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이 책에 하고자 하는 얘기이다.
창조성을 부정하는 악마에게서 오히려 창조적인 악마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독창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며,
그랬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어찌 보면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역시 특별한 크리에이티브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 꼭 크리에이터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매력을 전달한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은 읽어내자면 한 번에 쭉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단한 책이다.
그러나 광고대행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내가 봤을 때도 이 책이 갖고 있는 의미는 한번 읽고마는
그런 책이라기 보다는 상당히 존재감이 있고 그리고 묵직한 얘기를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글은 쉽고, 의미의 전달 역시 매우 가벼이 전해지지만 한번쯤 머리 속을 한줄기 시원한 바람으로
불어낸 것같은 선연함 역시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책의 챕터 네번째, [관습의 악마를 무찌르는 방법]이라고 되어
있는 챕터에서 이 구절이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관습의 악마는 무엇보다 루틴을 사랑한다. 그는 익숙한 것을 가장 편안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크리에이티브 기획자로서의 나 역시 경계하고 끊임없이 내 자신이 이러한 범주 내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범주 안에 들어갈수록 내가 하는 일은 평범해지고 나의 인사이트 통찰력은 사라지고 오로지 관습과
함께 평범한 일상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챕터 6 비판의 악마를 무찌르는 방법]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낯선 사람이 읽는 것처럼 또는 더 나아가 내 적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작품을 읽어보라]
이 얘기는 우리가 얼마나 상대의 비평에 나약한가를 보여주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타당한 의견에
귀를 기울일수록 자신의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내 강의를 들어본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함께 일할 때 내가 편한 사람과 일을 하고 싶은가, 혹은 불편한 사람하고 일을 하고 싶은가?
역설적이지만 당신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불편한 사람과 있을 때가 아닌가라고 했었다.
익숙하거나 친한 이는 나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할 것은 거론하지 않지만, 사실 그러하게 되면
나의 크리에이티브는 자극받지 않고 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챕터를 읽으며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친구를 만난 것같은 반가움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챕터에서도 마지막은 이와 같이 끝을 맺고 있다.
타당한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자, 그러나 너무 자주 너무 심각하게 듣지는 말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가 창조적 영혼을 갉아먹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얼마나 유쾌한 끝맺음인지.
만약에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난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독창적인가
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러한 곤란하 시점에서 이 책을 떠올린다면 위안이 되리라.
이 책의 마지막을 보게 되면 저자가 책의 제목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있다.
창조적 악마와 그들을 죽이는 법이 이 책의 원제인데, 제목보다는 창조적 악마 이전에는 몰랐지만
당신이 원하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너무나 중요해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인 악마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임이 더 정확하다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말미에 쓰여져 있는 것처럼 당신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여정에 접어들 것을
권하고, 이 책은 그러한 길 안에서의 여정의 안내서가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이 책은 끝을 맺고 있다.
[창조적 악마를 만나게 되거든 부디 안부를 전해주기 바란다]라고.
오월의 비가 오는 날,
좋은 시간을 선물해 준 창조적인 악마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