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사막 랜덤 시선 41
신현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신현정,< 모자>,<<바보사막>>,랜덤하우스,.p.14

 

 

모자

 

 

나는 분명히 모자를 쓰고 있는데 사람들은 알아보지를 못한다

그것도 공작 깃털이 달린 것인데 말이다

아무려나 나는 모자를 썼다

레스토랑으로 밥 먹으러 가서도 모자를 쓰고 먹고

극장에서도 모자를 쓰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에서도 모자를 쓰고 그림을 감상한다

나는 모자를 쓰고 콧수염에 나비넥타이까지 했다

모자를 썼으므로 난 어딜 조금 가도 그걸 여행이거니 한다

나는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으련다

이제부터는 인사를 할 때도 모자를 쓰고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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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등산용 베낭에 스텐컵을 매달고, 앞 주머니에 접이식 칼 넣고, 생수병을 손에 들고

자주 빠지면서, 가끔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가는 것보다 더 가끔은 등산화를 신고 다녔다)

내 가방 안에는 책이랑 쑤셔박은 필기구들(필통이 없었으므로) ,

엄격한 틀에 맞춰 생산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담은 프린트들이,

아무렇게나 갈겨 쓴 상념들이,

엉켜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늘, 놀러가는 것처럼 신나고 즐거웠다

나는 주로 교정에서 나무들이나 풀,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대화는 내 행색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강의실과 도서관, 낯선 사람들과의 애매모호(난해하고, 비상식적이고, 이치에 닿지 않고, 일관성도 없고, 일방적인)한 대화 혹은 토론 사이를 헤매다가 지칠 때쯤이면

공원보다 더 아름다운 교정 벤치에,

옆 건물 의료원에서 쏟아져나오는 환자복을 입은 창백하거나 절뚝거리거나 멍때리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서,

사과를 쓰윽 바지에 닦고, 접이식 칼을 자랑스럽게 꺼내 사과를 깎아 먹었다,

이유없이 목이 메일 때마다, 물도 한 컵 먹으면서

저 모자, 내 배낭, 사람들은 알아 보지를 못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고유함이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다

자신의 고유함 깊은 곳에 숨겨놓은 비루함이 고개를 내밀지로 모른다는 불안감이

두려움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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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난쟁이와 저녁 식사를>,<<바보 사막>>,랜덤하우스,.p.16-7

 

 

난쟁이와 저녁 식사를

 

 

나, 이때만은 모자를 벗기로 한다

난쟁이와 식탁을 마주할 때만은

난 모자를 식탁 한가운데에 올려 놓았다

이번 것은 아주 높다란 굴뚝 모양의 모자였다

금방이라도 포오란 연기가 오를 것도 같고

굴뚝새라도 들어와 살 것 같은 그런 모자였다

사실 꼭 이런 모자를 고집하자는 것은 아니다

식탁 위에서 모자는 검게 빛났다

오라, 모자는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여도 되는 것이로구나

식사를 마친 우리는 벽난로에 마른 장작을 몇 개 더 던져 넣었으며

그리고 식탁을 돌았다

나, 난쟁이 이렇게 둘이서

문 밖에서 꽥 꽥 하는 거위도 들어오라고 해서 중간에 끼워주고는

나, 거위, 난쟁이 이렇게 셋이서

모자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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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도 좋지만, <난쟁이와 저녁 식사를>도 참 좋다.

<모자>가 존재의 고유함에 대한 시라면

<난쟁이와 저녁 식사를>은 타인을 대하는 예쁜 태도와 마음에 대한 시이다

항상 모자를 쓰는 사람이라는 주장은,

타인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거나,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고,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늘 자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겠다는 귀여운 고집으로 보인다

(멋진 커피향-와인을- 을 즐기고 구분한다는 것으로, 늘 약속이 있는 인기있는 사람인 척하고,자녀들의 학교나 남편의(혹은 아내의) 직업이나 수입으로, 최저 가격으로 쇼핑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영리함의 기준인 것처럼 내세우며, 우리는 얼마나 사소한 것들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지...)

사실 레스토랑에서 극장에서 모자를 벗지 않는 게 대단히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시인님, 그런데요, 극장에서는 모자를 벗어 주세요, 저처럼 쪼꼬만 여자가 뒤에 앉으면 분명히 투덜거릴 거예요^^)

그런 것 가지고 눈을 찌푸리는 사람도 민감하게 구는 것이 되니까

게다가 공작 깃털이 한들 거릴 때마다 기분도 살랑살랑해질 것이다

불필요한 예의, 격식, 유행, 이런 거 말고,

사소한 소품의 빛깔, 디자인, 장식만으로도,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 드는 것들,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어린아이 같은 고집인 것이다

하지만,

그도 난쟁이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모자를 벗는다

난쟁이를 만나서도, 자기가 더 커보이고 싶어하는 머저리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모자를 벗어야 하는 것이다

키가 크다는 것이, 세상에서는 멋지고 우월하고, 찬사의 대상이 되고, 그러겠지만

그런 되먹지 않은 허영이나 편견 따위는 식탁에 올려 놓고 그냥 보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장작이 타오르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장작을 더 넣고, 더 따뜻해진 분위기에서

귀여운 고집쟁이는 난쟁이랑, 거위랑 같이 모자를 돈다,

저 고집쟁이가, 포오란 연기가 오를 것만 같은, 검게 빛나는 무시무시한 편견도 따위도 놀이에 끼워주는 아량을 보이는 걸까?

아마도 사실은 모자한테 놀이에 끼워주는 것처럼 가운데 있으라고 그러고는

셋이서 빙빙돌면서 모자를 놀리는 거겠지

빙빙 도는 놀이에서는 키가 크고 작고는, 부자이고 가난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

인사를 할 때도 안 벗었던 고집불통이

난쟁이를 만나서는 모자도 벗고, 거위도 끼워 주고, 빙빙 돌면서, 신났다

당연히, 오랜만에 격의 없는 친구를 만난 난쟁이도,

인간 친구를 사귀게 된 오리도

신이 났을 것이고,

너무도 신이난 그들 셋이서 언제까지 모자를 놀리면서 빙빙 돌고 놀지는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을 보고 있는 나도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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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사막>>에서, 책의 제목인 <바보 사막>에 대한 평가가 가장 높은 편이지만지만,

내가 <바보 사막>의 허무함을 이햐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삶을 한참 더살아야만 할 것 같다

누군가, 쉽게 <바보 사막>의 의미를 알려 준다면 좋겠다...그래서, 아래에 적어 놓는다, 물론 시인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은 마음도 포함해서 이다, 나에게 이렇게 멋지고 착한 시들을 읽게 해준 예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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