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버지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전개는 시간 순서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인생을 돌아보면서 쓴 글이 아니라, 딸이 아버지의 임종 뒤에 그의 인생을 재구성 한 것이다. 그래서 책에는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가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아니 에르노의 경험과 주관을 통해 서술된 것이다.

때문에 내용 역시 지극히 평범하고, 아버지의 속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타인의 인생이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그것이 40여년 전 죽은 프랑스 남자의 연대기라면- 책을 읽으면서 잠시 흥미를 잃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은 뒤 밀려오는 생각은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보기에서 나-아버지보기로의 확장이었다.

작가가 보고 기억하고 서술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것이 내가 아버지를 보는 모습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렇지만 그의 마음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감정 같은 것은 호주머니에 넣고 그 위에 손수건으로 덮어 놓는 거야.(111)” 아버지가 말한 것인지 작가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남자의 자리>에 나오는 아버지, 나아가 우리의 아버지까지 동일하게 공유하는 감정임을 숨길 수 없다. 책의 원 제목인 ‘la place’(대신, 자리) 앞에 생략된 ‘누구의~’는 각자가 채워넣야할 빈칸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