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풀꽃
강인호 지음 / 대한문학(정기옥)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살아아생전 머릿결 한번 만져드린 적 없어

할머니 묘소는 직접 깎아드리신다지요

여뀌며 구절초며 쑥부쟁이며 가을꽃은

귀밑머리 꽃단장으로 남겨두신다지요

심어만두면 무덤 속 할머니 키우신다는

호박은 올해도 넝쿨 넝쿨 잘 자랐는지

이번 추석엔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시던

빛 고운 단감도 몇 개 사가지고 갈게요

1. ----------------------------------------------------------------

버릇도 없고,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도도하게 허리 등을 꼿꼿이 펴고 돌아다니는 나를

동네 할머니들이(꽃집 할머니, 문방구 할머니,세탁소 할머니들이, 오래산 동네라서, 내가 꼬마때부터 보았던 분들)

예뻐하는 이유는,

내가(기분이 좋은 날에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할머니들의 배를 덥썩 안아주고,

내가(더 기분이 좋은 날에는) 뽀뽀도 해주고, 손도 잡아 주기 때문일 거다

그건,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이지만,

언젠가부터, 이름도 사라지고, 곱던 모습도, 고와지려던 노력도 사라진 그녀들도

꼬마 아가씨일 때가 있을 테고, 사랑 때문에 볼이 발개지거나, 울고불고 아팠던 날들도 있었을 테고,

지금 늙다리 아줌마인 나보다 젊고 아름다웠던 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무도 사랑한다고, 곱다고, 고백도 해 주지 않고, 만져 주지도 않을테지

내가 좋아서 하는, 나의 특이한 인사법이

그녀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무조건 받았던 사랑을 기억나게 하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잠시라도 행복해진다면

변덕스럽고 일관성 없는 인사법이기는 하지만(그럴 때도 있고, 바빠서 모른척 할 때도 있고,귀찮아서 다른 길로 돌아갈 때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서 어리광을 피우는 거지만,

나는 참, 착한 인사를 하는 늙다리 아줌마다

그래서,

저 첫 행과 둘째 행을 읽었을 때, 가슴이 저릿저릿 했다

울보풀꽃님은, 그 마음을 어찌 알았을까,

나이가 들었다고, 누군가가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는 게 싫어지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자식이나 손자들 자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곱고 예쁘다는 말을 무심결에 흘리고 가면,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그 말 한마디를 마음 속에서 꺼내서 들여다 보고 들여다고 자랑하는지

아마도, 울보풀꽃님이 할머니 무덤에 풀을 깎고 있으면,

무덤 속에 할머니는 너무 좋아서 얼굴이 빨개 지실 게다,

쪼글쪼글 얼굴도, 환하게 피어나서 누구랑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처럼 웃을 게다

짧은 시행 속에 담긴 할머니는

아직도 귀밑머리 꽃단장을 하시는 고운 분이고

푸성귀며 곡식이며, 그리고 자식이며, 품안에 거두고, 길러내는 -마치 마법처럼, 살아있는 것들을, 더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는 힘을 가진,-분이다

나는 그 할머니도 어여쁘지만, 시인의 마음이 더 어여쁘다,

할머니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할머니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저런 이미지의 형상화가 가능이나 하겠는가

시 속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시인의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다

단감처럼 둥글고, 빛 고운 분이었겠다 하고...말이다

울보풀꽃님의 시를 읽을 때마다,

화려한 수사 없이도, 마음을 정갈한 노래로 뽑아내는 왠지 슬프고도, 아련한 아름다움에 취하고는 한다

그 흔한 추상어 하나 본 적 없고, 차원 높은 비유(상상의 고문을 해도 이해되지 않는)도 본 적이 없지만

누구도 끄덕일 수 있는 보편적인 심상들, 마음들, 닮고 싶은 시선들

언제나, 나는 잘난 척하면서 뭔가 복잡하고 거창하게 시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만,

울보풀꽃님의 시는, 그자체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해서, 설명은 군더더기가 된다

(그리고 그런 시가, 정말 좋은 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2--------------------------------------------------------------

며칠전 <나의 할머니>(진은영,<<우리는 매일매일>>)를 읽으면서,

아, 늙음의 추악함을 저렇게 선명하게 이미지화 할 수 있구나라고 감탄을 하면서도,

시인의 의도에 맞추어 시적 대상을 너무 폄하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의 향기를 풍기는 늙은 여인(치매에 걸린 듯한, 인성이 소멸되어버린)에 대한 묘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잎이 모두 진 월계수 가지에 / 한 장의 젖은 카드처럼 매달렸다'

그렇게 죽어간 그녀를(이제 보니, 스스로 목을 맨 것일 수도 있겠다, )

왜 시적화자가

구태어

"나는 가지를 톡, 부러뜨려 땅속에 묻었다'

땅 속에 묻었어야 했을까

이미, 이전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시적 화자의 할머니는, 여인도, 사람도, 아닌, 추악한 존재였는데,

세련된 묘사와 비유만으로도 충분히, 비천하고 고통스러웠는데

그렇게 가차없이 제거하는 마무리가 필요했을까

시적 대상을 죽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은 한 번만으로 족하다,

시적 화자까지 시 속에 개입해서 죽은 대상을 또 죽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적 대상보다, 시적 화자(작가)의 욕망이 앞설 때 드러나는 치졸한 과욕이다

3 ------------------------------------------------------------

나는 진은영의 시를 싫어하지 않는다

특히 <물속에서>(<<우리는 매일매일>>)는 정말 좋아한다, 손으로 적어, 책상에 붙여 놓고, 읽고 또 읽는다

우연히, 시적대상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정말로 우연히,

같은 소재를 다르게 다룬 두 편의 시를 읽었을 뿐이고,

그리고 과감하게 좋다와 나쁘다로 나눠서 내 생각을 적었을 뿐이다(절대, 진은영시 전반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리고 좋다와 나쁘다는

단지,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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