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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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중원 - 이기원 >

  제중원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비참한 삶을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의사가 되어 조선최고의 실력을 가지게 되는 황정이란 인물의 인생역전 이야기이다. 때는 구한말 당시 조선은 서양세력과 일본, 청의 간섭으로 극심한 혼란이 지속되던 때였으며 주권을 지키기 위해 고종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시기이다. 고종은 의학을 발전시켜 부국강병을 이루고 싶었으나 일제의 야욕 속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정국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중전의 조카 민영익을 선교사 알렌이 살려내자 <제중원>이란 근대의학시설을 설립한다. 당시의 조선은 신분제가 흔들리고 있었으나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속에 존재하였고 이러한 사농공상이라는 4가지 계급보다 천한 천민계급인 백정은 일반백성들에게 조차 왜면 받고 천대를 받았다. 책의 주인공 황정은 백정의 아들로서 평생을 백정으로 살아야 하며 본래의 이름조차도 개의새끼라는 말을 그대로 적은 소근개이다. 황정은 어머니가 폐결핵이란 병에 걸려 위중하자 근대 의술을 하는 일본인을 찾아가 치료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돈이 없어 백정이 가장 해서는 안되는 밀도살을 하게 되고 어머니도 구하지 못한 채 포졸들에게 쫓기게 된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우연히 황정이란 신분을 손에 넣어 꿈에 그리던 의사의 길에 접어들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황정과 백도양의 모습이었다. 조선에 전염병이 돌아 약이 부족하던 때 전염병에 걸려 살아날 희망이 없는 꽃님이란 여자아이가 제중원에 실려 온다. 약이 들어오지 않아 쉬이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백도양은 살아날 수 있는 환자에게 집중하여 보다 더 많은 환자를 살리자고 주장하고 황정은 설사 가망이 없는 환자라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정은 원장이 허락하지 않자 문책을 받을 각오를 하고 거짓말을 하여 꽃님이에게 약을 투여하고 임종을 지켜준다. 사실 이런 경우 누가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약이 부족한 상황에서 살릴 수 있는 사람만을 살리자는 백도양의 말이나 환자를 임종직전까지 편안하게 해주어야하는 황정이나 둘 다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환자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황정과 같이 자신을 생각해주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을까한다. 환자각각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며 지켜주는 황정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더 지을 수 있었다. 비록 꽃님이는 살아나진 못했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을 면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천대받는 백정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비웃어도 꿋꿋이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의 길을 걸어가는 황정의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내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 이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의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당시와 비교하면 현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학이 발전했다. 그러나 예전보다 의사와 환자와의 거리가 멀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환자는 많고 의사는 한정돼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단시 의사란 직업을 돈벌이의 수단으로서 생각하는 몇몇 의사들이 존재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황정과 같이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소명을 다하는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처음 소설을 읽기전 하얀거탑을 쓴 이기원의 첫 장편소설이라 걱정을 했었다. 첫소설이니 만큼 아무래도 미숙한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사라져버렸다. 천한 신분인 백정이 최고의 실력인 의사가 되기까지 험난하고 굴곡진 여정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여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백도양이란 인물 또한 단순한 악역이 아닌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인간이라면 겪을 수 있는 갈등을 보여주면서 어쩔 수 없이 악역으로 변모하는 인물임을 그려내 두 대립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석란과의 로맨스가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나 애절하게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 등은 읽던 도중 갑작스러움이 느껴졌다. 드라마제작을 염두에 두어 둔 소설이라 하니 영상에서는 이 부분이 보충되어 개연성 있는 로맨스가 되길 기대해본다. 요즘에는 문학콘텐츠가 다양해져서 여러 장르로 하나의 문화를 즐길 수 있어서 새로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소설에서 느낀 흥미진진함을 드라마에서 어떻게 형상화 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화면 속에서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황정의 모습을 다시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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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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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 카밀라 레크베리]

  얼음공주는 표지부터 차가우면서 서늘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푸른색 계열의 화장을 한 무표정의 여자얼굴이 표지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어서 책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서늘한 눈매와 미간에 점점이 퍼진 핏자국은 날카롭게 벼려진 긴장감을 한창 높여준다.

예전에는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관광업이 주요수입원이 되어버린 낙후된 어촌마을 피엘비카에서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부유한 한 여자가 죽음을 맞이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욕조 안에서 마치 얼음공주처럼 차갑고도 기묘한 형태로. 죽은 알렉스의 어릴 적 소꿉친구인 에리카는 그녀의 죽음을 발견한 뒤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죽음의 원인에 의문을 갖게 된다. 우연히 어릴 적 친구 경찰 파트리크와 만나게 되면서 둘은 알렉스의 죽음을 더듬어 간다. 작가인 에리카에게 있어서 알렉스의 의문의 죽음은 충격을 선사함과 동시에 강렬한 지적호기심을 자극시켰고 알렉스의 삶을 파헤치게 된다. 그녀의 죽음이 과거 25년 전 실종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 얽혀있던 인물들의 복잡한 사정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 뒤 알렉스와 내연의 관계였던 안데르스가 용의자로 지목됐다가 풀려난 뒤 살해당하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방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사건의 용의자를 밝혀내기 위해 벌였던 수사는 25년 전 얼 음속에 꽁꽁 얼려뒀던 진실을 드러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이나 일본, 영국은 영미대륙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요새들어서는 유럽 쪽에서도 신선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서 독작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북유럽의 차가우면서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판타지적인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스웨덴의 작은 어촌마을 피엘바카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려내는 소설 [얼음공주]는 보통 우리가 읽었던 미스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여타 다른 소설과 같이 의문의 살인사건과 그것을 파헤치는 탐정이라는 소재는 같으나 그 전재방식이 독특하였다. 사건이 주된 소재가 아니라 얼음공주에서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여 인물들의 심리변화를 그려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어촌마을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주민들, 한명한명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건과의 연관성이 조금씩 드러났으며 맞물러 갔다. 빠른 속도로 장면이 넘어가는 방식이 아닌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하고 표함으로서 느림의 미학을 나타냈다. 특히 여주인공 에리카의 가정문제가 자주 등장하였는데 여성작가의 특유의 세세한 필력으로 여성의 심리를 그려내어 일종의 심리드라마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 소설을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빠른 속도로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서 이 부분에서 독자들의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얼음공주에서 보여준 어른들의 행동은 지금 이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을 생각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갈까? 알렉스는 어른들의 이기심에 의해 희생되었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하였더라면 아이는 훨씬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만 생각하고 자신들의 허영심만을 채우던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스웨덴 소설은 밀레니엄시리즈 이후 처음 읽어보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 쪽이 아니라 그런지 신선함을 느꼈다. 만약 기막힌 트릭과 사건을 기대한다면 이 소설을 추천할 수 없으나 인물들의 심리와 조금씩 드러나는 추리,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 등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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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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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틱하게 살자”


기온이 30C를 넘나드는 무더운 여름이다. 이러한 무더위에는 밖에 돌아다니기에도 힘들고 집에 있자니 기운이 쳐져서 지내기 힘든 나날이 지속되었다. 때문에 각자의 방법으로 피서를 즐기면서 더위를 이겨내고 있으나 멀리 가지 않아도 간단한 방법으로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등골이 오싹하거나 식은땀을 쥐게 만드는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시리즈는 특유의 솜씨를 발휘하여 숨막히게 긴장감을 조성하면서도 편안한 웃음을 자아냐는 장점을 지닌 소설이라 볼 수 있다. 표지 또한 스릴러물답지 않은 밝은 노랑과 회색이 공존하고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왕새우 무늬의 남자는 마치 코믹한 이야기를 암시하는 것 같이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어 무더운 여름에 알맞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기노시타 한타는 코믹 스릴러란 장르를 펼쳐낼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책에서 등장하는 주요소재인 관람차는 놀이공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기구이다. 관람차는 안팎으로 유리창으로 구성되어있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상공에서 밀폐된 밀실이기도 하다. 만약 관람차가 정지할 경우 갇힌 사람들은 그곳에서 갇힌 채 구출을 기대해야만 한다. 이러한 일종의 밀실공간에서 의도치 않게 사람들이 납치를 당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관람차에 탄 각각의 인물들이 어떠한 경위로 관람차에 타게됬는지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평범한 가족과 데이트를 하는 여의사와 건달, 이별전문가, 소매치기의 전설과 그를 동경하는 젊은이등 다양한 사람들은 각각의 인생을 살아오다 관람차가 멈추게 되면서 공동의 운명을 지니게 된다. 어찌 보면 공통점이 없다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특히 중반부까지 폭파범이 왜 관람차를 납치할 수밖에 없었는지, 하필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납치를 당하게 됐는지 배경을 보여주면서 후반부에 모든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하나의 줄기로 전개되는 과정은 한숨도 쉬지 않고 볼 정도로 긴박감을 제시하였다. 이런 각자의 인물들의 시선이 등장하는 소설이 여럿 존재하는데 이것은 등장인물들 각각의 사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선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으나 잘못하면 시선의 분산으로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어수선하게 되어 통일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을 잘 피해서 악몽의 관람차는 이점을 이용하여 인물들 하나하나의 행동에 그들의 생각을 드러내어 독자에게 제3의 시선을 제공한다. 때문에 퍼즐 같은 상황을 자연스레 완성할 수 있게 만든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 과연 누가 나쁜 사람인가?” 이었다. 납치를 감행한 납치법인가, 아님 납치의 원인을 제공한 자인지, 청부살인자인지, 등장인물들 모두 약간의 악을 지니고 있어서 나쁜 사람의 범주에는 들어가나 누가 가장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는지는 마지막장을 읽었을 때까지도 판단되지 않았다. 어쩌면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고자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 악인이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악몽의 관람차’에서 등장인물들이 악을 행하고 있으나 그것이 진지하면서도 묘하게 코믹한 느낌을 받게 되어 신선하였다. 진지하고 우울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으나 특유의 필체로 유머를 잃지않은채 유쾌한 장면이 지속되어 보는 내내 시원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주인공 다이지로의 가족의 신조는 “어떤 상황이든 로맨틱하게 살아!” 이다. 이는 책의 내용을 통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로맨스, 로망! 이란 단어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좀 더 인간미 있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꿈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행동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돌파해나갈수 있지 않을까? 관람차에 납치당한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노력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무덥고 습한 기운이 느껴져 짜증이 자꾸 치솟는 요즘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긴박감과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악몽시리즈와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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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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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란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소년탐정 긴다이치 하지메로 한국판으로 번역된 이름은 김전일이다. 한창 인기가 많을 때는 김전일이 나타나면 대여섯은 죽어나간다느니 반드시 밀실살인이 일어난다거나 고립된 상황 속에서 차례대로 살인이 일어나니 찍어도 범인을 맞추겠다. 등 김전일의 법칙이란 것이 존재할 정도로 친숙하고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말썽만 피우고 어수룩하게 굴지만 사건 앞에선 누구보다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는 긴다이치 하지메는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란 말을 외치며 사건을 추리하는 하지메를 보면서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웬 할아버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만화속 등장인물들도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라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라며 “그 유명한 명탐정의!”란 말을 반드시 내뱉는 것으로 보아 일본전역에 유명한 탐정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실제인물은 아니지만 뛰어난 능력을 선보여 아직까지도 일본에서 사랑받고 있는 긴다이치 하지메가 등장한다고 하여 이 소설을 읽기로 하였을 때 무척 두근두근 거렸다.

과연 나의 기대에 걸맞은 사람인지? 어떤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일까?

 

소설의 전반적인 배경은 1947년 화족제가 폐지되고 신분의 차등이 철폐되어 법으로 제정한 어수선한 시대를 삼고 있다. 2차세계 대전후 일본의 전역은 전쟁의 여파로 황폐하고 힘겨웠으며 메이지유신지사들의 신분이 철폐되면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비록 법으로 신분의 차별을 없앴으나 관습은 쉬이 없어지지 않아 여전히 귀족들은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이니 평민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행동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몰락해버린 귀족의 비참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원래 인간이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면 편히 살 수 있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몰락할 경우 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권위가 추락해버리고 경제사정 사정 속에서 또한 어려운 변해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쇄되고 고립된 생활을 영위하는 가문들이 일본 곳곳에 존재했으며 당시를 나타내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립된 마을 속에서는 그들만의 관습이 존재하며 그것이 불합리한 것 일지라도 철저히 따르고 강한 결속력을 지니며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설은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천은당사건을 전개하면서 시작된다. 보석상의 사람들은 독살하고 보석을 강탈한 범인으로 예전 영화를 누렸으나 현재는 집의 가구를 팔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몰락한 츠바키가문의 당주가 지목되고 실의에 빠진 당주가 자살하면서 긴다이치코스케는 츠바키가문와 엮이게 된다. 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집 때문에 츠바키가문에는 다마무시가문과 신구가문이 얹혀살고 있었으며 서로간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긴장감은 다마무시백작이 무참하게 살해되면서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사건이 일어나면서 츠바키자작의 환영은 저택 곳곳에 나타나게 되고 악의적이고 음습한 살인자의 원념은 끊임없이 살인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한 인간의 죄로 인해 악마가 태어났으며 그 악마는 자신의 피맺힌 원한을 츠바키가문을 단죄하면서 토해낸다. 제목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츠바키자작이 죽기 전에 만들어진 플루트 곡으로 곡의 느낌이 어둡고 악의적이며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곡이다. 죽음의 사신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 같은 이곡은 소설 전반을 휘감으면서 광기어린 멜로디를 드러낸다.

 

과연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답다고 해야 할 정도로 코스케는 뛰어난 추리력과 행동력으로 범인을 추리한다. 소설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정말로 악마가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무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몽환적이면서 으스스한 내용은 더위를 한 순간에 잊어버리게 할 것이다. 다만 조금 안타까웠던 점은 중반부까지는 치밀하게 이어지던 내용이 후반부에서 허술해진 부분이 없지 않아있었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넘어간 부분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으나 그것을 만회할 만큼 몰락한 가문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어서 감탄을 자아내었다. 김전일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가 활약하고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가문에 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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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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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커피는 그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커피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한 검은색 음료 속에 우리의 인생사를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우리에게 근대에 들어서 익숙한 존재로 탈바꿈되었다. 이러한 커피 한잔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며 일반인들은 보통 하루에 1잔을 꾸준히 마실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식품이다. 때로는 이러한 커피한잔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우울했던 나날을 잊어버리게도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

노서아가비란 러시아커피를 옛날우리말로 발음한 것으로서 주인공따냐가 좋아하는 커피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여타 다른 소설에서는 외세의 침입속의 조선을 어둡고 불안정하며 힘든 상황으로 묘사하는데 비해 노서아가비에서는 이런 어두운 역사적 배경을 발판 삼으면서도 밝고 명랑하게 흘러간다. 이는 보통의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 따냐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기꾼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며 물건이든 사람이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야한다. 따냐는 이러한 사기꾼의 속성을 철저히 지켰으면서도 그것이 어둡게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보여주어서 당찬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남자의 사랑에 백이면 백 전부를 거는 여자가 아니다. 백 중 아흔아홉까지 마음을 준 다해도, 항상 마지막 단 하나의 최악을 대비하는’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여자주인공은 소설을 한층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만드는데 협조하였다.

책 속의 당시 조선은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시기였다. 이른바 고위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바빴고 백성들은 하루하루 사는 것조차 걱정스럽고 힘들 정도로 조선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따냐는 역관의 딸로 태어나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익히며 편안히 지내다가 아버지가 천자의 물품을 훔쳐 달아나 반역죄로 죽자 조선을 벗어나 넓은 대륙으로 향하게 된다. 반역자가문의 삶은 뻔 하기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난 것이다. 자신을 속이려던 여러 사람들을 재치 있게 사기를 벌이면서 따냐는 자유로이 살아간다. 압록강을 건너기전 아버지친구인 복코아저씨와 그의 동료 왕 씨 아저씨에게 화약을 선물하는가 하면 오랜 동업자였던 위조전문가 칭할아버지를 배신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허영심 많은 유럽귀족들에게 광활한 러시아 숲을 판매하기도 하는 크고 전문적인 사기를 친다. 이런 배짱이 두둑한 여자사기꾼인 따냐는 더 나은 이익을 위해 우연히 만난 사기꾼 이반과 함께 일을 도모하고 자신의 조직을 배신하고 조선으로 건너가는 등 음모와 배신을 일삼으며 삶을 살아간다. 조선에서는 황실에 본격적으로 사기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따냐는 커피를 고종께 올리게 된다. 고종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한순간의 마음으로 아비를 죽인 것이 아니며 여전히 나라를 걱정하고 고뇌함을 알게 되자 왠지 모를 깨달음을 얻어간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자 따냐는 자신의 운명을 건 선택을 하게 된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이반은 따냐를 사랑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책의 마지막장까지 나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이반은 진심으로 따냐를 사랑한 것인지, 아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것인지, 그도 아님 이리저리 얽힌 마음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책은 결말을 맞이한다. 따냐는 여전히 이러한 의문을 간직한 채 노서아가비를 마시면서 푸시킨의 시를 읊고 노래를 하며 생을 살아간다.

김탁환의 소설은 그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점이 특징이다. 유려한 문체와 사람을 끌어당기는 스토리로 인해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어 버린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인 고종의 독살사건이 이토록 유쾌한 사기극으로 바뀔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움을 느꼈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커피를 사랑했으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간 따냐의 인생에 한번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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