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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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창비 인스타 에서 블라인드 서평 이벤트를 보게 되었다. 책 제목은 호수의 일이고 작가를 공개하지 않고 미리 서평단이 책을 읽오보는 이벤트였다. 그동안 읽었던 창비의 성장 소설을 죽 떠올려 보았다. 완득이를 시작으로 아몬드, 페인트, 알로하 나의 엄마들, 곁에 있다는 것 등, 말이 필요 없는 참 좋은 소설들이다. 이번에 창비에서 출간한 성장소설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2022년 시작하는 1월 성장 소설을 서점에 선보이는 작가는 누구일까? 그야말로 기대가 만발하여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클릭하고 신청했다. 며칠 뒤 블라인드 서평단 문자를 받았고 이틀 뒤 선물처럼 책을 만났다.

책 표지에 해시태그 되어 있던 ‘#청춘 #첫사랑 #성장 #치유가 눈에 들어왔다. 10대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말 외롭고 힘들 때 떠올리는 나의 청춘첫사랑’,40대가 된 지금도 앓고 있는 성장통그리고 항상 바라는 치유’, 마음에 와 닿고 벌써 위로 된다.

첫 장을 마주하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까지 하루도 안 걸렸다. 읽으면서 간간히 손글씨로 문장을 옮겨 적어 보았다. 리얼리티, 공감, 신선함, 내 유년 시절의 데자뷰, 작가의 특별한 표현 등이 느껴질 때 손글씨로 적게 되었다.

 

#청춘

열일곱 찐청춘 안에 있는 주인공 호정을 담은 문장은, 유년 시절의 내 마음을 아우르는, 그리고 현재 직장인 중학교 교실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는, 그리고 40대를 살아가는 번아웃 된 워킹맘의 마음을 만져준다. 해시태그 청춘을 달고 좋아요. 공감을 누르는 대신 손글씨로 필사했던 문장들.

33

교복을 입은 우리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복사본은 하나도 없다.


35

오고 말고는 아빠한테 달려있다. 그런데도 꼭 그런식으로,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76

그런데 그날은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플라스틱 뚜껑에 뚫린 구멍에서 따뜻한 기운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어쩐지 눈이 뜨거워졌다.

 

78

속에서 거슬리는 것들은 커피랑 같이 삼켜버리기로 했다.

 

94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경솔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10

어떤 질문은 그것만으로 상처가 된다. 가령, 할머니 댁에 놀러온 거니? 같은, 네가 바로 그 마리아 자매님 손녀구나? 같은.

 

#첫사랑

열 일곱 호정이 생애 가장 거대한 사랑이 될, 첫사랑 은기가 봄이 오듯 소리 없이 왔다. 그땐 모른다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하고 심지어 결혼을 할 정도로 사랑한 사람을 사랑한 크키와 무게가 있다면 십대 시절 첫 사랑이 가장 크고 무거울 것이라는 것을. 거대하다는 것을. 호정이와 은기가 공유한 모든 것이 너무 설레고 여쁘더라. 둘의 첫 사랑을 응원하며 적어 두었던 문장들.

91

손끝만 움직여도 공기가 물결이 되어 은기에게 전해질 것 같았다.

여기, 호정이가 있어, 라고

 

103

자전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 은기 이야기를, 내 앞에 있던 은기 이야기를, 내가 아는 은기 이야기를 더.

 

108

꼭 올거라 확신할 수 없는 친구의 자리를 맡아두는 일.

 

114

그러자 은기는 거리가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나까지 덩달아 웃고 말았다. 그게 뭐라고.

 

161

어두운 차창에 은기가 비쳤다. 나는 자세를 고쳐 등받이에 등을 기대 앉았다. 은기의 모습이 사각의 유리창에 온전히 담겼다. 은기도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은기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그 창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성장

성장하는 데 안 아픈 사람 없다. 성장통은 피해갈 수 없다. 호정이, 은기, 나래, 보람, 지후, 곽근이 너희는 열일곱 성장통 이 책을 읽은 나는 마흔 일곱 성장통 앓는 중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뭔가 덤덤해 지고 적응 되면 대충 성장했다고 하는 것 같다. 아픔을 덤덤하게 하는 문장들.

81

다 잊어야 괜찮아지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안 좋았던 일에 일일이 속상하고 불편해하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

 

131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210

인간은 어째서 모르면 좋은 것을 그냥 덮어 두지 못할까.

 

221

학교가 그렇게 싫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학교에 갔고, 야자 시간에 자리를 지켰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달리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231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인 채 안간힘을 쓰기나 하겠지. 이런 몰골로.

 

253

친구란 그런 거였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만큼 무엇을 아파하는지도 잘 아는 사이. 그러니까 치명적인 위험이 잠복해 있는 사이.

 

#치유

성장통을 겪으며 우린 결국 성장하지만, 치유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 겪은 일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트라우마, 가족, 친구 할 것 없이 사람들을 통해 받는 상처 누가 치유해주나? 난 이렇게 아픈데......아픈 마음을 고쳐 먹는 생각 전환, 다독임을 호수의 일에서 얻었고, 호정이도 은기도 어느 정도 보듬어 졌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나도 치유 받았음이 확실하다. 그래서 좋고 기쁘다.

260

하지만 그것들은 말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마음들의 이름을 몰랐다. 나는 그저 아팠다.

 

317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 진실은 있다.

 

327

좋은 소설은 이런거구나 빵 굽는 냄새처럼 실감이 난다. 보이지 않는 온기가 있다. 상대를 조금도 난처하게 하지 않는 위로다.

 

331

소년에게 돌아갈 곳이 있을까. 가정 폭력에 고통 받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도망칠 곳이 있을까.


343

내가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 내가 길을 건널 수 없는 이유다.

 

책 읽은 다음날 노트에 옮겨 놓은 문장을 다시 읽는데, 어떤 기대가 생겨났다. 블라인드가 해제되고 이 책의 완성본이 나오고 그 책을 다시 사서 읽는다면, 작가 에필로그가 꼭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 그 에필로그에 학교를 나간 이후 은기는 어떻게 지냈는지 작가님이 안부를 전해주면 좋겠다. 작가님이 에필로그에 은기의 안부를 전해 준다면, 호정이 마음도 좋아지고 내 마음 좋을 것 같다. 될 수 있으면 과거처럼 아프기보다 어떤 계기였든 호정이처럼 다시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더 나으려고 학교도 그만 뒀고, 강아지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치유된 은기의 안부를 기대해 본다. 호정이와 함께했던 그 예쁜 날들, 은행이 무르익고 눈부신 가을날 오후 같은 에필로그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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