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은 있다? 없다!

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그동안 종종 읽어왔지만, 이렇게 힘든 책은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참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놀라운 가속도의 소설이다. 이전에도 인생살이란게 외줄타기와 같아서 왼쪽, 오른쪽 어느쪽으로 잠시 한발이라도 헛디디면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저렇게 또 살아지는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의 주인공에겐 전혀 이렇게저렇게라는 것이 없이 달리면 달릴수록 가속도가 붙어 최악으로 치닫기만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쿠다 히데오의 문장력이 그것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그리고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물가는 오르고, 주가는 떨어지고, 범죄는 흉폭해지기만 하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읽으면서 공감과 응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주인공은 불황에다 주변의 민원에 시달리는 철공소 가와타니 신지로 사장과 성희롱하는 지점장에 변화없는 지겨운 현실을 매일 마주하는 여은행원 미도리,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오다 야쿠자에게 제대로 걸려 빚을 갚기 위해 은행 강도까지 해야하는 가즈야등 3명을 들 수 있겠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다루면서 차츰차츰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 그들의 일상 묘사가 역시 오쿠다 히데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어쩌면 이런 현실을 이렇게 자세하게 아는 걸까 하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일본의 서민들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특히나 기울어져가는 철공소를 살리기 위해 납품회사에 아부해야 하고,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항의를 해올 때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신지로 사장은 정말 현실의 소규모 업체를 경영하는 내 이웃의 현실이 아닐까 싶었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없다는 말처럼 정말 주민도 사장도 이해가 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게 있다. 그게 참 슬펐다.

 

.. 점점 최악으로 치달아 결국에 일어나는 은행강도 사건. 여기서 긴장된 신경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나중에는 '뭐 아무래도 좋다'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말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 다다르면 해탈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은 정말 이제 낭떠러지구나 하는 자리에까지 가게 되지만, 그래도 인생은 이어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인생은 이어진다. 언젠가 어디서 읽은 것처럼 현실은 상상보다 잔혹하지 않다. 지은 죄에는 물론 댓가를 치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주변에 남은 좋은 이들이 있고, 그렇게 또 인생은 이어진다는 그런 깨달음이 이 책이 주려는 메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악이라고 생각해도 그래도 남은 좋은 것이 있으니까 결국에 최악이란 것은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