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참을 수 없는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이 책의 저자인 정혜윤이 책속에서 만나는 이들의 명단이다. 실로 이 속에 나오는 이름 몇 개만으로도 충분히 책장에서 꺼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책을 완독한 지금 가장 크게 떠오르는 생각은 저자인 정혜윤 뿐만이 아니라 위에 나온 이들 모두가 참으로 대단한 독서가구나 하는 것이다. 글중에서 연이어 줄지어 나오는 책이름의 홍수는 내가 읽었던 책이건 읽지 않았던 책이건 모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1대1로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로 어쩌면 인생을 풀어내가는 저자도 참으로 대단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등나무줄기처럼 휘감긴 책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말 속에서 같은 책에서 같은 것을 느꼈다는 공감도 있었고, 나와 다른 것을 생각했구나 하는 부분도 있었다. 평소 책에 관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이 책 속에서 만난 이들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도 있고, 그 윗세대도, 아랫세대의 사람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탐독하던 책들과 그 책들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을 가만 읽고 있노라면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책을 만나기도 하고, 책만 읽다 야단맞기도 하고, 책을 읽는다는 행위 하나로 집안일에서 열외가 되기도 하고, 세상사에 거리를 두고 관조하기도 하고 뛰어들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책의 제목처럼 한 권의 책에서 그들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엔 수많은 책들이 받침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참으로 흥미로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 책의 뒷편에 보면 글속에 나온 책의 제목들이 쭉 열거되어 있다. 아마도 책을 완독한 사람이라면 나처럼 연필을 집어들고 제목옆에 자신이 읽은 책을 체크해 보고 수를 세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름대로 꽤 많은 수라는데서 뿌듯함을 느낄 사람도, 생각보다 너무 적은 수에 의기소침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또 다시 생각해보면 그 수가 사실 뭐가 중요하겠나 싶기도 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책중에 이 책 속에서 언급된 책의 수는 정말정말 아주 소수일테니 말이다. 세상엔 내가 읽은 책들보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남은 인생에 즐겁게 할 일이 더 생긴 것같아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