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사상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음알음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그의 저서를 읽는 것은 처음인 거 같다. 내가 니체에 오염되어있기에 반감을 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걱정도 했고 실제로 그런 부분이 몇몇 있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 시절 형에게 이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리를 듣고 왠지 모를 호기심이 들어 읽게 되었다.사실 철학적인 내용도 함유하고 있지만 전 세계의 역사를 헤겔과 함께 들여다보는 느낌이 많이 든다. 헤겔의 세계사 강의를 책으로 만든 것이라 하니 당연하기도 하다. 헤겔이 역사를 어떻게 통찰하는지도 나의 역사 통찰 방식과 비교해볼 수 있었다. 역사가 변증법적 단계에 따라 결국 절대정신으로 수렴해나가는 발전단계를 거친다면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이나 일개 졸병이나 나도 다 그 발전단계에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쉬이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세계사를 들여다보지만, 인도나 중국 부분은 아무래도 헤겔 당시의 동양에 대한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여러 가지 오해나 편협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 그리스나 로마, 게르만 부분은 퍽 볼만 했다. 동양 세계는 단 한 명이 자유롭고 그리스와 로마는 일부 귀족이 자유롭고 게르만은 모두가 자유롭다는 주장도 전부 동의하기 어렵지만 흥미롭다고 여겼다.사실 읽기 쉬운 책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전반적인 세계 역사를 알고 보았기에 내 통찰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거 같고 세계 역사에 무지한 사람은 읽기에 힘들 거 같다. 헤겔이 결코 개인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크게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대 역사 민족, 하나하나 모두 무게감 있는 것들을 통찰하기 때문에 버겁기도 하고 웅장해지기도 한다. 철학은 결국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내면을 세계와 통합하는 그런 과정이 내게는 아직 부족했던 거 아니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역사가 발전한다면 내가 죽을 자리는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