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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강영숙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 몇 자 적는 게 참 오래도 걸렸다. 마음이 너무 먹먹해지고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어 도무지 손이 가질 않았다. 내겐 한강의 '소년이 온다' 다음으로 읽기 힘든 책이었다. 책이 나오고 일 년이 좀 안 되었는데, 이 짧은 기간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더는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겨우 적어본다.
죽음. 이토록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단어가 있을까. 나의 죽음 혹은 내 가족, 친구의 죽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워진다. 하지만 뉴스 기사 속 남들의 죽음은 잠깐은 슬프지만 이내 잊힌다. 나와 관련된 사람의 죽음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죽음은 천지 차이다.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이에 대한 반성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죽음을 안일하게 대했는가. 나는 얼마나 많은 죽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가.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릴까.
이 책에 나온 모든 소설이 무거웠지만, 내겐 「몰:mall:沒」과 「하나의 숨」이 특히 아팠다. 「몰:mall:沒」을 읽으며 삼풍백화점붕괴사고와 세월호참사가 생각나 눈물이 났고, 「하나의 숨」을 읽으며 故 김용균 씨와 故 홍정운 군이 떠올라 힘들었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이 제일 슬펐다.
P. 104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우리가 구하지 못한 사람들, 구하지 못할 사람들. 기억은 흐려지고 참사는 반복된다. 바뀌지 않으면 분명 또 반복될 것이다. 다음엔 내가, 내 가족이, 아니면 이 글을 보는 당신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재난 앞에서 한낱 인간의 목숨이란 얼마나 연약한가.
선례가 있었고, 막을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우리가 관심을 가졌더라면. 돈보다 사람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더라면. 내 가족처럼 생각했더라면. 잘못한 사람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렸더라면. 후회는 힘이 없다. 일이 벌어진 후에 후회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리는 후회에서 끝나면 안 된다. 과거를 잊지 말고 현재에 적용해서 미래를 지켜야 한다.
P. 247 우리가 아무리 미세 먼지 같은 그런 존재라고 해도 나는 우리가 사라지는 게 아쉽고 슬프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지만 나는 그들의 죽음이 아프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게 나는 너무 슬프다. 나의 목숨이 소중하다면, 다른 이의 목숨 또한 소중하다. 이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고, 숫자로만 기억되는 죽음은 계속 늘어난다.
우리에게 이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는 게 맞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이 땅에 발붙이고 있을 수 있을까? 우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제 세월호는 지겹고 그만들 하라는데, 이런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인 걸까?
나는 그냥 우리가 안전하게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지 않고 모두 무사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의 목숨이 우선인 게 당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무사히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힘들어도 마주하고, 기억해서 재난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