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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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긴다이치 코스케란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소년탐정 긴다이치 하지메로 한국판으로 번역된 이름은 김전일이다. 한창 인기가 많을 때는 김전일이 나타나면 대여섯은 죽어나간다느니 반드시 밀실살인이 일어난다거나 고립된 상황 속에서 차례대로 살인이 일어나니 찍어도 범인을 맞추겠다. 등 김전일의 법칙이란 것이 존재할 정도로 친숙하고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말썽만 피우고 어수룩하게 굴지만 사건 앞에선 누구보다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하는 긴다이치 하지메는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란 말을 외치며 사건을 추리하는 하지메를 보면서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은 ‘웬 할아버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만화속 등장인물들도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라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라며 “그 유명한 명탐정의!”란 말을 반드시 내뱉는 것으로 보아 일본전역에 유명한 탐정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실제인물은 아니지만 뛰어난 능력을 선보여 아직까지도 일본에서 사랑받고 있는 긴다이치 하지메가 등장한다고 하여 이 소설을 읽기로 하였을 때 무척 두근두근 거렸다.

과연 나의 기대에 걸맞은 사람인지? 어떤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일까?

 

소설의 전반적인 배경은 1947년 화족제가 폐지되고 신분의 차등이 철폐되어 법으로 제정한 어수선한 시대를 삼고 있다. 2차세계 대전후 일본의 전역은 전쟁의 여파로 황폐하고 힘겨웠으며 메이지유신지사들의 신분이 철폐되면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비록 법으로 신분의 차별을 없앴으나 관습은 쉬이 없어지지 않아 여전히 귀족들은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이니 평민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행동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몰락해버린 귀족의 비참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원래 인간이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면 편히 살 수 있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몰락할 경우 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권위가 추락해버리고 경제사정 사정 속에서 또한 어려운 변해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쇄되고 고립된 생활을 영위하는 가문들이 일본 곳곳에 존재했으며 당시를 나타내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립된 마을 속에서는 그들만의 관습이 존재하며 그것이 불합리한 것 일지라도 철저히 따르고 강한 결속력을 지니며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설은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천은당사건을 전개하면서 시작된다. 보석상의 사람들은 독살하고 보석을 강탈한 범인으로 예전 영화를 누렸으나 현재는 집의 가구를 팔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몰락한 츠바키가문의 당주가 지목되고 실의에 빠진 당주가 자살하면서 긴다이치코스케는 츠바키가문와 엮이게 된다. 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집 때문에 츠바키가문에는 다마무시가문과 신구가문이 얹혀살고 있었으며 서로간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긴장감은 다마무시백작이 무참하게 살해되면서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사건이 일어나면서 츠바키자작의 환영은 저택 곳곳에 나타나게 되고 악의적이고 음습한 살인자의 원념은 끊임없이 살인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한 인간의 죄로 인해 악마가 태어났으며 그 악마는 자신의 피맺힌 원한을 츠바키가문을 단죄하면서 토해낸다. 제목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츠바키자작이 죽기 전에 만들어진 플루트 곡으로 곡의 느낌이 어둡고 악의적이며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곡이다. 죽음의 사신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 같은 이곡은 소설 전반을 휘감으면서 광기어린 멜로디를 드러낸다.

 

과연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답다고 해야 할 정도로 코스케는 뛰어난 추리력과 행동력으로 범인을 추리한다. 소설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정말로 악마가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무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몽환적이면서 으스스한 내용은 더위를 한 순간에 잊어버리게 할 것이다. 다만 조금 안타까웠던 점은 중반부까지는 치밀하게 이어지던 내용이 후반부에서 허술해진 부분이 없지 않아있었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넘어간 부분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으나 그것을 만회할 만큼 몰락한 가문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어서 감탄을 자아내었다. 김전일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가 활약하고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가문에 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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