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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좌백.진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누군가는 무협소설이라 하면 화려한 장풍에 멋들어진 격검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기실 무협의 본질은 살상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건 상대를 해하거나 죽여 명예를 얻는 세계인 것이다. 좌백은 출세작 <대도오>부터 대표작 <혈기린 외전>에서도 무협소설의 본질, 혹은 당위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궁리한 작가인데, 이번 <애견무사와 고양이 눈>에서도 강호의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그에 따른 문제제기는 여전하다.
다만 이 글이 지난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개’다. 이 글을 쓴 최초의 요인이라고도 하는데, 여전히 비정한 강호의 풍경을 보여주되 개 한 마리가 종종 그까짓게 뭐냐는 듯 꼬리를 흔드는지 말을 하는지, 아무튼 강호의 비정함을 한순간은 잊게 만든다. 그의 필명처럼 원래부터 실소를 유발하는 데에도 탁월한 작가이긴 하지만, 서사적 차원에서 비정한 풍경을 가린 적은 내가 알기로 모든 작품을 통틀어 없었으니까.
사족이 길었다. 본편 이야기를 하자면 ‘애견무사’와 ‘폐허의 개들’은 옴니버스형 이야기 전개를 위한 훌륭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딘지 답답한 구석은 있어도 나쁘지 않은 성정에 필요할 때는 역할을 놓치지 않는 주인공, 그리고 무공이면 무공 도술이면 도술까지 수준급인 파트너, 게다가 강력하면서도 매혹적인 악역까지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쓰게 된 연유야 어쨌건 정말 탄탄한 정통 무협의 세계관의 구축된 것이다.
이 두 작품을 읽고 생각했다. 좌백은 강호의 셜록홈즈를 꿈꾸는가 하고. ‘미래를 위해’ 돈을 긁어모으는 도사와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신출내기 콤비는 셜록홈즈 이후로 꽤 포멀한 조합인데, 여기에 말하는 개 ‘초’가 더해져 기존의 식상함에 웃음을 더한다. 게다가 돈을 받고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추리물의 플롯이라, 이대로 장기연재를 해도 좋겠다 싶었다. 마치 <퇴마록> 국내, 세계편 느낌으로. 물론 좌백이 그럴 리 없지만.
피 묻은 칼끝이 흔들리고 누군가의 숨이 멎어야만 하는 곳이 강호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과 울음, 그러니 드라마가 있다. 이 콤비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가려진 강호의 드라마 한 편이 드러나고, 여기서 마냥 심각해지는 이야기가 되려 하면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 너털웃음을 짓게 한다. 그러니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비정한 강호의 한 줄기 유정을 찾아가는 추리물이라 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