던 스페인을 예시로 들면서 스페인이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서 유럽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강변한다. 나조차도 러시아의 전제적 문화가 몽골 때문일 것이라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를 거치며 알렉산드르 1세가 나폴레옹을 격퇴시키며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당시 러시아 문화를 탐구한 부분이 무척 재밌었다. 특히 19세가 러시아 소설의 주인공들이 무언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예시로 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나 백치의 미챠는 모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의 주인공이라서 반가웠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스로운 바보'라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인물상이다. 이 부분은 무척 재밌기도 하면서 러시아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 19세기 러시아의 저주받은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의 잘못인가'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러시아가 맡았다고 생각했다. 슬라브 민족주의로서 당대에 많은 러시아 지식인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서방과는 다른 정교회 신앙도 러시아인들의 독특한 역사관과 국가론을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다. 물론 저자가 직접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당대의 러시아 지식인들은 사실 내 나라가 인류 구원의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라 인류사에 저주받은 나라가 아닐까?라는 저주받은 질문을 쉬이 떨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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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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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씨의 ‘칼의 노래’를 퍽 재미나게 읽어 이번에 나온 신간을 시켜 보았다. 알고 보니 이문열 씨가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불멸’이라는 소설을 낸 것을 알았다. 이문열 씨 소설도 퍽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만약 그 사실을 ‘하얼빈’을 사기 전에 알았더라면 고민을 했을 거 같다. 김훈 씨의 소설이 나와 퍽 잘 맞는 거 같다. 이 책도 하룻밤 사이에 다 읽었다. 감상들이 여럿 들지만, 대표적으로 하얼빈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총구는 늘 흔들린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서른한 살에 죽기를 각오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여러 화자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삼킨 말을 생각으로만 표현한 것도 퍽 마음에 들었다. 주된 화자는 안중근과 이토다. 하얼빈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여정이 각각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꽤 마음에 드는 전개 방식이었다. 개성 만월대에서 순종과 같이 사진을 찍은 이토의 의도와 그 사진을 보고 이토를 식별하는 안중근을 보며 퍽 재미난 연결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서도 나오는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집필한 ‘안응칠 역사’를 많이 참고한 책 같았다.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이 빌렘에게 하는 고해성사로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 장면이 나온다. 어떤 고해성사를 했는지는 표현하지 않았다. 옥리들이 곁에 있으므로 작은 목소리로 말하라고 요청하는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그 단단한 마음에 균열이 생겼는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의 고심이 반영된 장면 같았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더라도 괴리감이 있었을 거 같다.



당시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그를 교회를 벗어난 죄인이라고 지칭하는 장면도 나온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조차 안중근의 의거를 죄로 규정한다.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통감부가 지배하는 조선에서 천주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안중근의 시선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교회의 판단을 그른 판단이라고 안중근의 의거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불경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발언 또한 결국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안중근의 거사를 죄라고 규정한다면 천주교회가 생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의 거사를 죄로 규정한 뮈텔 주교나 의로운 일로 규정한 김수환 추기경이나 그 저의에는 천주교회의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면 약간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우덕순이란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유익이었다. 어렴풋이 들어는 봤지만, 하얼빈 의거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담백한 대화가 좋았다. 마음이 태산 같으면 이렇게 담백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물 같으면 이렇게 평온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인내를 옷처럼 입고, 신념을 양식처럼 먹자는 다짐을 종종 하지만 나는 아직 작은 시련에도 의연하지 못한 거 같다. 서른한 살에 죽는데, 허망하지 않고 의연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당연히 허망할 테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죽으면 의연할 수 있을까? 안중근은 언제부터 죽음을 준비했을까? 죽음에 관한 서술은 생각보다 적은 거 같아 퍽 아쉬운 부분이다.



감정적인 요소가 없고 담백하게 글을 이어 나가는 것이 김훈 씨의 장점인 거 같다. ‘칼의 노래’와 같이 냄새 서술도 종종 나온다. 특히 안중근이 의병 활동을 하다가 실패하는 대목도 정말 담백하게 묘사하여 오히려 좋았던 거 같다. 작가가 대놓고 가치 판단하지 않아서 내 가치 판단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느 누가 삶이 아쉽지 않을까, 의연하게 죽는 것의 의미를 거듭 말하는 거 같다. 죽음은 삶의 종착지인 동시에 삶의 완성이다. 죽음이 없으면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글로 비유하면 죽음은 탈고이다. 옛날부터 만주를 유람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얼빈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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