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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며칠 전 전철을 타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내 안에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아니 저 책을 지금에서야 읽는거야? 하는 수군거림이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마치 대학 강의실에서 산수책을 꺼내들고 덧셈 뺄셈 공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이 책은 어쩌면 이런 나의 마음의 결과일 것이다. 1년여 외국생활을 마치고 그동안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있던 나에게 ‘느낌표’라는 프로는 이런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시대를 대변하는 독서의 흐름과 사람들의 생각의 공통분모를 뽑아내기에 이만큼 좋은 프로가 있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혹 길거리에서 김용만씨를 만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원 없이 실어 나를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
‘가슴 속 깊은 울음을 참아내며 밤을 지새며 읽었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단숨에 읽어버렸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사람에게 있어야 할 도리와 정, 사랑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또 하나 희망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책 뒷장에 흘려 적은 나와 아내의 소감문이다.
그렇다, 오랜만에 밤을 새며 읽었다. 삼국지 이래로 이런 경험은 그리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책읽기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모처럼 재미에 빠져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쩌면 숙자와 숙희, 동준이와 동수의 삶이 어릴 적 나의 삶을 투사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명희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이 나에게도 아직 남아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재개발시대를 살았던 가난한 달동네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삶에 아무런 소망없이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살아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모습은 돈을 벌어오겠다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에게서 버려진 모습으로, 술주정꾼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 밑에서 신음하는 모습으로, 포학한 아버지에게서 매 맞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발견할 수 없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작가는 이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사랑을 발견한다. 영호라는 그리 똑똑하지도, 능력이 많지도 않은 한 청년을 통해, 명희라는 그리 헌신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한 선생님을 통해 이곳엔 희망의 꽃이 피어난다.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면서 아이들은 잃어버렸던 가족의 사랑과 함께함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봄을 맞이한다. 파란 민들레 새싹과 함께.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여전히 나의 친구들로 남아있다. 명희 선생님의 삶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