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국가의 전망 (양장)
김윤태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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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로서의 복지이다. 이것은 복지지출을 경제에 부담이 되는 사회지출이 아니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회투자로 보는 관점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복지가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신우파의 비판에 직면하여 기존의 복지국가를 수정한 것이 사회투자국가이다. 현대사회는 전통적인 구사회위험(실직, 질병, 노령, 장애 , 사망, 빈곤 등)에 더하여 지식기반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신사회위험(가족해체로 인한 돌봄노동 위기, 기술발전에 따른 작업 불안정)에 노출되어 있다. 이제 평생직장은 옛말이 되었고 누구에게나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위험이 상존한다. 예전과 달리 맞벌이 가정과 한부모 가정이 늘어났고 노인 돌봄 서비스 필요성도 증대되었다. 과거와 같은 남성 가장 중심의 소득보전형 복지로는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이제 복지는 질병이나 실업 등에 대처하는 단순한 보험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투자국가의 요지이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복지정책을 바꿔가고 있다. 클린턴 정부의 노동연계복지, 블레어 정부의 일을 향한 복지등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각 정부에서 새로운 복지정책을 얼마나 시행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의 4대 보험 도입 이후 노무현 정부는 재정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구태의연한 토건국가 담론이 복지국가 담론을 압도해 버려 복지가 오히려 퇴행했기 때문이다.

유럽, 영미권과 한국은 매우 다른 역사적 배경과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럽, 그 중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20세기 전반기를 거쳐오면서 강력한 노동조합, 사회민주당 통치, 비교적 낮은 소득불평등 정도, 초당파적 복지 지지, 높은 조세부담률(개인, 기업 모두)에 대한 국민적 합의 등이 있었다. 우려와 달리 지난 1980, 90년대에  이들 국가들에서는 다른 유럽국가들이나 영미권 국가들에 비해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증가율, 실질임금 상승률이 높게 더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복지가 사회적 합의로 도출되기보다는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국가재정이 취약한 것도 문제이다.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약 20%이고, 복지재정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각각 약 50%, 59%이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국민이 낸 직접세 총액보다 민간 생명보험사에 지불한 보험료 총액이 더 많다. (한국의 복지재정에 관한 비판적인 분석은 오건호의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리뷰 보기: 진보의 눈으로 국가재정 들여다보기)

유럽에서 사회투자는 주로 아동이나 청소년, 한부모 가정에 집중된다. 전통적인 복지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능력을 주는(enabling) 복지가 사회투자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소외된 계층에 대한 사회투자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회투자가 가장 소외된 계층에게선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하자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는 사회투자와 더불어 교육과 의료 등에서 보편적 복지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지만 그 보장성이 너무 낮고 영리병원이 거의 없다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병원이 영리병원이다.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병원의 공공성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복지의 양 자체를 크게 늘려야 한다. OECD 최하위 수준의 복지재정으로는 복지를 논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높일 필요가 있다. 부유세를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은 2008-2010년 고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와 인문정보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콜로키엄에서 발표한 각기 다른 저자들이 쓴 11편의 논문을 모은 것인데, 사회복지학뿐 아니라 의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교수들의 논문도 실었다. 핵심이 되는 사회투자담론에 관한 글 외에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 ‘워킹푸어working poor’의 자산형성을 도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 복지 발전과 관련하여 위임민주주의가 지닌 의의와 한계를 설명한 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의 활성화를 위한 복지동맹을 제안한 글 등은 흥미롭다.

각기 다른 저자들이 썼기 때문에 문체, 분석력과 분석 수준이 다르다. 어떤 글은 다소 산만하고, 어떤 글은 중언부언하며, 또 어떤 글은 개조식(個條式)에 가깝다. 매우 구체적인 소재와 대안을 이야기하는 글도 있고, 다소 이론적인 분석이 부각되는 글도 있다. 글 자체로는 저자마다 정치적 지향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복지 강화를 이야기하면서 보수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마지막 장에서 설명하듯이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아주 진보적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복지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 수준의 복지를 이루려면 단순히 정책을 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복지를 필요로하는 계급, 계층과 집단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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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시의성 때문에 급하게 번역, 출간해서인지 오타 및 오역이 종종 보인다.

pp. 14-15 목차를 보면 점령 풍경 10’ 다음부터는 실제로 점령 풍경이 아닌데도 점령 풍경 01’이라고 소제목이 잘못 붙은 게 몇 개 있다.

p. 17 중간. 점거하는 하는 점거하는

p. 24 4. 부룩필드사 브룩필드사

p. 45 중간. 한 통의 이메일 한 통을 이메일 한 통을

p. 45 아래. 생각건대 생각컨대

p. 127 레더드 레너드

p. 139 돈은말이 너무 많다. 점령하라 돈이 좌우하는 게너무 많다. 점령하라 (“Money talks… / Too Much / Occupy.”라고 피켓에 세 줄로 쓰인 말을 번역한 것인데, 관용적으로 많이 쓰이는 “Money talks” (돈이면 다 된다)에 시위자가 “too much”를 붙인 것이다. “talk”을 그대로 번역하기보다는 관용적 표현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p. 165 버라이존 버라이즌.

p. 211 경찰이 사용하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경찰이 사용하는 것이다

p. 212 <정복할 수 없는 세계 권력, 비폭력, 민중의 의지> → <정복할 수 없는 세계 민중의 힘, 비폭력, 의지> (“nonviolence”인데 역자가 ‘non’ 부분을 놓쳤고, ‘of the People’‘Power, Nonviolence, and the Will’ 모두를 수식해야 하는데 역자는 ‘Will’만 수식하는 것으로 오역했다.)

p. 219 나는 경찰을 시위대로부터 방어하고 있는 한 흑인 남성을 보고 있었다 내 눈앞에는 한 무정부주의자가 경찰을 시위대로부터 방어하고 있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10에 설명된 대로 a black man은 무정부주의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역자는 이렇게번역한 뒤 각주에서 저렇게도 번역될 수 있다고 토를 달기보다는 어느 한 쪽으로 번역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원문은http://energybulletin.net/stories/2011-11-12/throwing-out-master%E2%80%99s-tools-and-building-better-house에서 볼 수 있다.)

p. 220 두 명의 가장 유명한 좌익 폭력주의자 → (역자는 각주에서 이 둘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내가 보기엔 프루동과 바쿠닌 같다. 아무튼 역자는 확실하지 않은 것을 두고 난 잘 모르겠소.’ 하고 각주까지 달면서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p. 267 보석으로 풀러난 보석으로 풀려난

p. 272부러졌다는 것을 낙담했다는 것을 (“broken”을 번역한 것 같은데, 바로 앞에 마음에 상처를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의 원문은 “heart is broken”인 듯하다.)

p. 311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감당이 안 돼. 점령하라 → (139쪽과 똑같은 표현을 역자가 이번에는 이렇게 번역했다. “Money talks.”라는 관용적 표현을 몰라서 생긴 오역이다. “Money talks.”돈이 최고다혹은 돈이 권력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돈이면 다 되는 세상까지는 번역이 나쁘지 않다. 문제는 “too much”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too much Money talks와 연결된 것이다. 직역하면 돈이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관용적 표현을 응용한 것이므로 돈이 지나치게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는 뜻이 되도록 번역해야 옳다.)

p. 315 슬라보예 지젝가 슬라보예 지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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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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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참관기에 가깝다. 실제 점령 운동 참가자들이 쓴 글이기 때문에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풍경과 실질적인 쟁점들이 나온다. 예컨대 공개총회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필요에 따라 소규모 작업그룹을 만들어가는 모습들,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생생한 광경들이 그려진다. 또한 점령지를 예전부터 점령하고 있던 노숙자들과의 관계 문제, 타악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구기도 하지만 회의를 방해하는 드럼 서클 문제, 무정부주의 성향의 과격파 젊은이들 문제 등이 쟁점으로 묘사된다.

책의 구성이 흥미로운 건 참관기 사이사이 다소 개념적, 이론적인 글들이 채워져있다는 점이다. 참관기에서 제기하는 어떤 문제점은 다음 챕터에 실린 다소 이론적인 글에서 설명된다. 참관기만으로 채워졌더라면 다소 산만하고 감상 위주로 제한될 수 있었을 텐데 이론적 글들이 이 점을 보완하고 책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참관기 중간의 이론적인 글들은 대개 <n+1> 편집진들이 썼다. 책날개에 저명한 사회비평 잡지라고만 소개되어 있어서 대체 어떤 잡지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책 말미에 가서야 각주에 <n+1> <월가 점령 가제트>의 모() 잡지라고 소개되어 있다다시 정리하면 이 책의 편집자들은 월가 점령 시위 현장을 처음부터 소개해오던 <n+1> 편집진이라는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인데, 시애틀, 애틀랜타, 뉴욕의 점령 운동 참관기의 상당 부분을 쓴 이들은 자매지간이다. 아마도 마흔은 넘은 걸로 추정되는데, 멀리 떨어진 세 지역에서 나이도 적지 않은 자매들이(게다가 한 명은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같은 꿈을 품고 점령 운동에 참가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세 자매의 참관기와 <n+1> 편집진들의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에 글쓴이들은 샘플링에서 대표성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일관되게 한 가지 성향을 보여준다. 예컨대 무정부주의와 폭력주의에 대해 일관성 있게 반대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일기를 기록한 참가자의 글에도, 편집자들의 이론적 글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 책은 월가 점령 시위에 관한 포괄적인안내서라고 할 수는 없다. 편집자들의 정치적 편향이 드러나 있으므로 독자들은 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크게 보아 세상에 비정치적인 글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적어도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포괄하여 소개하려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Occupy Wall Street는 자발적 운동이다. 자발적 운동은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의의가 있겠으나 이 책의 어느 글에서도 소개하듯이 사회운동에서 자발성과 무형식을 지향했을 때 나타나는 무구조의 횡포(the tyranny of structurelessness, pp. 79-82 코프먼의 글 참조)에도 주의해야 한다. 혹은 그 반대로 무구조를 지나치게 구조화하려는 시도 또한 운동의 장점이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볼셰비즘은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혁명을 중단시켜버린 장애물이기도 했다. 지도부의 상상력이 민중의 혁명적 역량을 구속해버릴 때 혁명은 정체되고 지도부의 아집만 남는다. 최근 벌어지는 통합진보당 사태도 지도부를 사유화하려는 NL의 가부장제적 발상 때문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NL은 진보보다는 수구와 더 친화력이 있는 것 같다.

점령 운동에서도 정체불명의 지도부의 주도권이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뉴욕 주코티공원 점령자들은 주로 공개총회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지만 점령자 숫자가 늘면서 소수가 장막 뒤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단이나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이것을 관리할 지도부가 생겨나는 것은 필연이다. 운동 참가자들의 생각, 문제 의식, 참여 정도, 목적, 정치적 신념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운동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규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도부는 운동 참가자들의 상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점령 운동의 의의는 무엇인가? 가장 낮게 평가한다 해도 “1퍼센트 대 99퍼센트그리고 점령이라는 어젠다 혹은 프레임을 세웠다는 점은 큰 의의이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점령 운동이 일어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가 부를 (사악한 방식으로)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버릴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점령 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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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점령하라 수정 할 부분 (오타 및 오역)
    from Rhizomatous Reading 2013-05-08 08:29 
    시의성 때문에 급하게 번역, 출간해서인지 오타 및 오역이 종종 보인다.pp. 14-15 목차를 보면 ‘점령 풍경 10’ 다음부터는 실제로 점령 풍경이 아닌데도 ‘점령 풍경 01’이라고 소제목이 잘못 붙은 게 몇 개 있다. p. 17 중간. 점거하는 하는 → 점거하는p. 24 주4. 부룩필드사 → 브룩필드사p. 45 중간. 한 통의 이메일 한 통을 → 이메일 한 통을p. 45 아래. 생각건대 → 생각컨대 p. 127 레더드 → 레너드p. 139 돈은… 말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 왜 콩고에서 벌어진 분쟁이 우리 휴대폰 가격을 더 싸게 만드는 걸까?
카를-알브레히트 이멜 지음, 클라우스 트렌클레 그래픽, 서정일 옮김 / 현실문화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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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실 사회주의 몰락 후 1992년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하나의 지구를 위한 전지구적인 협력을 가져올 줄 알았다. 그러나 1995 WTO가 출범하면서 자유무역이라는 주제가 세계화와 관련하여 다른 모든 선한 의도를 압도해버렸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된 것이다.

고삐 풀린 자본의 폭주 속에 세계의 불평등은 훨씬 더 심해졌다. 최빈국과 선진국의 일인당 GDP 1970 1:19에서 이 책이 쓰여질 당시 1:96으로 벌어졌다. 지구화된 세계경제에서 선진국과 대자본은 마치 무협소설의 고수가 흡성대법을 쓰듯이 가난한 나라의 자원을 빨아먹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비만병으로 죽어갈 때 빈국에서는 기아로 죽어간다. 환경은 닥치는 대로 파괴된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지금 세대 대자본의 탐욕의 짐은 다음 세대에서는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것이다. 아니, 선진국과 있는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짐을 빈국과 없는 자들에게 전가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세대가 짊어질 총체적인 고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세계화는 점점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이 책은 저자가 1996년부터 10여 년간 세계화와 개발정책에 관련된 자료를 비판적으로 정리해서 각 주제별로 짧은 설명과 압축적인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과 빈국의 생활수준 격차에 대한 통계가 주를 이룬다. 소득, 위생, 건강, 식량, 교육 등에서 격차를 비교하며, 세계화로 인한 환경, 전쟁, 인권 등의 문제도 다룬다. 14 80여 편의 글로 구성된 책의 각 장은 한글판 기준으로 2페이지 정도의 설명과 1페이지의 그래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픽은 매우 공을 들인 데다가 컬러로 되어 있어서 책 내용의 전달력을 높여 준다. 그리고 각 부의 맨 앞에는 4페이지 정도의 설명글이 다시 제시된다. 이 설명글만으로도 꽤 유용하다. 세계화의 현상과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최근들어 세계화의 폐단에 대해 점점 많은 사실이 알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계화가 무엇이, 왜 문제인지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바로 이 책에 압축되어 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수많은 통계자료와 친절한 그래픽으로 설명된 이 책을 통해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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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류샤오보 지음, 김지은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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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공산주의가 있는가?

중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싸구려 제품을 만드는 나라, 각종 짝퉁과 가짜 제품이 판치는 나라이다. 신문에 나오는 중국 관련 기사는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한때 서구 지성의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68 혁명의 이론적 토대였던 마오이즘의 나라 중국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중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던 류샤오보는 톈안먼민주화운동 이후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수차례 투옥과 출옥을 거듭했고, 현재도 투옥중이다. 그는 중국의 인권운동을 주도한 공로로 201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류샤오보는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 대외관계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류샤오보는 요즘 중국 젊은이들이 물질주의, 기회주의, 이기주의, 맹목적 애국주의에 빠져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다. 모두가 중국공산당이 통치의 편의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퍼뜨린 가치관이다. 그런데 우스운 게 물질주의, 기회주의, 이기주의,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 애국주의마저도 공산당과는 친화력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 한국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아닌가? 저자는 이러한 중국인들의 성향을 분열성 인격장애’, ‘집단 정신분열증이라고 다소 격하게 비판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견지해 온 중화주의에다가 새로운 물질주의적 가치가 혼합되어 나타난 증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주의는 톈안먼민주화운동 이후 정권 안정을 위해 덩샤오핑이 발전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국가가 조종하는 사유화, 시장화를 통해 공산당 관료들과 그의 가족들에 빌붙은 자들은 사유재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누구나 성공신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중국 민중들은 약삭빠른 관료들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세력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중국 젊은이들에게 공산당 입당은 출세하기 위한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본주의보다 더 부패한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라기보다는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 국가권력에 자본주의식 경제 활성화가 결합되어 가장 부패한 형태의 관료제가 만연했다.

중국이 2015년에는 일본을 넘어서고, 적어도 2050년이면  미국을 넘어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측도 있지만, 문제는 경제 규모에 어울리는 민주화를 이룰 것이가이다. 예전과 같이 독재체제를 고수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한 중국은 머지 않아 톈안먼민주화운동보다 더욱 커다란 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수십 년간 중국 민중이 여전히 무지한 상태로 억눌리고 착취당하며 지낸다면, 부패한 관료제와 저급한 국민들이 사는 국가가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된다는 사실이 인류역사에 큰 치욕이 될 것이다. 아직 중국은 소프트파워가 부족하고 민중과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 류샤오보 같은 운동가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대부분 시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뒷부분에 약간의 선언문, 편지,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시평들을 모아 놓은 책이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못하다. 긴 챕터는 30여 페이지 정도가 되지만 짧은 것은 10페이지도 안 된다. 각 챕터는 주로 2000년대의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간행물에 실렸던 글들이다. 기본적으로 시평 모음집이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라든가 정황이나 용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로는 우리가 잘 모르는 (굳이 알 필요가 없어 보이는) 매우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건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때로는 격한 비판과 주장이 많이 나오지만 그 강도에 비해 논거가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반적인 글의 수준도 학술적이라기보다는 다소 피상적이고 감성적이며 때때로 어휘들도 (다소) 격하다. 그렇다고 통쾌한 풍자나 가슴 후련한 독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용이 휙휙 지나가고 뜬금없이 종합화를 시도하고 근거 없이 주장을 내세운다. 분석의 깊이가 부족하다면 성찰의 깊이로 이를 만회할 수 있을 테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중국 입문서로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현대 중국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거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글을 읽고 싶다는 동기가 있다면 모를까, 선뜻 완독할 용기가 나지 않을 책이다.

이런 문제는 저자의 학문적 배경(중문학 전공자)과 책의 구성에서 나오는 한계로 보인다. 저자가 사회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이 책이 애초에 단행본을 의도하고 A to Z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긍정적 에너지를 믿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같이 관료제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버린 데 크게 실망했다. 공산주의 대국 중국은 분명 변해야 한다.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류샤오보가 중국 당국에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탄압받았다고 해서 그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빠졌지만 류샤오보는 2004년에 이라크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이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자이자 친서구주의자이며 비밀 가톨릭신자이다. 그의 이러한 정체성이 그의 글 면면에 드러나고 있다. 서구세계는 류샤오보라는 훌륭한 동반자를 찾은 셈이고 노벨평화상이라는 묵직한 무기로 중국(과 독재국가들)을 압박할 좋은 구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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