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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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성석제, 그리고 소설이 던지는 물음

 

 

 

남루하고 찢겨지고 자신이 세운 계획에서 비껴나간 사람들이 있다. 남편에게 평생을 받치며 살아왔지만, 유산 한 푼 물려받지 못한 인생과 아빠라고 불렀던 세 명의 남자 모두가 친부가 아니었던 소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노년이 돼서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남자. 어찌보면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어느 누구를 골라도 충분할 정도의 내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박민규였다면 그들 앞에 기린 한 마리가 나타났을 것이고, 김연수였다면 과거를 돌아보며 별들과 우주, 그리고 자신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석제는? 성석제는 이들을 모아 봉래산에 얹어놓는다.

 

 

그들이 마을에 모여 식구가 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은 분명히 여산이다. 여산(如山). 산과 같은 사람. 그의 이름처럼 여산은 한명씩 한명씩, 상처받은 사람들을 마을로, 자신의 품으로 데려온다. 가만 보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과거나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여산 하나뿐이다. “봉래산의 잡목과 덤불”을 닮은 “봉두난발 머리”(44)를 하고 스님 앞에 나타난 여산은 자연과 산, 그 자체였다. 마치 앞으로 하나둘씩 마을로 모여들 사람들을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산의 정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산은 처음부터 “가짜투성이, 불모성, 엉터리를 정말 마음에 쏙 들어”(44)했다. 드라마를 위해 지어놓은 세트처럼,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 역시 언제가 제몫을 다했지만 결국 황폐해져가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여산이 그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건, 그들이 남루해지기 전, 각자의 몫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소희는 채소와 밭을 가꾸고, 영필은 노래를 부르고, 벙어리 준호는 불을 다룸으로써 각자의 역할을 한다. 촬영이 끝나고 아무것도 쓸모없을 것 같았던 세트장이 그들에게 집의 기능을 해준 것처럼 말이다. 여산은 그렇게 상처들을 품는다. (여)산 동시에 강으로 변주되는데, 소설을 첫 장에서 보여주듯 “수만의 개울과 지류와 지천을 받아들이며 깊고 넓”으며 “깊거나 얕거나 간에” “평시에 소리내는 법이 거의 없”(7)는 강의 모습은 여산의 품성을 닮았다.

 

 

여산의 품성을 나는 성석제가 소설 속에 사람을 품어내는 모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책장을 덮고 이 소설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다. 조폭이 나오고, 그들이 한 마을을 습격하는데 어느누구도 죽지 않는다니. 누군가를 싫어하면 상대를 타도해야할 절대악으로 보는 대부분의 방식과 곂쳐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을 습격한 조폭들을 보면 응당 느껴야 할 분노, 불쾌감 따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정묵과 그의 식구들을 생각하면, 어쩌다 조폭 세계에 들어왔을까에 대한 호기심과 마을 사람들에게 당할 때 측은함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작가가 사람, 혹은 세계를 바라보는 따뜻함에서 나온다고 밖에 결론내지 못했다. (따뜻함의 다른 표현은 ‘해학’이다.) 책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음이 터지는 이유도 바로 성석제가 사람을 빚어내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해야겠다.

 

 

성석제의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화합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사람들의 평화를 깨는 “불도저와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210)들. 다시 말해 “기계 군단”(220). 이들은 강마을 사람들과 조폭 식구 간의 싸움마저 멈추게 만든다. 사람들이 다시 정착하려 하는 그 장소에 들이닥치는 폭력을 성석제는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자연과 마을과 사람들을 파괴하는 장비들을 보면서 성석제는 자신의 허리춤이 에리는 고통을 느낀다. 중장비를 묘사한 소설의 장면이 유일하게 섬뜩한 이유이다.

 

 

여산과 성석제를 빙빙 둘러왔지만 결국 소설이 나에게 던지는 물음은 가족이란 혹은 식구란 무엇이었던가에 대한 것이다. 많은 작품이 그렇듯 <위풍당당>도 물음만 던지고 떠나버렸다. 피를 섞은 가족보다 더 깊은 얘기를 하고 더 친밀한 사람들을 나는 ‘식구’라 불러야 할까. 내가 남루한 모습으로 찾은 것은 가족이었던가 식구였던가.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다만 성석제가 제시한 여산과 마을 사람들을 통해, 상처투성이인 내가 찾아가는 곳의 방향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가족, 식구, 나... 조금 오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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