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화가들 - 조선시대 궁중회화 3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6
박정혜 외 지음 / 돌베개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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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화가들

한국학중앙연구원/박정혜 황정연 윤진영 강민기

돌베개 / 407

 

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연구와 함께 도서간행사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데 2011년부터 왕실문화총서 시리즈의 하나로 조선시대궁중회화 연작을 간행하고 있다. 이번 <왕의 화가들><왕과 국가의 회화> <조선궁궐의 그림>에 이은 세 번째 책으로 연작의 완성본이다. 책은 407쪽 이지만 본문은 360쪽이고 많은 양의 주석과 전거가 덧붙여져 있다. 1권의 왕, 2권의 궁궐에 이어 화가를 조명했으니 그림을 통해본 조선왕조가 아니라 조선왕조의 그림이야기고 그 3권은 도화서 화원을 다룬 책이다.

 

이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단연 상당량의 컬러도판이다. 이 사진들을 보고있노라니 작년 리움의 <조선화원전>과 올여름 포스코미술관 <천재화인열전>이 생각났다. 이 책을 먼저 보고 전시회를 봤으면 좀더 이해가 쉬웠을텐데.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조선시대화원과 궁중회화, 2부 왕의 초상을 그린 화가들, 3부 제국의 황실화가들 화가에서 시대인으로, 4부 궁중회화에 담긴 길상의 시대.

얼핏 목차를보았을 때 화원을 다룬 책인데 4부의 궁중회화 길상은 부조화스런 느낌이 있었는데 서문에 원래의 4부가 아니지만 궁중화가와 길상표현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포함시켰다는 설명이 있다.

 

조선시대의 그림은 화원화와 문인화로 나눌수있는데 선비들이 그리는 문인화가 규격을 벗어난 자유로운 예술이라면 화원화는 일단 기록을 위한 주문그림이라고 하겠다. 마치 오늘날 사진의 기능을 하고있었던 셈이다. 어진이라 부르는 왕의 초상화, 진행기록화나 행사도, 건축물의 밑그림에서 조감도까지, 병영도와 지도 등 군사용 그림, 경관이나 생활상 등등 국왕의 눈 구실을 해준 것이 화원화가들이다. 또 이외에 감상용 그림이나 진상용 예술품을 그리기도 하였다. 우리가 근래에 많이 들어본 의궤란 주요 행사의 전과정을 그림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러므로 한두번이상 이름을 들어본 화원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득신 김홍도 이인문 변상벽 이상좌 등등. 고려의 도화원이 조선에 들어와 도화서가 되고 정조때 차비대령화원을 거쳐 대한제국기에 규장원 소속으로 바뀌었다가 없어지는 미술담당관청의 약사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를 다루고있어서 전시기를 조망하지는 않았는데 불과 얼마전에 나온 미술사학자 안휘준선생의 신간에서 통일신라의 솔거(황룡사 노송도로 유명한)는 귀화한 중국인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통일신라의 도화서격인 전채서 소속 화원이었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도화서 화원은 관리이기는 하지만 기능공인 탓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어진을 그린 화원이라도 6품이상 오르기 힘들었다. 간혹 국왕이 마음에 들어해서 3품직으로 올려줄라치면 벌떼같은 상소와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중앙의 도화서 화원 외에 지방으로 파견간 화사군관제도 있었고 도화서 소속이 아닌 방외화사도 있었으며 지역에서 활동한 직업적 지방화사도 존재했다고 한다.

 

화원은 실력이 뛰어난 화가도 많이 있었지만 행사에 동원되어 그린 화원화는

공적인 특성상 개성적인 화풍을 드러낼수 없고 기존의 패턴을 따라 반복한 것이 특징이어서 시각적으로 화려하게만 보일수 있다. 그러나 그속에 숨겨진 작업공정과 회화적인 가치, 화원이 흘린 땀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간과된 경향이 있다. 적게는 3~4, 많게는 수십명이 참여하여 하나의 작품을 함께 완성한 단결성, 색채와 문양에 있어 정제된 물감과 먹선을 사용한 집중력 등이 집결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왕의 얼굴을 그리는 어진화사가 되는 것은 화가에게 큰 영광이었고 그만큼 선발도 어려웟다고 한다. 화원이 결정되면 세 파트로 나눠 얼굴등 주요부위를 그리는 주관화사, 옷과 배경을 그리는 동참화사, 보조작업을 하는 수종화사로 어진화사를 구성했다고 한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생각지 않게 왕이 된 성종은 부왕(의경세자)의 얼굴을 그려준 화원 최경을 고위직에 임명하여 언관과 마찰을 빚었다고도 한다.

 

근대에 들어와 사진이 도입되면서 화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화원들은 근대화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멸하고 말았다. 그런중에 서양문물을 접하고 외교활동을 하거나 사진술을 배워 사진관을 연 화원들도 있었다.

 

이책은 가볍게 보는 책이라기 보다는 관심있는 사람들이 참고 또는 소장용으로 구입하면 좋겠다. 글의 체제나 구성, 서술이 전형적인 논문투라 대중용 역사문화 개설서로는 조금 미진해보인다. 또 역사를 전공한 분들이 아니라서인지 한일합방 등의 용어는 거슬린다. 그러나 오랜 공동연구 끝에 궁중화에 대한 거질의 연구성과를 내놓은 네분의 저자에게 독자로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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