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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의 커피는 그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커피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한 검은색 음료 속에 우리의 인생사를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우리에게 근대에 들어서 익숙한 존재로 탈바꿈되었다. 이러한 커피 한잔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며 일반인들은 보통 하루에 1잔을 꾸준히 마실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식품이다. 때로는 이러한 커피한잔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우울했던 나날을 잊어버리게도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
노서아가비란 러시아커피를 옛날우리말로 발음한 것으로서 주인공따냐가 좋아하는 커피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여타 다른 소설에서는 외세의 침입속의 조선을 어둡고 불안정하며 힘든 상황으로 묘사하는데 비해 노서아가비에서는 이런 어두운 역사적 배경을 발판 삼으면서도 밝고 명랑하게 흘러간다. 이는 보통의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 따냐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기꾼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며 물건이든 사람이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야한다. 따냐는 이러한 사기꾼의 속성을 철저히 지켰으면서도 그것이 어둡게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보여주어서 당찬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남자의 사랑에 백이면 백 전부를 거는 여자가 아니다. 백 중 아흔아홉까지 마음을 준 다해도, 항상 마지막 단 하나의 최악을 대비하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여자주인공은 소설을 한층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만드는데 협조하였다.
책 속의 당시 조선은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시기였다. 이른바 고위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바빴고 백성들은 하루하루 사는 것조차 걱정스럽고 힘들 정도로 조선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따냐는 역관의 딸로 태어나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익히며 편안히 지내다가 아버지가 천자의 물품을 훔쳐 달아나 반역죄로 죽자 조선을 벗어나 넓은 대륙으로 향하게 된다. 반역자가문의 삶은 뻔 하기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난 것이다. 자신을 속이려던 여러 사람들을 재치 있게 사기를 벌이면서 따냐는 자유로이 살아간다. 압록강을 건너기전 아버지친구인 복코아저씨와 그의 동료 왕 씨 아저씨에게 화약을 선물하는가 하면 오랜 동업자였던 위조전문가 칭할아버지를 배신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허영심 많은 유럽귀족들에게 광활한 러시아 숲을 판매하기도 하는 크고 전문적인 사기를 친다. 이런 배짱이 두둑한 여자사기꾼인 따냐는 더 나은 이익을 위해 우연히 만난 사기꾼 이반과 함께 일을 도모하고 자신의 조직을 배신하고 조선으로 건너가는 등 음모와 배신을 일삼으며 삶을 살아간다. 조선에서는 황실에 본격적으로 사기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따냐는 커피를 고종께 올리게 된다. 고종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한순간의 마음으로 아비를 죽인 것이 아니며 여전히 나라를 걱정하고 고뇌함을 알게 되자 왠지 모를 깨달음을 얻어간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자 따냐는 자신의 운명을 건 선택을 하게 된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이반은 따냐를 사랑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책의 마지막장까지 나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이반은 진심으로 따냐를 사랑한 것인지, 아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것인지, 그도 아님 이리저리 얽힌 마음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책은 결말을 맞이한다. 따냐는 여전히 이러한 의문을 간직한 채 노서아가비를 마시면서 푸시킨의 시를 읊고 노래를 하며 생을 살아간다.
김탁환의 소설은 그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점이 특징이다. 유려한 문체와 사람을 끌어당기는 스토리로 인해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어 버린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인 고종의 독살사건이 이토록 유쾌한 사기극으로 바뀔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움을 느꼈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커피를 사랑했으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간 따냐의 인생에 한번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