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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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칠레 국민시인 네루다를 만나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는 소박한 칠레 민중들의 삶속에서 시와 진심이 어떻게  어우러져 감동이 되었는지 알게 된다.

 

   우편배달부가 되기 전의 마리오 히메네스는 칠레의 작고 아름다운 포구마을의 그저 게으른 청년이었다. 마리오는 시인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가져다주면서 메타포를 배우고 시의 아름다움을 알게된다. 가업을 이어받아 어부로 살기 싫어했기에 마리오가 시인에게 보이는 흥미는 매우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그저 평범하지 않다. 네루다를 사랑했던 칠레의 민중의 모습들이 마리오의 변화되어가는 삶에 투영 되어 있다고 본다.

 

제가 시인이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잖아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바로 그게 문제라니까요. 시인이 아니라서 그것조차 말할 수 없는걸요.”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세상을 달리 보는 시적 관점을 깨닫고 나서 청년은 말 문이 열린다. 아름다운 베아트리스를 사랑하게 된 후부터는 자신의 감성을 시와 연결하는 놀라운 발전을 이룬다. 네루다의 시를 암송하여 구애를 하더니 급기야 시인의 도움을 얻어 사랑을 성공시키고자 한다. 시인은 그러한 마리오의 뻔뻔스러움을 지적하며 쉽게 나서주지 않는다. 그에 맞서는 당돌한 마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마리오

 

그말은 네루다의 생각과 같았다. 그 외에도 네루다의 시를 인용하여 반박한다. 그래서 행동하는 지식인 네루다가 나태하고 어리석고 귀찮은 마리오를 돕게 된다. 실제 네루다가 자연과 민중을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소설속 네루다의 이미지는 친절하고 유쾌하다. “뚜쟁이 네루다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이슬라 네그라의 민중들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마리오처럼 시를 통해 구애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음유시인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싱어송라이터들이 메타포 가득한 가사를 감미로운 멜로디로 감아 프로포즈한다면 말이다. 시로 교감하여 커플이 된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를 결합시킬때 작가는 다소 자극적이라고 느껴지는 성적묘사를 사용하였다. 정렬적인 남미라지만 소년소녀의 애욕 넘치는 사랑 행위를 담기위해 억지와 과장이 넘쳐보인다. 그러나 한편 무지하고 상스럽고 익살스러운 장면들과 더불어 순수하고 치열한 순간순간을 사는  민초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대장에게 잔소리하는 조르바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여주인공의 어머니는 속담을 인용하여 메타포에 응수한다. 남녀주인공은 물론이고 시인 네루다 마저 이 과부의 말상대가 되지 못한다.

 

난다고 하든 번진다고 하든 그게 그거야 왠지 알아?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과부

과부가 속담 포병대를 이끌고 메타포 전쟁에 임하기로 한 것 같아 정말 두렵군.” -네루다

 

  과부의 상스러운 말과 행동은 여러 등장인물들을 긴장하게 하지만 독자에게는 웃음을 준다. 작가는 그녀를 실용주의자라 표현하였다. 과부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상생을 위한 변화를 수용한다. 정치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그녀의 선택은 유연하다우편배달부 네루다에서 가장 매력있는 인물은 과부가 아닐까. 그녀는 지루하거나 무거워질수 있는 장면들에 활력과 즐거움을 배달한다네루다가 보내온 편지와 소포를 매우 진중하고 정성스레  개봉하는 마리오를 당황시키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다이 소설은 네루다를 향한 작가의 오마주이고 존경심을 표현한 메타포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네루다의 편지를 대하는 장면을 읽을때, 감격스럽고 떨리는 마음이었는데 과부와 주변인물들을 해학가득하게 배치시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개미 같은 인내심으로, 또 개미같이 가벼운 행보로 뜯어나갔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눈가에 들이대고, 아주 하찮은 부호 하나라도 바뜨릴 세라 한 음절 한 음절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 --리 마--오 히---. 과부가 한 손으로 편지를 낚아채더니 숨도 쉬지 않고 무미건조한 억양으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p.103)

 

   네루다를 만난 후 마리오의 삶은 진격의 변화를 거친다.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마리오는 자신의 내면의 영혼을 알아채고 원하는것을 말할 수 있게 되며 감성을 깨운다. 그러다 점차 자신의 시를 쓰면서 정치적 행동 또한 적극적으로 변한다마리오는 사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이상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경제 공황, 피노체트 쿠데타, 대통령 아옌데 죽음과 같은 칠레의 격변속에서 네루다의 선택은 위협받는다. 그는 결국 우정과 신뢰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만치 위험해진다.

소설에서는 부드럽고 감각적인 언어가 특징이라는 네루다의 시가 자주 인용된다. 진중한 시보다는 가볍고 자연과 민중들이 쉽게 따라 암송할 수 있는 시들이다. 정치적 상황묘사와 관련 시들이 나올때는 우리나라의 70~80년대 시인들을 살짝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매우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시인 네루다는 칠레의 작은 포구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 있는동안 그곳의 아름다움과 삶을 그리워 한다. 마리오는 그런 그를 위해 그 곳 소리들을 하나하나 채집하게 된다. 이 부분을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영화보다 책을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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