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5
박규태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

 

박규태 / 책세상 / 201

 

 

일본의 정객들은 늘 한일관계의 어두운 부분을 건드려 보수세력으로부터 인기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본 내 우경화는 이와는 달리 민족주의와 경제침체가 맞물려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주며 지난 반세기 한일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아베총리가 역점을 두고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는 이제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한 사안이 되었다. 일본은 왜 전범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집착하는가. 종교학자인 저자는 일본에서 옴진리교사건을 접하고 야스쿠니 신사와 이 사건을 <모노노케 히메> 속의 신앙관을 원용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들이 한일관계에서 표변하는 것을 보면 정치적 문제 외에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그 무엇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그게 뭔지 모르고 또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과거 일본영화시장을 개방할 때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예속화를 걱정하며 반대했지만 일본 영화나 가요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한류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우리문화 수출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배우와 가수들은 지금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있으며 극성팬들은 우리나라로 건너와 연예인들의 행동 하나에 울고웃는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역사도 문화도 그들의 속생각도 잘 알지 못한다. 과거사는 비단 과거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정치상황과 맞물리고 영토문제로도 불붙지만 개개인들까지 그러지는 않는다. 우리는 명동에 일본 관광객이 몰리길 기대하고 역으로 일본 지역경제에서도 한국인은 귀한 손님들이다.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면 오랜 악연을 넘어 진정한 이웃이 될수도 있다. 일본 보다는 오히려 중국이 앞으로 적대적인 사이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역사적 지리적 이웃은 때론 갈등으로 때론 선린으로 지내왔는데 중국이건 일본이건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른다. 중국에 대해서는 막연한 호감을 갖는 이들이 많은 듯 한데 일본에 대해서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 박규태교수의 이 책은 나름 신선했다. 신화와 종교를 통해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매우 좋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신도나 천황에 대해 미움보다는 이해가 먼저다.

이 책은 일본 고대신화와 천황, 신도와 종교, 신종교와 옴진리교를 통해 일본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뿌리깊은 간극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모노노케 히메 이야기를 들어 책을 끝맺는다. 타자와의 동화가 아닌 타자들의 각자도생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상생이 있음을 말한다. 저자는 일본에 대해 우리가 갖고있는 여러 전제들, 즉 일본신화는 정치신화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원칙보다는 현실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신불습합의 부정은 파괴적 에너지로 나타났다... 등등을 넘어야할 전제라고 말한다. 굳어진 기정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극복으로 열린 결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내용

 

 

<고사기>古事記 에는 일본의 건국신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나온다. 이자나기는 물로 부정을 씻는 의례를 통해 아마테라스(신들의 하늘 다카마 가하라高天原 주재), 쓰쿠요미(밤의 세계 주재), 스사노오(바다의 세계 주재)를 낳는다. 스사노오는 다카마가하라에서 추방되어 이즈모出雲로 가서 산신의 딸과 결혼하고 그 후손인 오오쿠니누시가 일본땅을 통치하는 지배자가 된다. - 다카마가하라의 위치는 설이 분분한데 우리나라 고령에 있었다는 믿기힘든 주장도 있다. - 그러나 신들은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결국 통치권 이양을 받아내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니니기가 3종의 신기(구슬 거울 칼)를 가지고 히무카日向 다카치호에 강림하여 그 후손이 일본을 통치한다. 곧 천황가의 시조다. 이는 천황가의 신성한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8세기에 쓰여진 건국신화다. “이 일본신화에는 신화일반에서 엿볼수 있는 보편적 테마들을 적지않게 내포하고 있다. 숨은 신, 근친상간, 세계축, 저승세계로의 하강, 금기와 위반, 단성생식, 신의 살해와 곡물의 기원, 카오스의 살해, 입문적 시련, 죽음의 기원, 부활의 모티프 등.”

 

 

아마테라스는 메이지 이후 천황제국가가 형성되면서 여성성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 일본신화는 우주의 기원이나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지 않고 대신 국토의 기원에 대한 서술만 나온다. 또 성적 상징과 몸에 관한 담론이 많다. 저자는 형이상학적 표현 대신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우선한 일본신화에서 상상력의 자유를 본다.

 

 

일본의 독특한 종교인 神道는 문헌상 <일본서기>日本書紀31대 요메이천황의 즉위전기에 처음 나타난다. 즉 일본의 고유종교가 불교를 만나면서 비로소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몇차례 전환기가 있었지만 대체로 천년에 걸친 신도의 체계화를 신불습합 神佛習合이라 부른다. 신도와 불교가 일체화되는 과정이다.

 

 

13,14세기부터 신도 중시관념이 나타나고 임진난이후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야마자키 안사이가 스이카신도를 창시하여 주자학, 음양도, 기학을 합해 신도를 정리하고 아마테라스의 도라 규정한다. 즉 그 후손인 천황에 대한 숭배를 강조한 것이다. 17세기들어 일체의 외래사상을 배제한 채 순수한 신도만 내세우는 사조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국학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에 의해 집대성된 국학은 에도후기 근왕지사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어 순수하게 일본적인 것을 강조하게 되고 결국 메이지유신이후 신불분리정책으로 귀결되어 폐불훼석운동이 나타났다.

 

 

저자는 신도와 불교라는 이질적 종교가 공존하고 융합해 신불이라는 신관념을 만들어낸 현상을 용광로에 비유한다. 궁극적 절대자나 교조도 경전도 없는 신도의 관용성이 불교를 받아들여 공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일본인의 관용정신으로 보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을 이전의 것과 동화시켜 현재화하고 과거부정 대신에 과거에 첨가시켜 축적하는 공존의 논리로 보았는데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런 타자의 포용을 정신적 잡거성이라 비판했다고 한다.

 

 

신도에서는 절대적인 악이나 절대적인 선이 없고 생명력의 고갈을 악으로 본다. 고대 일본어에도 현대적 개념의 도덕적 선악개념이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신도의 신 가미는 어디에나 있는 모든 은덕있고 두려운 존재인데 도덕을 초월한다. <고사기>를 정리하여 신도를 집대성한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사상은 일본정신을 대변한다고도 할수 있는데 그는 고사기 해석에서 실증주의적 태도와 배타적 국수주의적 태도를 동시에 나타내 양면적이란 평을 듣는다고 한다. 일본적 사고란 바로 이 양면성을 말한다. 즉 노리나가 선악의 기준은 가미의 마음(신들의 마음), 의 원리(고귀함은 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혈통에 의한 것), 모노노아하레(사물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정조), 즉 윤리적 판단이 아닌 미를 기준한 선악의 판단이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나누지 않는 노리나가의 선악관이 곧 일본의 선악관이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천황을 신으로 섬기고 카미카제를 찬양하는 이유를 쉽사리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노리나가는 이에 더하여 외국풍의 침투 특히 중국적 사상이나 문화를 악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비판했다. 그는 국학을 통해 외국풍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맹목적으로 모든 중국풍을 거부하여 국수주의의 원조가 되었다.

 

 

선과 악을 뚜렷이 구별되는 객체로 보지않고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본 사상사의 한 특징이다.(신의 뜻에 합일하고 자기를 아는 것이 참된 선, 악이란 다만 본질의 결핍일 뿐:니시다 기타로)

 

 

일본의 신사는 어디가나 있고 대부분 가정에도 신단을 모시고 있다. 신사는 일본인의 생활전반에 없어서는 안될 신앙의 대상이자 생활관습이다. 사적인 영역 뿐만아니라 공적으로도 신사는 중요한 의례의 하나다. 일본인은 일생을 그리고 하루하루를 신사와 함께한다. 그런 측면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심정적 동의는 정치적 문제라기 보다는 원령을 위로한다는 일본의 전통적 신앙에 가깝다.

 

 

서기 538년 백제에서 전래된 불교는 곧 호국불교로 정착하여 고쿠분지國分寺 계획의 일환으로 나라에 도다이지가 세워지고 전국에 중점 사찰이 건립된다. 헤이안 후기를 지나며 민중불교가 성장하여 가마쿠라 신불교운동이 일어난다. 호넨의 정토종은 칭명염불을 통해 극락왕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오늘날까지 일본인이 가장 많이 믿는다는 정토진종을 창시한 신란은 호넨의 제자로 박해를 피해 환속하여 속인으로 지냈다. 신란의 사상은 매우 특이하다. 신란은 인간을 어리석은 존재로 보아 신심과 노력, 능력도 없다고 보았다. 오직 반성과 인간의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했는데, 인간의 죄란 기독교의 원죄 같은 것이 아니라 범부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의식, 번뇌 등에 대한 절망을 말한다. 그래서 구원에는 절대타력(염불에 의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한 사람도 왕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악한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악인도 왕생하는데 선인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자력으로 선을 행함이 아닌 타력에 의지한 칭명염불만이 아미타불의 본뜻이다.” 신란 당대의 악인이란 살기위해 어쩔수 없이 계율을 범하고 죄악을 끊기 어려운자,. 직업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비천한 피차별민을 가리킨다. 이렇게 악인이라야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 이라한다. 신란의 주장은 도덕적 선악의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함의를 담고있는 개념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선이든 악이든 모든 것을 아미타불의 서원에 맡기고 다른 선을 일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천명쯤 죽이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는 역설의 성립도 가능하게 된다. 이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비유였지만 현대 일본사회에서 이 역설은 옴진리교 사건으로 현실화되었다.

 

 

니치렌은 법화경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여 가마쿠라 막부에 염불을 금지하고 법화경을 신봉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로인해 박해를 받았지만 니치렌 일련종의 특징은 개인구제보다도 법화경을 통한 사회와 국가 개조로 이상국가를 실현한다는 국가주의다. 이는 또 후대에 창가학회와 입정교성회 등의 신종교로 나타났다.

 

 

선종은 에이사이의 임제종, 도겐의 조동종으로 발전했는데 공안 중심의 한국불교와 달리 조동종은 좌선과 수행을 중시한다. 도겐의 저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은 일본인이 쓴 최고의 철학서라는 평을 받는데 이 안에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는 장이 있다. 이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용어인데 여러 현상들의 참된 모습을 말한다. 諸法實相은 대립개념인데 일본에서는 이를 제법은 실상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도겐은 더 나아가 실상은 제법이다라고 풀었다. 그러니까 희로애락으로 가득찬 이 세계가 곧 실상(실재)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긍정 태도는 중세 일본 불교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요컨대 일본인에게는 주어진 환경세계와 현실 및 모든 객관적 조건을 그대로 긍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본불교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태도로 이어지고 따라서 육식,음주,여색에 관한 계율을 일찌감치 파기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대부분의 일본 불교종파는 계율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인지는 논란거리인데 현대 일본불교는 신앙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의례나 전통생활의 일부로 사람들 사이에 남아있다.

 

 

기독교도 한국보다 먼저 일본에 전래되었지만 뿌리내리지 못하고 결혼식을 위한 로맨틱한 종교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그 이유중 하나는 근세일본의 철저한 기독교탄압이 있었고 국가 신도체제에서 천황의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했듯 일본의 관용적 사상전통 및 정신적 잡거성을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은 전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의 빈자리는 신종교가 메우고 있다.

 

 

일본에는 여래교, 흑주교, 천리교, 금광교 등 여러 가지 신종교가 나타나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 그중 하나인 옴진리교는 여타 신종교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에 대한 구체적 개념이 없는데다가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폭력까지도 용인하는 비현실적 교리로 인해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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