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5대 장편 중 그 네 번째로 “악령”을 읽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가장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접한다면 결단코 추천하지 않고 가독성이 좋은 소설을 원한다면 역시 추천하지 않는다. 읽기가 몹시 힘들다. 1권은 특히 시점도 일관되지 않고 사건도 친절히 설명해주기보다 모호한 면이 많아서 이해하기 어려워 읽는 속도가 느렸다. 그래도 2권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짐짓 추리해가면서 읽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 조금은 수월하게 읽었던 거 같다. 소설의 장르를 나누자면 정치 소설이다. 상당히 정치적이고 도스토옙스키의 정관이 들어가 있다. 무신론 무정부주의 허무주의를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네차예프 사건을 토대로 소설을 구성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답게 한 사건의 끔찍함에서 그치지 않고 네차예프 사건을 토대로 더욱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구성했기 때문에 그 사건을 몰라도 아주 어려움은 없을 거 같다. 나도 왠지 스포일러를 당할 거 같아서 네차예프 사건의 상세한 사항은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찾아봤다.“악령”은 제목에서부터 예감하듯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이상하게도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 어느 것보다 희극적이다. 인물들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죽음과 음모가 난무함에도 등장인물의 행동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며 한심해 보인다. 흡사 비웃음을 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언급했듯 이 소설은 정말 많은 등장인물이 죽는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죽음이 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악령”은 살아남은 인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주요 인물들이 마구 죽는다. 아마 “악령”의 어원 돼지 떼들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제목이나 내용상에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 읽기에 머리 아프기도 하고 그만큼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거 같다.책의 주인공은 단연 스타브로긴이지만 그 사람 다음으로 특별히 기억나는 인물은 키릴로프이다. 도스토옙스키가 긍정적으로 그린 인물은 샤토프라고는 하지만 너무 멍청해 보여서 그런가 샤토프에게는 영 정이 안 갔다. 키릴로프에는 정이 갔다기보다는 그 특유의 사상이 인상적이었으며 니힐리즘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갔다. 키릴로프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야 신이 된다. 그러므로 그걸 인지하고 자살을 하면 인신이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니힐리즘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완전히 무위로 살고 자살을 예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듯 삶의 순간순간을 만끽하려고 행동한다. 이런 키릴로프에게 사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많은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최후를 그린 도스토옙스키의 의도를 생각했을 때 니힐리즘의 역설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스타브로긴은 사실 마지막까지 신비스러운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참칭자 드미트리를 형상화한 건가? 생각했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주인공을 그 정도로 단순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사실 주인공임에도 이 사람의 내면이 초반부에는 거의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행동의 이유도 이 사람의 과거도 하나같이 수수께끼였다. 리자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어렴풋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의 “티혼의 암자에서” 부분의 고백에서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고 신비로움이 조금은 해소된 느낌이었다. “티혼의 암자에서”가 원래는 “악령”에서 빠져있다는 사실에서 유추했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스타브로긴의 신비함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악령”은 희극의 얼굴을 한 비극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비극인데 느끼기엔 뭔가 희극 같고 그런 혼란이 많아서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거 같다. 스타브로긴이 실제로 악령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랐는데 모든 사람의 내면에 악령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내면에는 밝은 것도 어두운 것도 있을 것이다. 단지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