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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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이 떠오른다. 울프가 의미하던 공간과 전경린의 집은 같은 의미일까?
원래 이 책은 '엄마의 집' 이라는 제목으로 2007년에 출간되었던 소설이고 18년만에 개정판으로 나왔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고 그 변화에 대한 인식은 제목에서 나타났다.
그 세월만큼이나 독자들의 생각도 변해서 같은 소설을 읽어도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엄마의 집' 이 아닌 '자기만의 집' 에 의미가 더 부여되는 이유이다.

어릴 적, 딸은 엄마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아빠가 외도를 하고 엄마가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순간에도 연약함을 무기로 한 자식에게 엄마는 여자이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저 엄마여야만 했다.
그리고 혼자 설 나이가 되어서야 보인다. 엄마이기 이전에 그녀도 꿈꾸던 소녀였고, 숨 쉬고 싶은 여인이었음을.

대학때는 민주화를 외치고 노동운동을 하며 만인을 위한다는 착각속에서 아빠라는 사람은 정작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느라 생계는 어려웠고 엄마와 딸은 늘 소외되었다. 그의 세상에는 자기 자신과 그가 꿈꾸는 이상향만 있을 뿐이다.
허상을 꿈꾸는 남자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돈다. 그녀들은 언제고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야하는 불안을 품고 산다.

낭만의 시대는 가고 현실의 시대,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딸의 눈에는 엄마의 인생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결혼이라는 제도도 좋아보이지 않는다. 가정이라는 틀에서 꿈꾸고 싶은 충만한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세상의 수많은 딸들의 소리없는 외침이다.
가족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 순간 사랑은 쇠 사슬이 되어 한 인간을 옭아 메더니 급기야는 탈출할 의지마저 꺽어버린다. 그렇게 조금씩 꿈은 사라지고 타락해버렸다.

엄마는 유일하게 '엄마의 집' 에서 숨을 쉬었다. 사회젓 잣대로 그 공간이 어떻게 보이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공간이나마 있어서 살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 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그림은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던 시절을 의미한다. 그래서 엄마는 '자기만의 집' 이 필요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거야"
나 하나로 꽉 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마치 배터리처럼 가득 충전될 수 있다. '자기만의 집' 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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