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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 - 어디서나 달리는 16년차 동네 러너의 취미와 놀이가 되는 쓸모있는 달리기
박태외 지음 / 더블:엔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돌이켜 보면 저는 딱 왕따를 당하기 좋은 집안 환경이었습니다. 다행히 왕
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순하기도 했지만 잘하는 것이 하나 있었던 덕분입니다. 그것은 운동이었습니다. 거기서 자신감이 나왔습니다.” 달리는 막시, 박태외 작가가 말했다.
집안 환경이 왕따를 당하는 조건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여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도 스스럼없이 참석하는 자신만만한 인간이고 바람직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가정에 충실하고 자신을 단련하고 자신의 영혼에 양식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선량한 주인이다. 독서를 과하게 한다. 그의 지적 관심이 어느 깊이까지 확장되는지 지켜 보고 싶다.
박태외 작가는 새벽마다 달리는 ‘러너’다. 그렇다고 조용필의 노래 제목처럼 ‘고독한 러너’는 아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활력, 글의 영감을 얻었지만 무엇보다 인관 관계의 확장은 덤이었다. 혼자 달리고, 친구들과 달리고, 여행을 가서도 달리기는 빠지지 않는다.
“나는 달리는 사람이다. 하루에 짧게는 5km, 길게는 20km도 달린다.그렇다고 매일 달리는 건 아니지만 달리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산다. 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건강하면 이로운 수만 가지 이유가 있지만 , 내가 건강해야 남을 배려할 여우가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남을 배려할 여유가 달리기를 하며 내 몸에 묻은 먼지만큼도 없다.”
이런 그의 글을 읽고,
고골리의 외투를 생각했다. 겨울이면 추위가 뼈에 사무치는 러시아의 하급관리는 적은 월급을 모아 꿈처럼 외투를 장만했다. 목적이 있는 삶은 규모가 서는 법이다. 그의 목적은 외투였다. 꿈을 향한 절약은 때로 감미롭다. 그렇게 손에 넣은 외투를 입은 채로 강도에게 빼앗겼다. 경찰서로 찾아가 강도를 찾아달라 간청해봐도 경찰이 신경이나 쓸 일인가. 그는 애통하다 못해 앓다가 죽었다.
하급관리에게 외투는 어떤 존재였나? 외투는 그의 고단한 삶의 목표이자 중심이었다. 외투를 강탈당한 삶은 목표와 중심을 상실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외투가 아닌 목표와 삶의 중심을 잃은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꿈을 잃은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가 박태외에게 달리기는 고골리의 ‘외투’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는 하급관리가 아니다.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니 삶이 고단하지도 않다. 그는 올해 봄까지 어엿한 공기업의 노조위원장이었다. 달리기는 박태외 작가의 외투인 것이다. 그의 삶의 중심축을 세우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의지에 심지를 돋우어 주는 활력소다.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마라톤을 향한 그의 집념은 집안 대대로 이어지던 ‘단명’을 이제 극복하고도 남았다. 그의 꿈은 세계로 향해 있다. 그의 성장이 달리기와 함께 왔다는 사실을, 독자는 그와 함께 마음으로 달리며 알게 된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 보여도 그의 마음에 무언가 차오르고, 느끼고, 깨달았다면 한 걸음이라도 위대한 성장인 것이다.
코로나가 정복되고 그가 소원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출발점에 선 그를 보고 싶다. 그리고, 그의 감회와 감성에 젖은 글을 읽고 싶다. 하루키보다 낫다는 그의 달리기를 책으로 함께 한 나는, 마음은 함께 달렸으나 현실에 얽매인 몸이다. 주말이면 달리기 구실을 만들어 전국의 땅을 밟는 그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