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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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어쩌면 소통의 가능성에 대하여

-조현,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나는 끝없는 이물감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보통 소설집을 읽으면 작품집 전체의 느낌이 머릿속 어딘가에 그려지는데, 이 소설집은 그렇지 못했다. 덕분에 이틀을 이 소설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이물감에 대한 해답은 조현의 상상력이 발원하는 자리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현이 S.F.적 상상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한국문학에서 봐왔던 방식과는 다르다. 이전까지의 소설들은 지구라는 행성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도시에서부터 시작해서 기린과 펠리컨이 갑자기 나타난다든지(박민규), 전세계에 전염병이 퍼진다든지(편혜영)한다. 다시 말하면, 지구에서부터 우주로 혹은 환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현은 그 반대다. 그의 상상력은 우주에서부터 시작해 지구로 내려온다. 즉 지구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세계관 대신 조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우주의 세계관으로부터 소설들이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장르적 상상력의 발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상상의 전개방식은 그의 이력에서 나오는데 그는 평생 동안 1만 권의 책을 읽었고 지금도 매 년 500~6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장르도 순수문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 철학, 장르소설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독파한다. 이런 그의 이력이 이런 형식의 글쓰기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상상력에서 그가 던지는 물음은 이렇다. ‘우리는 어떻게 소통해야하나? 과연 우리는 소통할 수 있을까? 소통의 도구로써 시는 어떨까?’ 이러한 질문들이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주목했던 건 소설집에 실린 거의 모든 단편에서 시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시는 소설 속에서 소통의 도구로 쓰인다. 이를테면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춤을 췄던 것과 유사한 용도다.

 

과연 시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조현의 대답은 긍정적이다. 그는 시가 소통의 가능성을 가지면서도(<생의 얼룩을 건너는 법, 혹은 시학>), 인간의 언어감각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실망하기도 한다.(<옛날 옛적 내가 초능력을 배울 때>) 그럼에도 그가 시를 소통의 도구로 포기하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이’(<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 시를 통해 완전해 지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집은 한편의 시학이며, 소통에 대한 어떠한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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