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분석 1 - 성격분석기법과 성격형성 성격분석 1
빌헬름 라이히 지음, 윤수종 옮김 / 문학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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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기록지. 1930년 시대, 프로이트 제자로서 라이히. 그가 프로이트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지점들에 대한 통찰이 있음. 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대목을 보면 왜 아이가 저러는지 깨닫게 됨.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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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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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근사한 문구로 지적허영심 충족에 적합한 책이며 엄마를부탁해 보다 통속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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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yhr 2019-06-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느끼는게 이렇게 다르구나...내 인생을 바꾼책인데 ㅎㅎ
 
무서운, 멋진 신세계 - 새로운 세기의 풍경들
김병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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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멋진 신세계> -문학과 지성. 김병익(1999)

강만준의 일인 저널룩 <인물과 사상>에서는 문학과 지성의 김병익 선생에 대해 '지나친 겸손과 직무유기'에 관하여 비판했다. 문학과 지성이 보여주는 형태는 '권력'에 다름아니고, 그것은 매우 교묘한 형태의 패거리 주의라는 강준만의 비판은 심한면도 있지만, 수긍한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저 멀찍이서 '어머니 고만해유...'라는 식의 시누이의 말리는 짓이 더 밉듯이 김병익 선생은 솔직을 가장해서 마땅히 지식인으로서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시대의 '흑기사'의 똥침이다.

[해야할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패거리주의, 학연주의, 지역차별 주의에 대해서 문학과 지성이란 팀이 비판은 커녕, 오히려 스스로 자신들이 그 한몫이 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지성'을 논하고 겸손을 떨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강준만의 비판이었다.

김병익씨는 핸드폰과 노트북이 두려운 세대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한다. 단순히 회의만 하고 불평만 늘어놓으면 좋건만,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혹시 보수주의가 아닌가 자문하고 반성한다. 강준만 선생의 비판의 핵심은 아마도 '자기반성', 닫힌 자기반성에 있다고 느껴졌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어떤것인가? 김병익씨는 자본-과학복합체의 사회가 될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는 물론 그만의 독특한 주장이 아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원용한 그는 돌리양 복제기술을 바라보면서 유전공학이 초고속도로 발전하여 인간복제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예상하고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금, 브레이크 없는 자본의 팽창과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도 공포를 드러낸다. 문제는 이런 자본-과학의 복합체 사회에서 문자매체로 버텨나가는 '고급문화'인 문학이 살아남을것 같지 않다는 것이 핵심인듯 한데, 이는 문학과 지성의 판매고가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무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러나, 김병익선생은 앞으로의 문학은 아마도 언더그라운드에 들어가 버리지 않겠는가 하면서도 그 생명력이 진정성(authenthety)에서 찾아갈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그 희망은 즉시 언더그라운드 마저도 '자본'에 의해 포섭되는 현상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그의 글은 세기말 우울을 극도로 과장하고 있는듯 느껴졌다. 도대체 세기말이라서 어떻단 말인가? 이미 김병익선생이 지적하는 '현실'과 '미래'는 세기말이 아니더라도 도래했다. 자연적 시간의 척도로 '우울'운운하는 것은 그가 싫어하는 '히트상품화된 문학'처럼 상품주의에 영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병익선생의 글에서 가장 '멋진' 단어하나가 [노욕]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이를 끊임없이 경계한다. 이 작은 에세이집을 읽고 강준만선생의 평때문에 사시눈을 했으면서도 '과연 이분의 연배쯤 되어서 이렇게 젊을 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해본다. 노욕을 스스로 경계하는 아름다운 분....

그 연배가 겪어온 여러가지 사건들과 환경을 비추어 볼때, 젊은이들의 감성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그분의 태도는 찬사를 받아야 할것이다. 아버지 연배보다 훨씬 더 높은 분인데도 상당히 발빠르게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이분법해서 후자를 영위하고 전자를 비웃으며 살았던 자신의 세대를 반성하는 그분과는 이야기가 통할듯 하다. 얼마나 행복한가? 이토록 이야기가 통할 분을 스승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물론, 강준만 선생의 '비판'이 이러한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김병익 선생이 언젠가 강준만선생의 호된 비판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을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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