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 할 말은 많지만 쓸 만한 말이 없는 어른들을 위한 숨은 어휘력 찾기
유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 하루 가지고 다녀야 할 물건이 하나 또 생겼다.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물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책은 보는 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써야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책이라기 보다는 늘상 가지고 다녀야 될 나의 소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싶다.

하루 한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는 글쓰기를 업으로 30 년간 매일 해온

저자 유선경님의 첫 필사 책이다.


필사란 단순히 그저 책을 배껴내거나로 써서 다시 한번 정리 한다는 그런 단순한

노동의 결과물이 아니다

필사는 바로 본인의 어휘력에 무한한 증식을 가져오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저자는 어휘력이 왜 필요할까 라는 질문에 스스로 살기 위해서란 말을 쓰고 있다.  

이 살기 위해서 라는 뜻이 무엇일까 어떤이는 저자가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므로

쓰는 것이 바로 살기 위한 것이다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언어로 단순히

말하는 것의 의미가 아닌, 자신을 표현해 내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이에 공감하면서도 조금은 또 다른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

살아 가는 모든 이들은 어떤 누구도 자신의 삶이 초라하거나 흔한 것이 아닌

자신만의 특별함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특별함을 기억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증거로서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일기를 생각해 보라. 그때는 그저 무엇무엇을 했다, 몇시에 밥을 먹었다와

같이 일상적인 것을 기록 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오히려 하기 싫은 기록을 정말

억지로 해낸 결과이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와 싸웠다라든지 엄마에게 야단 맞았던 얘기를 하게 되면

감정이 툭 튀어나온다  이런 화가난다, 좋았다라는 감정은 단순 글자가 아닌 감정으로

살아남아 몇십년쯤 지난 후 낡은 서류 뭉치 안에서 발견되었을 떄 오롯이 그때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바로 기억 속에서 저장 되어 있는 아주 어렸을 때 어휘력에 감정이 이입되어

그런 일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이가 차고 지식을 습득 하면서 사람들은 그러한 어휘력을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면 하찮게 여겨질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요즘 누가 어휘력을 중요시 여긴다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휘력이란 단어로 글을 쓸 수 있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글로서 마음속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러한 점에서 필사는 어휘력 향상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고 나 역시 그에 공감 한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하는 필사도 있다.

혹은 정말로 기록을 남기기 하는 필사도 있다.

하지만 필사의 가장 큰 의미는 내가 직접 씀으로써 수만은 작가의 어휘력을 받아 들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 시키고 공감 하면서 그를 통해서 마음에 스며드는 일이라고

나는 정의 하고 싶다

한글자 한글자 내려 쓰는 순간의 기억은 단순히 복사가 아닌 새로운 창작의 바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사실 필사에 도전해 본 적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좋은 기회가 되어 이 책 필사 루트를 받게 되었는데 첫 번째 필사가

미하엘 앤대의 소설 [모모]의 한 구절로 시작하게 된다.

너무나 반가웠다.

사실 글씨를 잘 못 쓰기 때문에 필사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기도 하였으나

첫번째 필사의 문구가 모모라니.

중학교를 들어갔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책 중에 하나가 이 책 모모였다.

당시에는 모모 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이 두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이 소설을 먼저

접했고 그래서 내 마음 속에 [모모]라는 단어는 나의 라임나무의 모모가 아닌

미하엘 엔데의 모모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 다시 말해서 지나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헤들을 지나 되돌아

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너는 너의 일생을 지나 되돌아 가는 거야

언젠가 네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던 둥근 은빛 성문에 닿을 때까지 말이지

거기서 너는 그문을 다시 나가게 되지]

40년도 넘게 전에 읽었던 구절이, 그 당시에는 그 정확한 의미를 몰라 갸웃거렷던

문장이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는 이 순간에 너무나 절절이 와닫는다.


못쓰는 서투를 글씨임에도 힘이 실리고 마음 속에서는 새로운 감정이 덧새겨진다.

그래 이게 필사구나.

마음이 담겨서 쓰여져 나가는 글에 글씨체가 뭔 대수란 말인가.

어린 시절 그 추웠던 밤의 기억이 오롯이 살아나며 차분히 보내는 이순간이 행복이다.

이 책은 특징이 어휘와 친해지기, 어휘력을 기르는 비결, 어휘가 주는 힘의 3개의

챕터로 되어 있으며 시와 소설, 수필 등에서 발췌한 그 작가의 진심들이 가득 차 있다.

그저 한권의 책을 필사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짧은 구절을 통해서

여러 작가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어딘가에 앉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 가방 안에서 늘 함께

하며 시간이 나거나 혹은 마음이 불안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간에 위대한

작가들과의 만남을 가질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가지고 다녀야 될 물건이 늘어나 어깨는 무거워 지겠지만 그래도 내 만년필이

좀 더 소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서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