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 후의 감상을 글로 남겨보면 좋을 거 같아서 부족한 솜씨지만 이렇게 글을 써보게 되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 책은 아주 오래전에 주문한 책으로 주문하고 나서 1권을 읽고 1년의 세월이 지나서 2권을 다시 들어 읽고 또 1년? 정도 지나서 최근에 3권을 다시 들어서 다 읽게 되었다. 최소 3년은 두고 읽은 책이며 그만큼 사실 읽기가 쉽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최근 읽은 3권은 쉽사리 금방 다 읽은 거 같아서 과거에는 이 책을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다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한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조금 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러시아 소설답게도 등장인물이 다양하게 나오며 그 특유의 복잡한 이름이 나온다. 그래도 러시아 소설을 과거에 몇 번 읽어보았기 때문이지 크게 문제가 되고 그러지는 않았다. 주요 인물들은 제목에 나오듯이 카라마조프 가의 세 형제다. 미챠 이반 알료샤 이렇게 삼 형제다. 보통 소설을 읽다 보면 매혹적인 인물 하나에 끌려 그 인물에 주로 공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세 형제는 모두 각각 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서 세 형제 모두에게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심리묘사가 뛰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미챠는 내 광기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특히 그 사건 후 밤에 돈을 펑펑 쓰면서 도박을 하는 모습과 그 심리를 읽으며 전율을 느끼기도 했고 내가 저 상황이라도 저렇게 느끼지 않겠냐는 생각을 강하게 느꼈다. 이반은 지식과 의심, 그리고 자기혐오 하는 모습에서 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 소설 내 이반이 만든 것으로 나온 대심문관 이야기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였고 진리의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과 끊임없는 죄책감과 자기혐오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알료샤는 신앙을 대변했다. 사실 너무 착한 알료샤에게 그렇게 공감할 수 있을까도 했지만 조사마 장로의 시체에서 나는 악취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정말 감정적으로 이입을 많이 한 거 같다.
아무래도 도스토옙스키 최후의 작품이고 2부도 기획했다고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이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은 난다. 미챠랑 이반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니체 때문이었다. 니체가 그렇게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좋아했더라 해서 나도 한번 하는 심리로 도스토옙스키 작품도 읽어보고 그의 전기, 그의 사상을 정리한 책도 여럿 읽어보았다. 그 정점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이 소설이다. 결국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은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런 문제가 논리로 이성으로 해결이 가능한가? 도스토옙스키는 불가능하다고 봤다는 거 같다. 대심문관 이야기에서 온갖 항변을 내놓는 늙은 대심문관에게 그리스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그 메마른 입술에 입을 맞춘다. 도스토옙스키는 이것을 해결책으로 봤던 거 같다. 결국 사랑, 메마른 입술에 입맞춤으로 위로해주는 것 그게 도스토옙스키식 구원이었을지 않을까? 이 책을 덮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알료샤의 말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우린 그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