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분석 2 - 정신분석에서 오르곤 생체신체학으로 성격분석 2
빌헬름 라이히 지음, 윤수종 옮김 / 문학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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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그런데 어느 날 업자가 오고/ 웃통 벗은 인부들이 몰려와/ 자네가 애써 그린 청사진에/ 침이 고이도록 욕설과 악담을 해대더니/ 팽개치면서 이렇게 말했네/ 돌대가리 새끼들 종이집이나 지었군/그리고 나서 그들은 설계도 없는 집을/ 멋지게 지어놓더군/ 놀란 내게 그들이 말하더군/세상엔 자네 같은 꾼들이 참 많다더군

 

- 백무산, <종이집>, 만국의 노동자여(1988)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 책의 제목은 "성격분석"입니다. 1933년부터 쓰기 시작해 1949년까지 쓰여진 글입니다. 자기 돈 들여서 출간한 책입니다. 책을 쓴 사람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직업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의사면서, '운동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체게바라 같이 직접 전쟁터로 갈 기회는 없었습니다. 히틀러 시대, 유대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으로 망명하는 것 외는 없었지요. 

 

체게바라와는 다른 면에서 그는 철저히 싸웁니다.  파시즘이 히틀러란 독재자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와 더불어 가족구조에 기인하는 대중의 문제임을 용감하게 파헤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입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란 책은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책입니다. 

 

그런데, 거의 10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발간된 느낌을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위에 언급된 시는 참 오래된 시입니다. 백무산의 첫 시집에 나온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데요. 노동자로서, 소위 '이론가'들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했던 시입니다. 머리만 클 뿐 현장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그림이나 그려대던 '이론' 말이죠. 지식인들, 특히 사회과학에서 그럴 듯 한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끼여 맞춰 논문도 쓰고, 학위도 얻고, 책도 내고, 명성도 얻지요. 그런 '그림'들이 우리 삶을 착취하는 행정용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그림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삶의 통찰들이 '학회'를 통해 정형화되고 '종이집' 그림이 되어 가고 있을 때, 진료실에서 씨름 해가며, 환자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진료기록과 함께 발견한 통찰들이 바로 이책입니다. '종이집'을 그려가던 프로이트 제자들-심지어 프로이트까지- 에 대해 그는 웃통을 벌거벗고 엄청난 노동(임상, 환자 진료)을 통해 삶의 진실들을 파헤쳐나갑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뭐지? 정신분석학 진료기록인가, 아니면, 인간성격구조에 대한 이론적 논문인가 싶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이 책은 정말 전문가들이 읽을 수 있는 용어들로 가득합니다. 정신분석의 용어들-전이, 꿈, 이인성, 분석의 형식과 내용, 등등은 이 책이 '대중'을 위해 쓰여진 것이라기 보다 한 과학자이자 운동권 투사가 발견한 것들을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 옮겨놓은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권과 2권의 차이는 빌헬름 라이히가 프로이트 제자에서 탈피해 자기만의 고유한 개념어를 사용해 발견을 정리해놓은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1권의 '라이히'는 인정하지만, 2권에 나오는 오르가즘을 강조하는 라이히는 미친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읽기 힘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이 책을 마치 유행하는 자기개발서처럼 읽으면 재미 없습니다. 이 책은 마치 아주 긴 장편 소설이 있는데 그 안에 엄청나게 야한 장면이 있는, 그런 기대감으로 읽어야 합니다.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1학년부터 6학년 사이에서 가장 대여율이 높은 책들이 대체적으로 그렇더군요. 매우 에로틱한 장면이 숨겨져 있는 도서들의 경우, 소문이 퍼져 책을 대여하려면 며칠이나 기달려야 한다더군요. 아주 조용히.

 

이책도 그렇습니다. 혹시 자기비하에 시달리십니까? 미소로 자기를 감추고 자기 학대에 지쳐 있나요?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든가요?  첫 만남부터 진료종료까지, 신경증 환자의 모습을 훔쳐 보시렵니까? 이 책의 1편, 5부 <피학성격>은 너무나 노골적인 장면들이 있습니다. 진료기록을 훔쳐보다가 '내 이야기네' 하다가, 혹은 내가 전혀 다가갈 수 없는 어떤 어린이의 모습이 겹쳐져 소름끼칩니다.

 

2편에 있는 3장 <정신균열>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입니다. 7여년간 '정신분열병'에 걸린 여인의 치료기입니다. 첫번째 만남....부터 마흔번째 만남...까지 정신분열증 환자는 좋아졌다가, 발작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다시 퇴원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그 병의 근원들에 대해 철저히 해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악마'가 진짜 어떤 것인지, 그 악마의 기능이 무엇인지, 조현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부숩니다.

 

 

...

사회적 사실에 관한 진리를 얻고자 할 때 우리는 둘 다 '미쳤던' 입센이나 니체를 연구하지, 일부 잘 적응한 외교관의 글이나 공산당대회의 결의안을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잘 적응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반 고흐의 놀라운 그림에서 오르곤에너지의 물결치는 특성과 푸르름을 발견한다...

 

(2권 135쪽)

 

 

...

역자에 대해 말씀 드려야겠네요. 내 선생님입니다. 내가 이 책에 관해 소문을 들은 것이 거의 15년이 넘는것 같아요. 농촌사회학을 전공한 선생님은 '애인'들에 대해 논문을 쓰거나, 연구발표같은걸 안해요. 그런데 얼마전 우쓰다 다츠루의 이야기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기 스승(레비나스)에 대해서, 일부 조각만 가지고 비교를 하거나 하는 따위는 할 수 없다고. 선생님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네그리를 소개했고, 다시 '가타리'로 갔다가 '라이히'라는 애인을 묵묵히 소개하셔왔습니다. 내가 선생님 덕에 'Character Analysis'라는 책을 전남대 도서관에서 만났었는데, 전남대 도서관에는 <파시즘의 대중심리> 원서가 없었어요. 그게 이상한 일이잖아요? 15년전에 라이히는, 이미 여러 불란서 학자들에 의해 "프로이트"주의와 맑시즘의 결합, 접합 어쩌고 하면서 '사망선고'를 받았거든요. 그래도 선생님은 묵묵히 책들을 번역하셔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살해>와 같은 책들. 그 책으로 인해 성직자들의 사랑과 연락을 받으셨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을 들었습니다.

 

"언제 나와요? 성격분석은?"

 

그러면 "곧 나와요" 하셨던 것 같습니다. 독일어와 영어책을 가지고 밤마다 번역'노동'(애무?)을 하시는 선생님. 이 책은 대학원 수업시간에 줄을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모르면 그냥 넘어갔습니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전문용어를 알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대목에 이르면 가슴이 짜르르 하면서 미칠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가지 에피소드를 말씀 드리면, 실제 선생님 제자 중에 한분이 조현병 경험을 수업시간에 와서 나누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교재에 있는 활자들이 살아 펄펄 움직였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분은 현재 매우 건강하시며, 훌륭히 직장생활을 하십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때 선생님이 병문안 와주셨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런 따뜻한 면이 있으셨나? 잠깐 의아했지만, 가장 어두운 '악'마저도 배제하지 않는 라이히를 애인으로 둔 우리 선생님이 가끔은 플로톤 '향연'에 나오는 소크라테스 같습니다.

 

 

우울증 모드에 빠져 어두운 우물에 갇혀 있던 엊그제 선생님의 카톡이 새벽에 와써요. 50대인 내가 직장생활을 더 이상 못할 것 같아 자기학대와 착취, 혐오감에 빠져 있었던 밤이었습니다. 새벽 3시. "학과실에 와서 책 찾아가요. 드디어 나왔어요" 라고 하십니다. "아직 안주무세요?" 라고 물었더니, "자다 깨다 하면서 가타리 책 손보고 있어요." 라고 하십니다. 

 

향연이란 책을 보면, 밤새 술을 퍼마시며, "에로스"가 뭐냐고 떠들어대다가 다들 잡니다. 그런데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유일하게 새벽까지 남아 멀쩡하게 일어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마치 소크라테스 같으시네요."  에로스가 넘친 우리 선생님의 이 노동의 역작은 그런데, 한겨레를 비롯해 어느 곳도 신간소개를 해주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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