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니체의 저서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고 선택한 첫 번째는 “도덕의 계보학” 이다. 여기서는 제1 논문인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을 위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덕, 선한 것과 악한 것,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다. 그런 의문을 다들 한 번쯤 품었을 거 같다. 우리가 나면서부터 선악을 구별하는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교육에 의해 사회에 의해 선악을 구별하게 된 것인가? 아니 애초에 선악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개념인가? 니체는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도덕의 족보를 따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선악 도덕개념이 어디서 비롯하였는지 작정하고 따져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악이 아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었다. 지배층들 즉 귀족들은 자신의 특징인 고귀한, 강력한, 아름다운, 행복한, 신의 사랑을 받는 등을 좋은 것이라 규정했고 그에 대응하는 노예들의 특징인 가련한, 가난한, 무력한, 비천한, 고통받는, 궁핍한, 병든, 추한 등을 나쁜 것이라 규정했다. 이것이 원래 있던 좋음과 나쁨이다. 그런데 이런 귀족들에 대항하여 노예들이 원한을 갖게 되었다. 특히 니체가 언급하는 바는 대표적인 사제 민족, 유대 민족이 원한을 갖고 물리적인 복수가 아닌 정신적인 복수를 2천 년 동안 감행하였다는 것이다. 즉 “가련한 자만이 선한 자이고, 가난한 자, 무력한 자, 비천한 자만이 선한 자이며, 또한 고통받는 자, 궁핍한 자, 병든 자, 추한 자만이 경건한 자이자 신에 귀의한 자이며, 오직 그들에게만 축복이 있다. 그 반면에 너희 고귀하고 강력한 자는 영원히 사악하고 잔인한 자, 음란하고 한없이 탐욕스러운 자, 신을 부인하는 자이다. 또한 너희는 영원히 축복받지 못하고 저주받으며 천벌 받을 것이다!”



니체는 이 두 가지 가치관을 헬레니즘 대 헤브라이즘, 로마 대 유대로 규정하였다. 유대 민족의 정신적 복수가 2천 년 동안 서서히 감행되었기에 우리는 주인 도덕이 노예도덕으로 전복되었는지도 모른 채 노예도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논리가 과장된 부분은 있지만, 처음에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지금은 선악 도덕을 강렬하게 혐오하게 되었다. 선악 이분법 논리가 만연한 지금 현실에서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거 같다.



제1 논문에서 언급한 바는 아니지만, 니체는 도덕의 족보를 찾고 도덕을 해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선악 도덕을 없애고 기준 없이 사는 것은 오히려 선악 도덕이 있을 때보다 더 비참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니체는 각자 자신이 입법자가 되어 자신에게 좋은 것들로 가치를 만들어 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몇 년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 자신이 입법자가 되어 내가 내 가치를 창조해라’는 외침에도 가치에 대한 나의 판단을 보증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어렴풋이 내린 결론은 나는 수없이 의심하고 수많은 정보를 계속해서 받아들인다. 애당초 절대적 선악은 그것이 존재하더라고 인간이 알 수도 없는 것이라면 내게 좋은 것, 내가 옳다고 판단한 것이 내 삶에 있어 기준점으로 삼아도 그렇게 무리수가 아니지 않을까? 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