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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친밀함의 경계는 항구적이지 않다
리브카 갈첸,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어느날 아내와 똑같은 모습을 한 다른 여자가 자신의 집에 들어온다.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인이, 아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내가 하는 행동과 풍기는 느낌, 사소한 감정표현이 이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다. 십년을 넘게 살아온 아내가 갑자기 바뀌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것도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경우는.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아내가 바뀌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현실의 이야기를 해보자. 예를 들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하지만 미묘하게 변해있는 친구의 반응과 행동을 보고 유추해 낼 수 있다. 기분 좋고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던 친구의 변화는 이전에 있던 치구의 모습과 분명 ‘다르다’.
주인공 레오는 아내의 작은 변화들과 변화들이 축적돼서 쌓인 현재의 모습을 아내가 바뀌었다는 극단의 상상으로 몰아간다. 이러한 변화는 레오가 부부생활을 하면서 두었던 ‘친밀함의 경계’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우리가 친밀함에 경계를 두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좋았고 그런 노력이야말로 최상의 친밀함이라고 믿었다. (74쪽)
친말함의 경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친밀함의 경계는 항구적일 수 없다. 어떤 말 못할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말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어떤 것은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친밀함의 경계란 교착상태의 전선(戰線) 같은 것이다. 어느 쪽이 나아가면 다른 한쪽은 후퇴하기 마련이고 그 상태는 영원이 지속 될 수 없는 상태 말이다. 레오는 이 전선을 남북의 그것처럼 항구적인 어떤 상태로 보았을 뿐이다.
레오는 아내를 찾아 나선다. 문제의 해답을 츠비 갈첸의 논문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논문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초기값 문제’다. 초기값 문제는 기상현상에서 현재의 날씨를 알지 못하면 내일의 날씨도 알아낼 수 없다라는 생각이다. 일종의 나비효과와 비슷한 개념으로 현재의 날씨를 정확히 안다면 미래의 날씨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거란 것이다. 반대로 초기값 설정이 잘못되어 현재의 날씨를 잘못 알았다면 미래의 어떤 날씨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레오는 아내를 찾는 여정에서 초기값이 잘못 설정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가깝다는 건 충분히 가까운 게 아니란 걸(234쪽)” 알게 된다. 하지만 그가 하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바꾸려 하지 않고 분열된 자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상상으로 나오듯 분열 속에서 일상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하비가 누구이고 레오의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친밀함의 경계가 항구적인 전선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